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텅텅 비고 허허벌판…공공기관뿐인 도시에 ‘정착’할 삶은 없다

2022.05.03 22:04 입력 2022.05.03 22:09 수정

혁신도시, 만들자마자 끝난 성장

광주·전남의 혁신도시인 나주 시내 상가들이 텅 빈 채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왼쪽 사진). 나주 혁신도시의 산학연 클러스터가 미착공 상태로 남아 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광주·전남의 혁신도시인 나주 시내 상가들이 텅 빈 채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왼쪽 사진). 나주 혁신도시의 산학연 클러스터가 미착공 상태로 남아 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기존 인프라 공유’ 부산 제외하곤
대부분 교육·문화 인프라 빈곤
정부 방치에 도시 성장 멈춰버려

“혁신도시는 하나의 큰 산업단지예요. 근무시간엔 조용했다가 점심시간, 퇴근시간에만 붐비는 모습이 똑같잖아요.”

전남 나주시에 위치한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의 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강민우씨(40·가명)는 직원들끼리 혁신도시를 공장이 밀집한 ‘산업단지’에 비유한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도시가 공공기관 중심으로만 돌아가다보니 발전도 더디다고 했다. 강씨는 2014년 기관 이전과 함께 내려와 3년간 생활하다가 인사발령을 요청해 수도권으로 근무지를 옮기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다시 혁신도시로 내려와 근무 중이다.

첫 발령 당시 강씨는 배우자와 두 자녀 등 온 가족이 나주에 왔지만 지금은 홀로 거주하며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처음엔 정착하는 것까지도 고민했지만, 3년 살아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교통·문화·쇼핑 같은 모든 생활여건이 몇년째 그대로예요. 서울과 비교하게 되다보니 인프라가 계속 뒤떨어지는 거 같고요.”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는 인구 5만명으로 계획된 도시다. 현재 인구는 당초 계획의 78% 수준인 3만9000여명이다. 이곳은 도시의 자족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산학연 클러스터 용지나 공원용지, 도로, 주차장, 광장 등 도시지원용지 면적은 전체 혁신도시 중 가장 넓은 수준으로 계획됐다. 하지만 지난달 7일 기자가 찾아간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는 강씨 말처럼 ‘자족형 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평일 오전 11시였지만 거리는 사람과 자동차의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점심시간에는 3~4명씩 조를 지어 나온 공공기관 직원들이 거리와 식당, 카페를 채웠다. 공공기관 유니폼과 명찰을 착용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해졌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김상진씨(가명)는 혁신도시를 “항아리 같다”고 말했다. “상권에서 가져갈 수 있는 몫이 항아리에 담아둔 것처럼 딱 정해져 있어요. 식당에 오는 사람들은 몇년째 공공기관 직원들뿐이니까 상권이 커질 수 없죠. 외부 사람들이 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요.”

전국 혁신도시는 모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인프라 구축은 제자리걸음이고 도시의 성장은 멈춰 있다. 혁신도시가 크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이 되진 못했다.

여전히 수도권에 가야 하는 이유 ‘인프라’

혁신도시 중 ‘그나마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은 부산이다. 부산혁신도시는 인구 335만명의 대도시인 부산의 중심부에 조성됐다. 따로 인프라를 만들 필요 없이 기존 대도시의 것들을 그대로 누릴 수 있었다. 애초에 다른 도시들처럼 인프라 부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홍정민씨(48·가명)는 다니는 공공기관이 부산으로 이전하기 전 서울과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살았다. 2014년부터 배우자,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3학년 등 두 자녀와 함께 부산에 내려와 정착했다. 그는 “필요한 건 다 있기 때문에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수도권은 교통체증부터 시작해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 불편하잖아요. 반면 여기는 비교적 여유롭거든요. 바다가 있으니 아이들과 놀러 다니기에도 좋고 지하철, 백화점까지 모두 잘 갖춰져 있어요. 서울을 가야 할 필요는 굳이 못 느낍니다.”

부산혁신도시에 대한 긍정 평가는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이주율로도 나타난다. 2020년 6월 기준 전국 10개 혁신도시의 평균 가족동반이주율은 65.3%인데, 부산혁신도시의 가족동반이주율은 77.5%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제주혁신도시(81.5%)를 제외하면 전국 혁신도시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부산을 제외한 대다수 혁신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의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허허벌판의 논밭을 매입해 조성한 도시가 많다보니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다. 주변 도시와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충북혁신도시에 사는 신은미씨(46·가명)는 주말만 되면 서울이나 수도권 도시로 간다. 신씨는 문화생활과 쇼핑을 즐기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혁신도시에는 이런 것들이 없다고 했다. “혁신도시에서 8년 가까이 살았지만 매력을 느낄 만한 부분이 없어요. 공공기관 이전 때문에 억지로 내려와 혼자 살고 있는데, 직장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수도권으로 이사갔을 거예요.”

‘교육 문제’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혁신도시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다. 나주의 강민우씨는 “주변 동료들을 보면 자녀가 중학생만 되면 전부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고 했다. 부산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홍정민씨조차도 “자녀 입시를 위해 내년에는 수도권으로 이사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학연 클러스터’ 미분양·미착공
“기업들 처음에만 왔지 이젠 안 와”

‘공공기관’ 프레임에 갇힌 혁신도시

이민원 광주대 교수는 혁신도시 조성사업을 “나무만 심어두고 숲이 되길 바란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공공기관을 이전하면 민간기업이 자연적으로 따라갈 것으로 ‘자신한 채’ 정부가 사후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 실패의 이유였다는 분석이다.

“혁신도시의 목적은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연구소와 대학,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었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공모를 마친 이후의 도시 성장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도시가 성장하지 않은 겁니다. 지역공모 방식으로 이뤄진 혁신도시의 근본적인 한계예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혁신도시는 이미 끝난 사업이라는 생각에 손을 뗀 거죠.”

미분양·미착공 늪에 빠진 혁신도시 산학연 클러스터는 이런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의 산학연 클러스터 부지 분양률은 올해 4월 기준 94%다. 대부분 분양이 완료된 상태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면 텅 빈 부지가 많다. 분양률과 별개로 착공률은 44%로 절반 이하이기 때문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공공기관으로 먹고사는 도시인데 어떤 기업이 들어오겠느냐”면서 “처음에만 기업들이 좀 따라왔지 이제는 온다고 하는 곳도 없다. 지역경제가 엉망”이라고 말했다.

한때 수도권 인구 집중 억제 효과
기존 공공기관 부지 재개발되면서
2020년부터는 수도권 유입 ‘역전’

혁신도시, 부메랑이 되다

혁신도시는 한때 수도권 인구 집중을 늦추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국내 인구는 2012년까지 수도권으로 유입됐지만,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반대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인구가 순유출됐다. 이 기간은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집중 이전되던 시기다. 실제 수도권의 순유출 인구인 5만8445명은 공공기관 이전 인원인 5만1700명과 비슷한 규모다. 그러나 국내 인구는 공공기관 이전이 마무리된 2016년 이후부터 다시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국토교통부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전국 혁신도시로 유입되는 인구는 2016년 9406명에서 2017년 5775명, 2018년 4099명, 2019년 2115명으로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2020년 들어서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 1028명이 혁신도시에서 수도권으로 순이동했다.

기존 공공기관 부지가 아파트·주상복합 등으로 개발되면서 오히려 수도권 인구 증가 효과가 발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이전의 승인인원은 6500명이지만, 13개 공공기관 이전 소유 부지의 개발로 인한 인구 발생은 약 13만명으로 추정됐다.

특히 한전의 경우 2012~2019년 민간기업 73개가 혁신도시로 이전해 전체 고용인원은 1135명 수준인 반면 서울 강남구 기존 한전 부지가 민간 개발돼 향후 준공 시점인 2026년의 해당 상주인구는 2만3813명으로 추산됐다. 감사원조차 “이전된 공공기관 기존 부지에 대한 사후관리가 부족했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이로 인해 지방 인구의 수도권 집중은 또다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혁신도시는 주변의 인구를 흡수하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6~2020년 혁신도시가 위치한 광역지자체의 다른 도시에서 혁신도시로 이동한 순이동자는 전체 순이동자 대비 50.5%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경남 68.8%, 경북 55.6%, 강원 53.9%, 전북 48.5%, 대구 40.2% 등으로 나타났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혁신도시 인프라가 지방 다른 소도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보니 기존 구도심 인구를 흡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기업 이전, 인구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집적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1개 시·도가 공공기관을 나눠먹기식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그나마 누릴 수 있었던 효과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지역 성장의 거점을 만든다는 시도는 좋았지만 지자체별 나눠주기식 배정, 입지 선정의 한계 등으로 인해 혁신도시는 거대한 택지개발에 그쳤다”고 말했다. 강현수 국토연구원장도 “혁신은 대학이나 민간기업에서 하는 것이지, 공공기관만으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민원 교수는 “공공기관은 도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없다”면서 “도시 성장을 위해서는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을 어떻게 만들지를 이제부터라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혼 직원 절반, 여전히 수도권에 본거주지…유치 기업도 다수가 ‘영세’


[기울어진 균형발전]② 텅텅 비고 허허벌판…공공기관뿐인 도시에 ‘정착’할 삶은 없다 이미지 크게 보기


‘기업도시 시범지역’ 5곳은 더 심각
10년째 추진 중이거나 사업 백지화


혁신도시가 탄생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통해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을 최종 확정했다. 2014년부터 공공기관 이전을 시작해 전국 11개 시·도에 10개 혁신도시가 만들어졌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중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은 153개에 달한다.

10조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투입해 조성한 혁신도시는 추진 당시 계획했던 인구를 대체로 달성했다. 혁신도시의 전체 인구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22만9401명으로 계획인구 26만7000명의 85.6%에 도달했다. 이는 2017년 대비 5만5124명, 2020년 대비 1만5584명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직원들의 가족 이주율과 민간기업 입주율 등은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해 6월 기준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가족동반 이주율은 66.5%에 그치고 있다. 기혼자만 따로 떼놓고 보면 이 수치는 53.7%로 떨어진다. 전체 직원 중 절반은 여전히 수도권에 본래 거주지를 둔 채 홀로 내려와 생활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공기관 이전과 함께 혁시도시에 내려온 민간기업들도 많지 않다. 감사원이 10개 혁신도시 내 민간기업 입주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혁신도시에는 2019년 12월 기준 총 1425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입주기업의 이전 소재지는 수도권 224개(15.7%), 타 시·도 93개(6.5%), 동일 시·도 1009개(70.8%)였다.

입주기업의 규모(고용규모 기준)를 살펴보면 5인 미만 기업 57%(810개), 5∼9인 미만 기업 20%(287개) 등 10인 미만 기업이 77%가량을 차지했다.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효과를 불러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은 영세 업체를 유치하는 데 그친 것이다.

혁신도시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기업도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당시 정부는 민간 기업 주도로 특화 산업을 도시에 육성해 자급자족형 복합 기능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전국 6개 지역을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선정했다.

영암·해남기업도시와 태안기업도시는 사업비를 제대로 조달하지 못해 지금까지도 추진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무안기업도시와 무주기업도시는 아예 사업이 백지화됐다. 실제 도시 조성까지 이어진 것은 원주기업도시와 충주기업도시 단 2곳에 그쳤다. 원주기업도시의 경우 저조한 지식산업용지 입주율로 어려움을 겪는 등 외부 인구 유입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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