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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vs 사법시험, 당신의 선택은?

2022.02.13 09:46

“로스쿨, 도입 취지와 다르다” 사시 부활론 뜨거운 논쟁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와 변호사시험 수험생들이 지난해 4월 22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와 변호사시험 수험생들이 지난해 4월 22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개천에서 용 난다.’ 사회·경제적 약자가 노력을 통해 성공에 이르렀을 때 주로 인용하는 말이다.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특히 과거 사법시험은 ‘별로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이 한방에 인생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각종 폐해를 낳는 ‘문제아’로 지목되면서 2017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그 자리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대신했다. 2009년 로스쿨의 본격 도입 후 13년이 흘렀지만 ‘사법시험 부활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최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논쟁이 더욱 뜨겁다. 사법시험 부활을 주장하는 쪽은 로스쿨이 당초 도입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공격한다. 로스쿨 제도가 계층 상승의 사다리만 걷어찼을 뿐 사법시험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복한다는 주장이다. 사법시험 부활을 반대하는 쪽은 사법시험은 약자에게 결코 유리한 제도가 아니므로 로스쿨 제도를 개선·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

사법시험은 1963년 생겼다. 한국에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학력, 출신과 상관없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시험 통과 후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은 뒤 판·검사로 임용되거나 변호사로 활동했다. 시민들은 사법시험을 계층 상승의 사다리로 인식했다.

‘시험에 의한 선발’ 방식의 각종 폐해가 발생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극소수만 뽑다 보니 오랜기간 시험에만 매달리는 ‘사시 낭인’들이 생겼다. 대학생들이 사법시험 준비에만 몰두하면서 법학 교육은 시험만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했다. ‘고시학원’이 성황을 이뤘다. 사법연수원의 교육은 판·검사 실무 위주여서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법률가를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수원 기수 등을 통해 폐쇄적인 법조 문화를 형성했다.

로스쿨 설치 논의는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나왔다.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결실을 맺었다. 전국 25개 대학의 로스쿨은 2009년 3월 1일 첫발을 뗐다. 입학정원은 모두 2000명이다.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4년제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법학적성시험(LEET)과 공인 영어 점수도 필요하다. 로스쿨에서 3년간 교육을 받아 졸업해야 변호사시험을 볼 자격을 얻는다.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 로스쿨 제도의 본질이다.

로스쿨 vs 사법시험, 당신의 선택은?

■‘블랙홀’이 된 변호사 합격률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승준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9년 4월 ‘법학전문대학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제도의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밝혔다. 로스쿨을 둘러싼 각종 문제가 변호사시험 합격률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다.

2012년 첫 번째 변호사시험은 응시자 1665명 가운데 1451명이 붙어 합격률 87.15%를 나타냈다. 이후 줄곧 하락세였다. 2018년 7회 시험에서는 응시자 3240명 중 49.35%(1599명)만 합격했다. 가장 최근 합격자를 발표한 2021년 10회 시험에서는 응시자 3156명 중 54.06%(1706명)만이 변호사가 됐다.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은 저조한 합격률로 로스쿨 수업이 도입 취지와 다르게 흘러간다고 비판한다. ‘교육의 황폐화’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분석, 종합적 사고와 판단 능력을 기르고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게 당초 로스쿨 교육의 목표였다.

학생들의 당락이 한 문제로 갈리다 보니 시험에만 몰두하면서 대학원이 사실상 ‘고시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거 사법시험 시절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첫 변호사시험을 치르기 전인 2009~ 2010년 당시의 강의실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로스쿨 1기 입학생들은 상당히 활발했다. 강의시간에 토론이 이뤄지고 수시로 질문이 나왔다. 로스쿨다운 모습이었다. 교수들이 힘들 정도였다. 3기 이후부터 교수들이 편해졌다. 강의실의 긴장도가 확 떨어졌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회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식 수업’, 특정 사례를 놓고 토론을 하는 ‘케이스 메서드(Case Method)’ 수업 등을 시도한 교수들도 있었다. 이런 수업들은 대체로 학생들이 외면했다. ‘시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교수들은 어쩔 수 없이 강의식 수업으로 전환했다. 학교별 특성화 과목도 찬밥 신세가 됐다. 각 로스쿨은 전문화·국제화 시대에 부합하는 교육을 위해 학교별로 특성화 교육을 시행키로 했다. 하지만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과목들은 학생들의 관심 밖이었다. 한 로스쿨 재학생은 “자신이 일하던 분야의 관련 법을 공부하고 싶어 로스쿨에 왔는데 해당 분야의 공부는 미뤄둔 채 변호사시험 합격에만 매달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학교들도 변호사시험 합격률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합격률이 대외적으로 로스쿨의 순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변호사시험 합격 가능성이 높은 사법시험 1차 합격자를 입학시키거나, 합격 가능성이 낮은 고령자의 선발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오수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2020년 2월 전국 로스쿨 학생 2171명과 교수 2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이런 실태가 고스란히 담겼다. ‘로스쿨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시스템(변호사시험 포함)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61%가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한다’는 응답은 10.1%에 그쳤다. 교수들은 58%가 ‘불만족한다’고 답했고, ‘만족한다’는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학생들은 ‘변호사시험의 낮은 합격률’(32.7%)을 가장 많이 꼽았고 ‘수험 위주의 교육’(23.8%)이 뒤를 이었다. 교수들도 순위만 다를 뿐 ‘수험 위주의 교육’(50%)과 ‘변호사시험의 낮은 합격률’(22%)을 주요 원인으로 봤다.

과열 경쟁 상황에서 특별전형을 통해 들어온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로스쿨은 신체·경제적,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사람을 특별전형을 통해 정원의 7% 이상 뽑아야 한다. 시험 준비를 위해 사교육을 받는 로스쿨 학생들이 늘어났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이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2019년 3월에 공개한 자료 등을 보면,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5회(2016년) 54.4%, 6회(2017년) 38.7%로 집계됐다. 8회(2019년)에는 33.6%로 더 떨어졌다.

‘사시 낭인’ 대신 ‘변시 낭인’이 발생했다. 변호사시험은 석사학위 취득 후 5년 이내에 5번만 볼 수 있다. 기회를 모두 소진한 이들을 이른바 ‘오(5)탈자’라고 부른다. 법무부가 집계한 2021년 6월 기준 오탈자는 1135명이다. 오탈자인 최상원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장은 “학자금 등 수천만원의 빚을 졌다”며 “경력이 단절됐거나 나이가 많아 취업할 곳이 없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경수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대표(변호사)는 “오탈 제도의 취지 자체는 옳은 측면이 있지만 이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지금처럼 절반밖에 안 돼 수많은 오탈자가 발생하는 걸 염두에 둔 제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군입대를 제외하면 시험 기회를 연장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출산을 코앞에 둔 응시자가 책상 옆에 간이침대를 두고 시험을 본 사례도 있다.

변호사시험 출제 경향이 로스쿨 취지와 맞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변호사시험이 사법시험처럼 수많은 법조문과 판례를 암기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제를 출제한다는 얘기다. 시험문제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떨어뜨리려면 변별력 높은 문제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과는 자꾸 멀어지는 양상이다. 출제 오류의 시비를 피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문제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에 오류 시비가 없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법률 조문 아니면 판례 등 고정된 텍스트에서 문제를 가져온다”며 “창의적인 법 운용자,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는데 암기를 추종하는 법률가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둘러싼 반발은 정부가 초래한 측면도 있다. 로스쿨 도입 당시 법무부는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운영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다. 법무부가 2008년 10월 배포한 ‘변호사시험법 제정안’ 설명자료를 보면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인 점을 고려해 면접시험은 실시하지 않기로 함”이라고 적혀 있다. 법무부는 2012년 3월 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 보도자료에서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운영하되, 2014년(3회) 이후의 합격자 결정방법은 추후 논의”라고 밝혔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 모임 회원이 2016년 4월 26일 국회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 모임 회원이 2016년 4월 26일 국회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법시험 부활이 대안인가

로스쿨의 문제점은 곧 사법시험 부활 주장의 근거로 활용된다. 로스쿨이 없는 대학의 법학과 교수들로 꾸린 대한법학교수회는 사법시험 존치를 요구해왔다. 최근에는 로스쿨을 유지하되 판·검사 등 사법관을 별도로 선발하는 ‘신사법시험’ 도입을 주장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우회로를 두자는 주장이다. 백원기 회장(국립인천대 법학과 교수)은 “로스쿨은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하고 학비가 비싸 진입장벽이 높다”며 “신사법시험은 경제력, 출신과 상관없이 응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시험 부활의 일환으로 일본이 2011년부터 시행한 예비시험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로스쿨을 나오지 않더라도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을 주는 방식이다. 경제적 사정이 나쁘거나 이미 사회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이들에게 기회를 열어준다는 취지다.

이런 주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공약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 후보는 사법시험 일부 부활을 청년 3대 공공정책 공약 가운데 하나로 발표했다. 이 후보는 “로스쿨에 병행해 예외적으로 학력 제한 없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로스쿨을 유지하되 또 다른 제도를 만들어 사법시험 부활과 같은 효과를 내겠다는 내용의 청년정책 공약을 지난해 내놓은 상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예비시험 에 대학 및 로스쿨 재학생들이 대거 몰리며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다. 김창록 교수는 “일본은 20대 초반의 대학 재학생들이 예비시험을 통해 대거 신사법시험(변호사시험)에 합격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사법시험 1~58회(1963~2016년) 합격률은 2.92%에 불과했다. 2008~2017년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 중에서 고졸은 3명뿐이었다. 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시험이 부활하면 학원과 과외로 법을 배운 사람들이 주로 합격할 것이다. 이들은 젊고 부유할 가능성이 높다. 본래 취지와 다른 결과가 예상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사법시험 도입보다는 현행 로스쿨 제도 개선 쪽으로 무게를 싣는다. 이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윤 후보는 “사법시험 부활만 주장해서 풀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로스쿨은 공부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분들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장학금 등을 대폭 지원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심 후보도 사법시험 부활에 반대한다. 심 후보 측은 변호사 배출 숫자와 로스쿨 입학정원을 늘릴 것을 주문한다. 이동영 선대본 수석대변인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다 보니 로스쿨 교육을 시험 중심으로 하고 학생들도 시험에만 매달리면서 특권층에 유리한 현상이 나타났다”며 “학생 선발 과정에서도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숫자 왜 못 늘리나

변호사 수는 왜 늘리기 어려울까. 변호사단체는 현행 변호사 합격자 수도 많다고 본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연간 변호사 배출 숫자를 1000명 이하, 급격한 감축이 어렵더라도 1200명 이하로 줄일 것을 요구한다. 이윤우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은 “10년 사이 변호사 숫자가 3배 늘어 3만명에 달한다”며 “변호사를 찾는 수요는 그대로”라고 말했다. “수입이 없으니 보이스피싱 운반책으로 일하다 잡히기도 한다”고도 했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는 미국 속담은 이럴 때 자주 회자된다.

법무부는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화하려면 사회적 합의와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에서 정한 ‘로스쿨 입학정원(2000명)의 75% 이상 합격’을 기본 기준으로 삼는다. 여기에 기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및 합격률, 로스쿨 도입 취지, 법조인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해 합격자를 결정한다.

변호사 숫자를 통제하려는 건 기존 법조인 세력의 기득권 유지라는 비판도 나온다. 류하경 변호사는 “법조인들이 ‘용’이 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로스쿨을 만들었다. 어느 누구도 선발시험 한 번에 용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2009년 3월 발행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을 홍보하는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로스쿨에서 충실히 교육받았다면 누구나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나라, ‘고시 낭인’이라는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 선진 법률문화를 이끌어 나갈 미래의 법률가를 양성하는 교육, 바로 로스쿨에서 시작합니다.” 아직 로스쿨은 시작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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