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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장애인…이성 보호자도 함께 편히 ‘일’ 보세요

2022.03.16 21:12

성공회대, ‘모두를 위한 화장실’

다양한 정체성 담은 표지판

넓은 통로…곳곳에 손잡이

점자·음성인식·각도거울…

장애 유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16일 설치됐다. 표지판에 치마를 입은 여성과 바지를 입은 남성, 양쪽 복장을 반반씩 걸친 사람, 유아를 눕히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바퀴를 미는 사람 등 다양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왼쪽 사진). 휠체어를 탄 학생이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오른쪽).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장애 유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에 16일 설치됐다. 표지판에 치마를 입은 여성과 바지를 입은 남성, 양쪽 복장을 반반씩 걸친 사람, 유아를 눕히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바퀴를 미는 사람 등 다양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왼쪽 사진). 휠체어를 탄 학생이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오른쪽).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의 한 화장실 표지판에는 사람 6명이 그려져 있다. 위 줄 양 끝에는 치마를 입은 여성과 바지를 입은 남성이 있고, 그 사이에 양쪽의 복장을 반반씩 걸친 사람이 있다. 아래 줄에는 유아를 눕히고 기저귀를 가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바퀴를 미는 장애인이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픽토그램(그림문자)이 표지판에 복작복작한 이 화장실은 학내 새천년관 지하 1층에 마련된 성 중립 화장실 ‘모두의 화장실’이다.

지난겨울 동안 공사를 거쳐 16일 문을 연 이 화장실에는 남성-여성의 구분이 없다. 남·여 화장실을 마음 놓고 이용하기 어려운 성소수자는 물론, 이성 보호자와 함께 다니는 유아·장애인·노인 등 약자도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화장실 문을 여니 휠체어도 여유롭게 다닐 만큼 넓은 통로가 나왔다. 변기, 세면대, 기저귀 교환대 곳곳에 휠체어용 손잡이가 달려 있다. 세면대 두 개의 높이는 서로 다르다. 한쪽 세면대 앞에는 거울이 있는데, 누르면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휠체어에 앉은 사람도 쉽게 거울을 볼 수 있다.

점자블록과 음성인식 시스템, 비상통화장치도 마련했다. 성별이나 장애 유무에 따라 차별받지 않도록 한 ‘배리어 프리’ 장치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으로 평소 학내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우준하씨(국제문화연구학과)는 이날 새천년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그동안 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비데가 있는 다른 건물로 눈과 비를 맞아가며 가야 했는데, 이제야 제가 학교 구성원으로 존중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 중립 화장실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공공장소에는 꽤 설치돼 있다. 한국도 일부 시민단체 등이 성 중립 화장실을 운영 중이지만 대학에 마련한 건 성공회대가 처음이다.

‘모두의 화장실’ 설립을 도운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성별 이분법적이고 비장애인 성인 중심인 화장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배제의 모습을 닮았다”며 “‘모두의 화장실’은 모든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만드는 의제”라고 했다.

찬반 갈등 끝 5년 만에 준공
반대 목소리는 대화로 설득
결과도 과정도 공동체 중시

그러나 인권 의식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 성공회대에서도 이 화장실 설치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17년부터 설치 주장이 나왔지만 준공까지 5년이 걸렸다. 일부 학내 구성원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학교 측도 반대 여론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설치를 추진한 학생회 측과 반대 측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학생회 측은 이 문제를 다수결에 부치는 대신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하기로 선택했다. 지난해부터 토론회와 강연, 부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캠페인을 통해 안건을 알리고 논의했다.

당시 학생회 비대위원장이었던 이훈씨(25·사회융합자율학부)는 반대 의견을 가진 학생들을 직접 만나가며 설득했다. “어려웠지만, 성소수자도 화장실이 필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또 화장실을 넘어 성공회대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죠.”

지난해 10월 총장과 교수·교직원, 학생 등 60여명이 참석한 대토론회가 전환점이었다. 반대 측은 토론회에서 ‘의견 수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지 화장실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구성원들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 자체에는 우리 모두 찬성한다’는 데 동의했고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다음달 대학 처장단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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