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삼성 공장에서···유방암 투병 직원, 산재신청 직전 숨져

2023.01.04 13:50 입력 2023.01.04 17:59 수정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화성캠퍼스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라인 내 클린룸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연구원들이 화성캠퍼스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라인 내 클린룸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디스플레이 LCD 작업공정에서 유해물질을 다루며 야간 교대근무를 하다 유방암을 얻은 직원이 산업재해 신청을 코앞에 둔 지난해 마지막날 세상을 떠났다.

4일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의 설명과 경향신문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에서 일하던 박모씨(38)가 지난해 12월31일 유방암으로 숨졌다.

박씨는 2003년 천안사업장에 입사해 LCD제조라인 생산직(오퍼레이터)으로 일했다. LCD제조라인은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폐된 ‘클린룸’으로, 오퍼레이터들은 환기되지 않는 공간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앞에 두고 일한다. 반올림은 박씨도 컬러필터(CF) 공정과 모듈공정 등에서 일하며 발암물질인 감광제와 유기용제, 기타 미확인 성분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봤다.

반올림은 “감광제를 굽는 오븐기 바로 옆에서 일하면서 오븐이 열릴 때마다 열기와 함께 탄 냄새와 역겨운 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당시 노출을 차단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며 “유방암과 연관성이 높은 엑스선 방식의 정전기 제거장치를 통해 방사선 노출 위험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김창길 기자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김창길 기자

LCD제조라인은 24시간 가동되는 특성상 야간 교대근무가 잦다. 박씨도 11년 동안 2~3교대 야간 교대근무를 했다고 한다. 야간근무는 생체 리듬을 교란시키고 면역력을 떨어트려 암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야간근무를 발암물질(2A군)로 지정했다. 야간근무로 인한 호르몬 교란이 유방암·자궁암·난소암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박씨는 입사 13년째가 된 2016년 10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32세였다. 가족력은 없었다. 박씨는 투병기간 동안 암이 계속 악화돼 2021년 6월 퇴사했다.

박씨가 반올림에 직업성암 산재 신청 상담을 문의한 건 2021년이었다. 산재 신청 준비를 하면서 항암치료를 계속 받았다. 부작용으로 심장에 문제가 생겨 잠시 항암치료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박씨는 산재 신청 직전인 지난해 12월31일 숨졌다. 박씨의 산재 신청을 함께 준비한 이종란 반올림 공인노무사는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산재 신청 서류 등을 다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본인 검토만 남겨뒀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최근 전화를 했는데 남편이 받아 박씨가 숨졌다고 말했다”고 했다. 박씨의 남편도 경황이 없어 이 노무사에게 미처 부고를 알리지 못했다고 이 노무사는 덧붙였다. 박씨에게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이 있다. 박씨의 사망으로 당사자의 산재 신청은 불가능해졌다. 다만 유족이 원하면 유족급여 신청 등으로 산재 인정을 받는 방법이 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10주기를 맞아 2017년3월3일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추모행동 참가자들이 수원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가진 뒤 79명의 삼성전자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며 행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10주기를 맞아 2017년3월3일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추모행동 참가자들이 수원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추모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가진 뒤 79명의 삼성전자 산재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며 행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반올림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공정의 노동자 안전 보호 조치가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야간 교대근무가 미치는 건강영향이 심각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현장에서 노출 가능한 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권리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호르몬성 질환에 취약한 여성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씨가 숨지기 이전에도 삼성디스플레이에서는 2021년 9월 A씨(39)가 유방암으로, 지난해 10월 B씨(38)가 자궁경부암으로, 12월19일 C씨(57)가 난소암으로 숨졌다고 반올림은 전했다.

반올림은 “첨단산업에서 끊임없이 병들고 죽어가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뒤에는 노동자들의 건강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이 있다”며 “노동시간 규제와 화학물질 규제를 완화하여 더 많은 노동자들을 질병과 죽음으로 내몰려는 현 정부에 분노한다”고 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측은 “별다른 입장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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