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후에도 사고 사업장서 중대재해 반복…기업의 ‘안전불감증’ 여전

2022.02.13 15:31

지난달 20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석우 기자

지난달 20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석우 기자

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주 만에 법 적용 대상 기업의 사업장에서만 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일부 사업장은 과거 비슷한 중대재해가 발생한 적이 있음에도, 중대재해법 시행 후 노동자가 죽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기업의 안전불감증’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노동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등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됐으며, 공사금액 50억원 이상과 상시근로자 50인 이상인 사업장이 적용 대상이다.

13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인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중대재해법 적용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9명이다. 법 적용 대상 사업장을 기준으로 지난해 1월27일부터 2월9일까지 2주 동안 발생한 9명과 같은 수치다. 올해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후 곧바로 설연휴가 이어졌고 ‘1호가 되지 말자’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대거 휴업에 들어갔는데도 중대재해가 계속해 발생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사흘 만에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석붕괴로 노동자 3명이 숨졌다. 열흘 뒤인 지난 8일 성남시 판교제2테크노밸리 내 한 건물 신축 공사 현장에서 승강기 설치 작업 중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1일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여천NCC 3공장에서 폭발사고로 노동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이들 사업장은 과거에도 비슷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여수 여천NCC 3공장에서 폭발사고를 낸 원청업체 여천NCC와 협력업체 영진기술은 불과 3년6개월여 전에 가스누출 사고를 냈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 사업장에서는 2018년 8월17일 여수산단 공장의 BD(부타디엔) 추출공정에서 열교환기 청소 후 열교환기 덮개를 크레인으로 설치하던 중 유독성 C4혼합가스가 누출돼 영진기술 소속 노동자 1명이 부상했다. 노동부는 여천NCC와 영진기술 모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음에 따라 2020년 두 업체 명단을 ‘중대산업사고 발생 사업장’으로 공표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여천NCC에서는 2001년 10월 가스관 이음새 보수작업 중 수소가스가 폭발해 노동자 1명이 숨졌고, 2006년 1월에는 냉매오일 유출 사고로 2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중대재해법 입건 1호’가 된 삼표산업의 경우도 지난해 6월 경기 포천사업소에서, 9월에는 서울 성수공장에서 노동자 1명이 각각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기업은 안전문제를 비용으로 보거나 사고발생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커 현장에서 안전관리에 대한 체계와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부서를 만들고 법무법인에 자문을 구하는 등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깔리고 떨어지고 폭발해 죽은 노동자 대부분은 일용직,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며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지 않고 현장 소장이나 노동자에 책임을 전가한데다, 땜질식 솜방망이 처벌만 이뤄져 중대재해 반복돼왔다. 반복되는 중대재해는 구조적 원인이 있는 것인 만큼 그 책임은 사업주가 져야 한다”고 했다.

사단법인 김용균재단도 “산재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안전조치와 고용구조를 바꿀 권한이 있는 경영책임자들의 생각이 이전과 달라지지 않아서다.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 위험요소가 없어지지 않고 개선되지 않는다”며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전제하지 않으면 죽음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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