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재난에도 취약계층 대책은 ‘아직’…피해 키운 ‘정책 공백’

2022.08.10 16:32 입력 2022.08.10 20:01 수정

지난 8일 밤 내린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집안에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의 반지하층이 9일 물에 잠겨 있다.  박하얀 기자

지난 8일 밤 내린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집안에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의 반지하층이 9일 물에 잠겨 있다. 박하얀 기자

지난 8일부터 사흘째 수도권과 강원 등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취약계층의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0일 오전 6시 기준 사망자와 실종자가 모두 16명이라고 밝혔다. 목숨을 잃거나 극심한 피해를 본 이들의 면면을 보면 반지하 거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기간제 구청 직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가 ‘예고된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위기로 인해 재난은 반복되고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도 극심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는데도, 취약계층을 보호할 만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기생충’에 관심 받았던 반지하, 대책은?

수도권 곳곳에서 물난리가 난 지난 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40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2명이 집 안에 고립돼 목숨을 잃었다. 동작구에서도 반지하 주택에 홀로 거주하던 기초생활수급자가 같은 사고로 숨졌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총 32만7320가구가 지하·반지하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이중 20만여 가구는 서울에 있으며,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2만113가구)는 지하·반지하 가구 수가 서울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경기 화성시 정남면에서  지난 9일 소방 관계자들이 산사태로 매몰된 컨테이너를 수습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고로 외국인 노동자 1명이 숨졌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경기 화성시 정남면에서 지난 9일 소방 관계자들이 산사태로 매몰된 컨테이너를 수습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고로 외국인 노동자 1명이 숨졌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2019년 영화 <기생충>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반지하 환경에도 이목이 반짝 집중됐다. 그러나 제대로 된 주거 안전망은 여전히 부재한 상황이다.

국토부는 2020년 2월 긴급지원 대상을 선별하기 위해 반지하 주택을 전수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이내 무산됐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인해 직접 방문해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행정자료를 통한 간접 조사로 방향을 선회했으나 침수 우려 주택을 촘촘히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일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 반지하 가구도 자치구가 침수 취약 가구에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집수리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서울시의 주거 복지 정책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 일부에 집수리를 제공해왔다고 하지만, 이번 폭우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집수리는 주거 대책이 되기 힘들다”면서 “공공임대주택 등을 통해 반지하주택의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해야 하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개발·재건축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0일 서울시는 주거환경 개선대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반지하 거주가구 안전대책’을 내놨다. 서울시는 “앞으로 반지하 공간은 ‘주거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반지하 주택 자체를 없애나가겠다”고 밝혔다.

속헹씨 죽음에 이주노동자 주거 대책 나왔지만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주거환경 대책 공백도 새삼 드러났다. 지난 9일 새벽, 경기도 화성시에서 공작 직원 기숙사로 사용하던 컨테이너가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공장 직원으로 근무하던 이주노동자 1명이 숨졌다.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 문제는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사회문제로 불거졌다. 이후 정부는 이주노동자 주거시설 개선 대책을 발표했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경기 화성시 정남면에서 9일 산사태로 공장 기숙사로 사용하던 컨테이너가 매몰돼 이주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났다. 사진은 매몰된 A씨를 수색 중인 소방 관계자들의 모습.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경기 화성시 정남면에서 9일 산사태로 공장 기숙사로 사용하던 컨테이너가 매몰돼 이주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났다. 사진은 매몰된 A씨를 수색 중인 소방 관계자들의 모습.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사업장이 불법 가설 건축물을 이주노동자에게 숙소로 제공하면 신규 고용허가를 불허하겠다는 대책인데, 고용허가제에 해당하는 E-9(비전문 취업), H-2(방문 취업) 비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인근 원룸 등에 주소만 등록하고 노동자는 공장 기숙사에 살게 하는 등 꼼수를 쓰는 것도 문제다.

특히 현행 근로기준법은 고용주가 산사태나 눈사태 같은 자연재해 우려가 있는 곳에는 기숙사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정해 놓고 있지만 매몰 사고가 발생한 곳은 비탈진 산을 끼고 있었다. 또 가설건축물을 임시 숙소로 사용할 때는 건축법에 따라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지만 해당 사업장 대표는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지도점검을 강화해 위험한 장소에는 기숙사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개선이 너무 더디다”고 말했다. “최소한 폭우가 예상되는 상황이면 지자체가 산사태 위험 지역 등에 안전조치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외국인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2020년 8월에도 집중호우로 인해 경기 이천시 율면 산양저수지가 붕괴되면서 1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이재민대피소 수용 인원 중 이주노동자가 80% 이상을 차지했다. 정 집행위원은 “반복되는 경험이 있는데도 지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외국인노동자를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공근로는 목소리 내기 어려운 구조”

이번 폭우의 첫 사망자였던 60대 남성 A씨는 서울 동작구청에 1년 미만으로 계약돼 일하는 기간제 노동자였다. A씨는 집중 호우로 쓰러진 가로수를 정리하다가 감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작구에 따르면, A씨와 같이 가로수 정비 업무를 담당하는 계약직 직원은 약 80명이다. 주로 50~70대 중년 남성이 퇴직 이후 소일거리를 구할 목적으로 지원한다. 서울지방노동청은 A씨의 사망 과정에서 사용자인 동작구의 부주의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동작구 관계자는 “가로수 근처로 통신선과 보안등(가로등) 전선이 지나고 있었다고 한다. 통신선은 감염 위험이 적다고 알려져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근처 가로등과 연결된 전선이 함께 묶여 있었던 것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폭우로 인해 서울 동작구 경문고등학교 후문 부근의 토사가 무너져 내린 모습. 김창길기자

폭우로 인해 서울 동작구 경문고등학교 후문 부근의 토사가 무너져 내린 모습. 김창길기자

권동희 일과사람 노무사는 “전선으로 인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구청이 업무 지시 과정에 과실이 있을 수 있다”면서 “조명 확보 등 안전대책이 충분히 이뤄졌는지 조사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노무사는 “공공근로에 종사하는 이들은 연령대가 높고 고용 안정성도 워낙 낮아서 노조 결성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매우 어려운 구조”라면서 “심지어 정식 근로자가 아닌 경우도 많아서 많아 산재 인정이 안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육체노동 과정에서 특별히 안전조치가 더 잘 이뤄진다는 것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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