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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좀 해” “이 XX가” 폭언 난무···중기부 산하 콜센터 노동자 절반이 ‘감정노동 위험’

2022.12.12 09:59 입력 2022.12.12 17:03 수정

민간위탁 간접고용 형태로 민원인 응대

열악한 환경, 정신·신체적 건강에 악영향

고객 괴롭힘에 절반 이상 ‘감정노동 위험군’

[단독]“빨리 좀 해” “이 XX가” 폭언 난무···중기부 산하 콜센터 노동자 절반이 ‘감정노동 위험’

“일 제대로 하는 거 맞아? 뭘 알고 얘기하는 거야?” 지난 2월의 어느 날,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1357콜센터 직원 이성희씨(44)에게 수화기 너머 민원인은 폭언을 퍼부었다. 민원인은 이씨 소관이 아닌 업무를 요구하며 30분간 폭언을 이어갔다. 1357센터에서 4년을 일하면서 이씨는 처음 울었다. 오전 10분, 오후 20분뿐인 쉬는시간으로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그나마도 입사 초기엔 보장되지 않았다. 이씨는 “휴식으로 나도 마음도 가라앉히고 해야 하는데, 그걸(갑질을) 계속 당하면 응대하는 나도 기분이 안 좋아져서 상담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콜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뒤 동네 이비인후과 단골이 됐다. 동료 직원들은 목·허리디스크를 달고 산다. 하지만 입원이 아니면 병가처리가 되지 않아 본인의 연차를 써야 한다. 이씨는 “큰 병이 아니더라도 잔병치레하는 분들이 많다”며 “병원 진료 시간을 융통성 있게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앙행정부처인 중기부 산하 콜센터 직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콜센터 직원들의 높은 스트레스와 노동환경 문제는 널리 알려졌지만, 공공기관에서조차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중기부 산하 콜센터들은 중기부의 업무를 상시·지속적으로 하고 있지만 직접고용이 아니라 민간위탁 간접고용 구조다. 민간위탁 구조의 열악한 환경이 노동자들의 정신·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빨리 좀 해” “이 XX가”···절반이 ‘우울증 위험군’

12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과 희망연대노동조합,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일과건강’은 이 같은 내용의 ‘중기부 및 산하기관 콜센터 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실태조사는 지난 5월9일~5월20일까지 중기부 산하 콜센터 4곳(1357콜센터, 공영홈쇼핑콜센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콜센터, 중소기업유통센터콜센터)의 직원 45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후 추가 FGI면접조사를 시행했다.

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고객의 괴롭힘’이었다. 연구진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감정노동평가지침에 따라 ‘감정노동노출수준’을 평가한 결과, 응답자 52.1%(214명)가 감정노동 위험군에 속했다. 감정노동 위험군 비율은 40대 이상이 57.1%로 20~30대(38.5%)보다 높았다.

응답자들이 고객에게 당한 괴롭힘(복수응답)은 ‘빨리 하라는 닦달’과 ‘언어폭력’이 85.5%로 가장 많았다. ‘인격 모독’이 79.0%, ‘악의적 컴플레인’이 70.6%, ‘위협·협박’이 61.8%로 뒤를 이었다. ‘성희롱·성폭력’도 40.8%로 잦았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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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고객’을 상대하고 나서는 휴게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응답자 17.2%는 하루 중 쉴 수 있는 시간이 점심시간을 포함해도 1시간 미만이었다. 휴게시간은커녕 점심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업체별로 보면 1357콜센터와 중진공콜센터만 점심시간 제외 휴게시간을 30분~1시간 제공했고, 나머지 두 조직은 그때그때 ‘스팟성’ 휴게시간을 부여했다.

높은 고객 응대 스트레스 탓에 우울증 위험도 컸다. 우울증 선별도구인 ‘PHQ-9’ 설문 결과, 응답자 25.9%가 우울증 심리상담이 필요한 그룹으로 분류됐다. 심리상담 필요 그룹에서 ‘콜 처리가 벅차다’는 응답은 68.4%로 정상그룹 27.0%보다 높게 나타났다. ‘업무중 여유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응답도 10.7%로 정상그룹 4.2%보다 높았다.

골병 들어가는 노동자들···괴롭힘 취약 ‘악순환’

신체적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지난해 업무상 질병으로 치료를 받은 경험’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34.6%가 ‘1회 이상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5번 이상’이 12.7%로 가장 높았고 ‘2번’이 8.6%. ‘1번’이 6.7% 등이었다.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느끼는 주요한 부위는 ‘어깨’가 32.4%로 가장 높았다. ‘허리·등’이 24.4%, ‘손목·손가락’이 22.0%였다. 증상을 호소한 이들을 다시 ‘통증 빈도’ ‘통증지속기간’ ‘통증정도’를 설문해보니 86명이 실제 근골격계질환 의심자로 분류됐다.

근골격계질환 의심자 그룹은 정상그룹에 비해 고객의 괴롭힘과 감정노동에 취약했다. ‘고객의 괴롭힘’ 경험 척도를 1~4점으로 측정한 결과, 질환 의심자 그룹은 ‘빨리 하라는 닦달’ 경험 척도가 3.1점으로 정상그룹(2.2점)보다 1점 가량 높았다. ‘언어폭력’은 2.7점(정상그룹 2.3점), ‘인격 무시’는 2.6점(정상그룹 2.2점)이었다. 감정노동노출수준도 질환의심그룹은 70.9%가 위험군에 속해 정상그룹(49.6%)보다 훨씬 많았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골병’은 병가·연차 사용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아파서 병가나 연차휴가를 쓴 경험’을 묻는 질문에 52.0%가 ‘있다’고 답했다. 아파서 병가·연차를 쓴 경우 평균 7.5일을 사용했다. 이는 국내 노동자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2017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를 보면, 한국 노동자 15%만 아파서 병가·연차휴가를 썼다고 답했고, 평균 0.8일을 사용했다.

원청 보호조치는 한참 미진···“민간위탁 부작용”

사측의 보호조치는 미진했다. 응답자 중 94.8%가 ‘직업성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 조사 결과를 안내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가 근골격계에 부담이 가는 작업을 하는 경우 3년마다 유해요인 조사를 해야 하며, 이 조사 결과를 노동자에게 알려야 한다. 안전보건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보건교육을 법에 따라 분기별로 받는다는 응답은 30.0%에 그쳤다. ‘1년 1~2회’가 50.2%로 가장 많았고, ‘전혀 없다’도 15.0%에 달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악성고객의 경우 ‘원스트라이크아웃제’나 법적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안전보건교육을 통해 감정노동자 보호제도와 매뉴얼을 소개해야 하며, 근골격계부담작업 조사 결과도 적극 알리고 스트레칭 등도 보급해야 한다”고 했다.

[단독]“빨리 좀 해” “이 XX가” 폭언 난무···중기부 산하 콜센터 노동자 절반이 ‘감정노동 위험’

민간위탁으로 이뤄진 중기부 산하 콜센터의 ‘이중구조’가 노동환경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선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일반지부 1357콜센터지회장은 “정부 부처 대국민서비스 대표 상담 콜센터가 용역업체를 통해 진행될 경우 상담업무 공공성이 저하되고 서비스의 질도 하락한다”며 “중기부에서 한몸한뜻으로 일하는 상담사들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정당한 대우와 보상이 있어야 하지만 임금협상이나 단체교섭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담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노동환경 개선은 직접고용”이라고 했다.

류 의원은 “감정노동자 보호 규정의 현장 적용과 목표콜수제 운영 금지 등 과도한 평가 시스템부터 제고해야 한다”며 “국회도 공공업무의 민간위탁 오남용을 방지하고 공공성·책임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민간위탁 정상화법’과, 진짜 사장에게 책임과 의무를 지우는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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