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계엄문건’ 조현천 귀국, 왜 지금인가

2022.10.15 10:52

2017년 12월 미국 출국, 5년째 도피
‘전 정권 겨냥’ 여당과 교감 가능성
내란음모 아니라도 기소는 불가피


2018년 7월 20일 당시 청와대가 공개한 국군기무사령부 작성 ‘계엄문건’ 세부자료 /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7월 20일 당시 청와대가 공개한 국군기무사령부 작성 ‘계엄문건’ 세부자료 / 청와대사진기자단

[주간경향]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문건’ 작성 사건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63)이 조만간 귀국한다. 그는 2017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행적이 묘연했다. 최근 갑자기 자진 귀국 의사를 밝혔다. 조 전 사령관은 계엄문건 작성과 관련해 내란음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귀국 즉시 체포돼 수사를 받게 된다.

“조 전 사령관이 귀국하면 내란음모로 충분히 기소하고 유죄를 받을 수 있다고 봤다. 그를 조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수사 내용을 보면 그랬다.” 계엄문건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2018년 진행한 군·검 합동수사단의 수사 내용을 잘 아는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정권이 바뀌고 상황도 달라졌다. 조 전 사령관이 자진해 귀국하겠다는 배경에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 사건은 단순히 조 전 사령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고리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 박근혜 정부의 주요 인사 여럿이 얽혀 있다. 이들 모두 합수단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조 전 사령관의 ‘입’에 이들의 사법처리 여부가 달려 있다.

계엄문건 작성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다소 다툼의 여지가 있다. 다만 조 전 사령관은 문건 작성 과정에서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기무사의 정치 관여 활동, 기무사 자금 유용 등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합수단은 수사 당시 조 전 사령관의 자금 사용처가 담긴 ‘장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뜻밖의 사건이 파생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탄핵 국면에서 작성

기무사는 2017년 2~3월 8쪽 분량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여기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작성했다. 2016년 12월 국회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시점이었다.

문건에는 탄핵 선고 이후 전망되는 상황이 서술돼 있다. 대규모 시위대의 청와대·헌재 진입 및 점거 시도, 화염병 투척 등 과격양상 심화, 사이버상의 유언비어 난무, 집회·시위 전국 확산 등의 내용이다.

중요시설과 광화문·여의도 등 집회 예상 지역 2곳에 기계화사단 6개, 기갑여단 2개, 특전사 6개 이상 등 병력을 배치하는 계획도 담겼다. 언론보도를 통제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를 무력화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문건에 포함됐다.

계엄문건은 2018년 7월 이철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인권센터 등이 공개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시를 내렸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꾸려진 데 이어 민간 검찰까지 합류해 군·검 합동수사단이 출범했다.

합수단은 2018년 11월 계엄문건의 작성 경위와 의도, 추가 준비행위 여부 등 구체적인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을 조사해야 내막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가 귀국 등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했다. 육사 출신인 조 전 사령관은 2014년 중장으로 승진해 기무사령관에 오른 뒤, 정권이 바뀌고 2017년 9월 예편했다. 그해 12월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2014년 10월 8일 조현천 당시 국군사이버사령관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참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014년 10월 8일 조현천 당시 국군사이버사령관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참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조현천 귀국 의도는?

이에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을 기소중지 처분했다. 내란음모 혐의가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이 아니라 향후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면 수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지난 9월 14일 조 전 사령관이 자진 귀국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미국 현지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계엄문건 작성의 최고 책임자로서 문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자진 귀국해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왜 지금일까. 그가 귀국 의사를 밝히기 직전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는 계엄문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 측은 계엄문건이 단순 검토보고서여서 불법성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기무사가 내란음모를 꾸민 것처럼 송 전 장관 등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전 정권을 겨냥한 것이다.

눈에 띄는 건 국민의힘 TF에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도 민간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조 전 사령관의 지시로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해 합수단의 수사를 받았다. 조 전 사령관이 귀국하면 그도 다시 수사 대상이 된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7월 TF의 1차 회의에서 “과거 기무사 참모장 시절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를 앞두고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검토한 계엄령 사안에 대해 쿠데타 등 정치적 몰이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라며 “아직 다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런 내용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군인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 임무로 알고 있고 지금까지 그렇게 수행해왔기 때문에 이번 실태조사에서 정확히 규명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조 전 사령관의 귀국은 현재 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입장문에서도 “최근 기무사가 작성했던 계엄문건과 관련해 당시 국방부 장관 등이 검찰에 고발되고 문건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2018년 합수단에 보낸 우편 진술서를 통해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절차를 검토한 것에 불과하고 실행계획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조 전 사령관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인가, 짜고 치는 고스톱인가”라며 ‘기획 입국’을 의심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도 2018·2019년 국민의힘이 동일한 사안으로 자신을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며 “이번 고발에는 조 전 사령관을 귀국시켜서 봐주려는 모종의 음모가 작동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조 전 사령관의 내란음모, 국민의힘 측의 고발 등 계엄문건을 둘러싼 사건 2개는 최근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에 배당됐다. 검찰은 기존 합수단의 수사 자료 등을 검토하는 한편 조 전 사령관 측과 귀국 일정 등을 조율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의심되는 정황들

조 전 사령관이 받는 주요 혐의는 내란음모다.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2명 이상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는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고,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돼야 한다. 계엄문건이 실제 실행을 위한 계획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합수단의 2018년 수사결과 계엄문건이 실행을 위해 작성됐다고 볼 수 있는 수상쩍은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우선 기무사는 계엄문건 작성 과정에서 TF를 구성했는데,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로 계엄문건과는 전혀 무관한 이름이다. 이 TF로 인사명령을 내고 예산도 책정했다. 부대원들은 인터넷과 인트라넷이 연결되지 않은 별도의 컴퓨터로 작업했다. TF 운영 종료 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초기화했다. 계엄문건 작성을 은폐하기 위해 비밀리에 움직였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계엄문건의 본래 제목은 언론에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시행방안’이 아니라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제목으로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2~3월 계엄문건에서 ‘계엄임무 수행군’으로 편성된 20사단장과 8사단장을 만나기도 했다. 기무사는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에 해당 문건을 온라인시스템에 훈련비밀로 등재하려 했으나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훈련비밀로 등록하면 훈련 때 다른 부대원들이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문건의 존재가 드러날까봐 우려한 것으로 합수단은 의심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문건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나왔다. 계엄문건은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도록 했다. 그러나 현행 계엄 관련 계획에는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 역할을 수행토록 한다고 돼 있다. 계엄문건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했을 때 체포 등 대응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계엄문건 작성에 앞선 2016년 10월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방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에게 북한 급변 사태를 가정해 계엄을 선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행정관은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지정하는 방안,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에 대응하는 방안 등도 김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 기무사의 계엄문건에 담긴 내용과 유사하다. 또 육군본부 작전과도 2017년 2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조 전 사령관도 부하 간부에게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건의할 경우 국회를 해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고, 이를 계엄문건에 실제 반영했다는 진술도 합수단은 확보했다. 청와대와 기무사 사이에 지시 등 접촉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조 전 사령관은 2016년 11월~2017년 2월 모두 4차례 청와대를 방문했다. 세 번은 김 전 실장을 만나 대북 관련 보고 등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자리에서 계엄문건이 논의됐을 여지가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나흘 전인 2016년 12월 5일에는 김 전 실장을 만난 뒤 다른 인물을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기무사는 2016년 11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국면별 대비방안’, ‘현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 사항’, ‘통수권자의 안위를 위한 군의 역할’ 등 문건 3개를 작성했다. 이 문건들에 계엄 선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됐다.

합수단은 김 전 실장을 참고인 중지 처분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황교안 전 국무총리,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검찰수사가 재개되면 이들도 수사 선상에 오른다.

황 전 총리는 계엄문건 작성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다. 그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2017년 3월 황 전 총리가 참여한 공식행사에 조 전 사령관이 4차례 참석한 정황을 합수단이 포착했다. “조 전 사령관이 황 전 총리에게 계엄문건을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당시 합수단의 판단이었다.

계엄문건 작성 즈음에 박씨의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집회에는 ‘계엄령선포촉구 범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등장했다. 이들은 “계엄령을 선포해 촛불 반란군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군대여 일어나라’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과거 기무사가 보수단체를 관리하면서 정권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동원했다는 점에 비춰, 기무사와 이 단체 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성명불상’의 이 단체 대표도 참고인 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문건 의혹을 수사한 군·검 합동수사단이 2018년 11월 7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 대회의실에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문건 의혹을 수사한 군·검 합동수사단이 2018년 11월 7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 대회의실에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소는 못 피할 듯

합수단은 수사 당시 조 전 사령관을 내란음모로 기소할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정부 관계자는 “군에 정통한 사람들은 문건만 놓고 봐도 ‘이건 실행계획이다’라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이 나서서 계엄문건을 공개한 지난 정부 인사들을 고발하고, 조 전 사령관의 입장도 궤를 같이하는 만큼 실제 내란음모로 기소될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 전 사령관이 기소 자체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내란음모 외에 다른 혐의들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계엄문건 작성 과정에서 이를 숨기기 위해 문건 작성과 상관없는 위장 TF를 만들어 인력파견, 예산 신청 등의 공문을 작성하고 이를 사용한 혐의가 있다. 이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는 내란음모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이기도 하다.

합수단은 앞서 같은 혐의로 소강원 전 참모장과 기우진 전 5처장, 전 모 중령 등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 전 중령은 최근 대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의 선고 유예를 확정받았다. 조 전 사령관이 계엄문건 작성을 지시한 만큼 공범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 조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 정치 관여, 업무상 횡령 등 혐의도 받는다. 기무사가 2016년 10~12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집회 18회 개최, 칼럼·광고 54회 게재 등에 관여한 혐의다. 2016년 1월 기무사 요원들이 한국자유총연맹 선거와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토록 한 것으로 합수단은 의심했다. 기무사가 2016년 7~9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찬성 의견을 유포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자금 3000만원을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16년 3~5월에는 기무사 계획예산과장 등에게 근거 없이 돈을 마련하라고 지시해 ‘대외정책 첩보 소재 개발비’ 명목으로 3000만원을 챙긴 혐의도 수사 대상이다. 이들 혐의 가운데 일부는 지모 전 기무사 참모장과 공모했다. 지 전 참모장은 2019년 4월에 기소됐다. 따라서 조 전 사령관도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이 사용한 자금의 흐름 추적에도 주력했다. 조 전 사령관의 동선과 접촉 인물 등을 특정해 문건 작성 경위를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사령관의 부관을 상대로도 조사를 벌였다. 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의 자금 사용처가 담긴, 그의 부관이 작성한 장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사령관은 주로 현금을 썼다고 한다. 장부에 적힌 내용에 따라 별개의 사건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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