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촌 정착 인프라 만드는 유지황 ‘팜프라’ 대표
[주간경향] 어떻게 하면 아무 기반이 없는 청년들이 ‘촌라이프’를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촌라이프를 위한 인프라를 만든다는 뜻을 담은 사회적 기업 ‘팜프라’를 세운 유지황 대표가 20대 초반 가졌던 질문이다.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일본에서 출발해 호주, 이탈리아, 스페인 등 14개국의 농촌을 돌며 3만명 이상을 만났다. “세상은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불평등하고 불균형하다”는 암울한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에선 이런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방책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한 키워드는 ‘식주학(食住學)’이다. 유 대표는 지난 11월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열린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강연에서 “적어도 다음 세대는 기본권 정도는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고민한 3가지 키워드”라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먹을 것을 길러내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밍 보이즈에서 팜프라로
팜프라가 있는 곳은 경상남도 남해 두모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다섯그루의 당산나무 보호수가 있고, 마을 뒤로 12만평에 이르는 유채꽃밭이 있다. 봄엔 유채꽃이 만발하고, 가을엔 반딧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앞에는 하얀 모래사장과 카약을 체험할 수 있는 깨끗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농촌에 정착하려면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가자는 생각에서 찾고 찾은 끝에 만난 마을이다. 날씨가 좋을 땐 당산나무 밑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과 점심을 먹고, 청년들을 모아 집을 짓고 고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1년에 한 번은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농악을 하고 영화제도 연다. 노을진 해안가를 산책하거나 조깅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판타지한 촌라이프’지만 이렇게 틀을 만들기까지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집트에서 생애 첫 배낭여행을 하면서 농업과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공영주차장 차 밑에 들어가 자는 아이들을 만났어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불평등한 일이 일어날까, 어떻게 하면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까 질문하기 시작했죠.” 그는 식주학이 가능한 곳으로 농촌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찾으려 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농사를 지었다. 땅주인이 직접 농사짓겠다고 해서 1년 만에 나와야 했다. 기반이 없어도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아보려고 또래 청년 농부들을 여럿 만났다. 대부분 영농후계자였다. 자신처럼 자본금 없이 시작한 청년 농부들은 없었다. 한국에서 찾지 못한 답을 구하려 해외로 떠났다.
호주로 갈 땐 단돈 30만원만 들고 갔다. 현지에서 여행경비를 벌고, 그 돈으로 ‘파밍 보이즈’라는 영화도 제작했다. 호주판 <전원일기>로 호주 농촌의 생태공동체와 자급자족 자연농을 담았다. 처음 간 일본에선 위로를 받았다. “한국에서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어른들에게 농촌에서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농촌에 오지 말고 하던 것 해라’는 식으로 응원보다 회유를 했죠. 일본은 저희보다 20~30년 사회문제가 앞섰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게 농촌 고령화와 지역소멸입니다.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에가오 츠나게테’라는 공익단체를 운영하는 선생님이 제게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내가 20~30년 뒤 노인세대가 돼 있을 텐데 그때 이 청년들이 지금의 내 나이대가 되어 나를 보살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청년세대에게 투자하고 지원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라고요. 그리고 농촌에서 하고 싶은 일이 농사인지 농업인지 물었죠.”
그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농사가 아니라 농업이라고 깨달았다. 농사에 필요한 옷이나 도구를 만든다거나 농촌에 필요한 주거를 만드는 일도 농업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농사보다 농업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팜프라를 만들었다. “결국 소득이 충분한가, 주거의 질과 문화 인프라가 좋은가. 이런 전반적인 조건을 갖추는 게 지금 농촌 혹은 농업계에서 해야 할 일이고,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제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운동에서 프로젝트로, 사업으로
유 대표는 농사와 농업은 시장경제에만 맡겨선 안 되는 공공성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통구조의 공공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 생산자가 중심이 돼 만든 생산자협동조합이 대부분 유통을 담당합니다. 생산자가 주(主)이고 유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해 의뢰하는 방식이라 농민 소득이 높습니다. 반면 우린 남해에서 시금치를 생산하면 그 시금치가 가락시장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남해로 내려오는 구조예요. 유통구조가 많게는 최대 8단계까지 있죠. 결국 생산자가 열심히 생산해도 가져가는 소득은 마트에서 팔리는 가격의 10% 정도밖에 안 됩니다.”
팜프라의 미션은 도시에서 지역으로 삶을 전환하려는 청년들을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고 봤다. 6평짜리 이동식 목조주택을 직접 만드는 ‘코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후계농·승계농 친구들도 기반은 있지만 자기 집이 없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갈등을 겪습니다. 이동식 주택 수요가 있다고 봤죠.” 1000만원으로 만든 목조주택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여성이 만들기에도 어렵지 않은 정도였다.
프랑스의 ‘테르둘리앙’과 같은 공동체 지원 농업(CSA) 모델은 두모마을에 만든 식량자립 텃밭인 ‘쑥대밭’이나 CSA 마켓을 만들 때 좋은 참고가 됐다. 테르둘리앙은 청년 농부가 밭을 관리하고 소비자가 생산자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1000평 정도의 땅에 50가지 정도 작물을 키운다고 하면 100명 정도가 1년에 50만원 정도를 내서 생산 비용과 농부의 연봉을 대는 방식이다.
팜프라를 통한 청년 유입을 가장 반기는 건 마을이다. “이장님이 저희 제안서를 2장째 보다가 같이하자고 하셨죠. 지금은 자기가 가장 젊은데 10년 뒤면 자기만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요.” 첫해엔 폐교 사용을 허락받고 했지만, 다음해부턴 임대료를 내고 정착했다. 코부기 프로젝트로 만든 숙소에서 일주일 지역살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두모 큰잔치, 남해아육대 등 지역사회와 청년의 접점을 늘리는 행사도 열었다. 청년들은 그곳에서 자립할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생산활동을 하며 살 수 있을지 검증한다.
3년차를 맞은 지금, 처음엔 어차피 나갈 애들에게 왜 지원해주냐는 말도 있었지만 이젠 적극 응원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적극적인 지원을 할 순 없다. 예산으로 청년을 지원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이런 난관은 팜프라 스스로도 극복할 수 있지만 진짜 난관은 정착할 공간을 찾는 문제라고 했다. 농촌에 빈집은 많지만 도시에 나간 농민의 자식들이 팔지는 않아 막상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은 별로 없다. 유 대표는 “정착하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을 위해 농촌에 공공임대주택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농민 소득을 높이려면 농협 대신 생산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유통구조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