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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스타 뒤 ‘쫄쫄 굶는’ 패션어시···‘텅장 가계부’ 열어보니

2022.12.13 14:38 입력 2022.12.13 16:18 수정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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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이 많으면 주 7일, 새벽 2시 출근해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해요.” 20대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패션어시) A씨의 근무시간이다. 유명 배우·가수의 협찬 의상을 패션 브랜드 업체에서 받아오고 반납하는 일을 주로 한다. 방송업계 일정상 보통 주 6일 일한다. 촬영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시간도 늘어난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생겼어요. 돈이 부족해서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봤고, 자존감도 많이 낮아져요.” 패션어시 B씨는 최근 한 달 25일가량 출근해 하루 평균 14시간 일했다. 그러나 임금은 월 110만원으로 고정이다. 스타일리스트(실장)와 ‘일대일 구두계약’을 맺고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4대 보험도 없다. 그는 “식대나 최저시급, 심야시간대 교통비 정도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타 연예인들의 의상을 챙겨주는 패션어시들이 하루 12시간 일하면서도 월평균 145만원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식 근로계약도 없이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도 모자라 도시 노동자 평균 생활비보다 적게 버는 ‘적자 노동’을 하는 것이다. 관계 당국의 관리·감독 강화와 업계 관행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패션어시유니온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2년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가계부조사’를 13일 공개했다. 조사는 지난 8월23일부터 9월13일까지 패션어시 86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응답자의 95%가 여성이고 평균 연령은 24.8세로 청년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12시간 일하고 145만원···돈 꿔서 사는 ‘적자 노동’

패션어시들의 평균 월 임금은 145만원이었다. 월 임금 분포는 140만~160만원 미만이 27%로 가장 높았다. 120만~140만원 미만이 22%, 80만~120만원 미만 17%, 160만~180만원 미만이 10% 순이었다. 월 180만원 이상 받는다는 응답은 18%뿐이었다.

[단독]화려한 스타 뒤 ‘쫄쫄 굶는’ 패션어시···‘텅장 가계부’ 열어보니

심각한 저임금인데 노동시간은 평균 직장인보다 훨씬 길었다. 2020년 청년유니온이 진행한 ‘2020년 패션어시 노동실태조사’를 보면, 패션어시들은 하루 평균 11.5시간 일했다. 월평균 휴일은 4.8일에 그쳤다.

장시간 노동에도 물가·주거비 상승 때문에 패션어시들은 ‘적자 노동’을 하고 있다. 패션어시들의 평균 생활비 지출은 157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평균 생활비 지출이 월 임금보다 8만3000원 많았다. 패션어시들의 생계비 지출은 지난해 비혼 단신 노동자 평균 실태생계비(최저임금위원회 조사보고서) 220만5432원의 71%에 그치는데도 저임금 때문에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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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 지출 내역을 세부적으로 보면 ‘주거비·공과금’이 평균 30만3000원으로 가장 많았다. ‘식비(음식점 등)’가 22만4000원, ‘생활용품’이 21만9000원, ‘식료품(마트·편의점 등)’이 17만7000원 순이었다. 독립가구의 경우 ‘주거비·공과금’이 52만8000원으로 높았다. 패션어시 응답자의 50%가 독립 가구인 만큼 주거·생활비의 비중이 상당했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은 “수도권 20대 초중반 여성 평균보다 높은 독립 비율”이라며 “심각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독립 선택 비율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패션어시들은 부족한 생계비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최근 1년 동안 생활비가 부족한 경우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묻자, 79%가 ‘부모·친척 등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 ‘원래 가진 적금을 중도해지하거나 저축에서 충당했다’가 50%, ‘친구 등으로부터 돈을 빌렸다’가 23%였다. ‘은행·카드사 등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응답도 18%로 나타났다.

가계부 보니···쥐꼬리 월급, 흔적도 없이 스쳐 가네

심층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패션어시 5명의 실제 가계부를 보면 빠듯한 생활이 드러난다. 패션어시 C씨(20대 초반, 경력 약 2년, 독립)는 한 달에 임금 140만원을 받았다. 월세 60만원과 공과금 18만원이 빠져나갔고, 식비로 19만6500원을 지출했다. 의류 등 갖가지 생활용품으로 23만1500원을 썼다. C씨는 여가를 포기했다. 그가 오락·문화생활비로 사용한 돈은 1만3690원이었고, 모임 등 사회생활에 들어간 돈은 3만6300원이었다. 아끼고 아꼈지만 12만4510원이 남았다.

[단독]화려한 스타 뒤 ‘쫄쫄 굶는’ 패션어시···‘텅장 가계부’ 열어보니

업무에 필요한 경비조차 자기 돈으로 지출하는 예도 있었다. 패션어시 A씨(경력 약 3년)는 월 임금 170만원을 받았다. 월세 27만8000원, 식비 34만3000원 등 총 138만2274원을 지출해 31만7726원을 남겼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택시비 등 업무경비 113만6100원을 지출했다. 실장이 업무경비를 지원해주지만 76만원에 그쳤다. 그는 결국 가족에게서 27만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패션어시들은 낮은 처우와 장시간 노동에 불만을 토로했다. 한 패션어시는 “친구 집에도 얹혀 살아봤고, 외부 픽업(빌린 옷) 반납 때 배는 고픈데 돈이 너무 없어서 물 하나 사 들고 종일 돌아다닌 적도 있다”고 했다. 다른 패션어시는 “이런 실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필드(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다들 문제를 제기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행정당국의 관리·감독 강화, 상위 대형 업체들의 불공정 계약에 대한 적극적 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특히 명확한 출퇴근 시간 구별도 없이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제한으로 일하는 관행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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