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속 비수도권 쉼터의 겨울나기 (3)

바깥 활동 ‘사치’ 된 장애인들···시설장 “존치 가능할까 위기감 느껴”

2023.02.22 16:10 입력 2023.02.22 17:53 수정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내부. 난방효율화를 위해 비닐로 문을 설치했다./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내부. 난방효율화를 위해 비닐로 문을 설치했다./서성일 선임기자

오후 5시가 되자 20여명이 시설 내 식당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저녁 메뉴는 콩나물국, 김치, 가지볶음, 계란볶음, 단호박조림. 식판을 앞에 둔 백명희씨(가명·41)는 문영희 더불어사는마을 시설장에게 취업훈련기관에서 배운 것을 자랑했다. “컴퓨터 하는 거 연습했어.” 식당에선 “맛있어” “안녕하세요”라는 시설 이용자들의 말과 “기다릴 때는 줄을 서야지” “잘 먹는다”는 사회복지사의 말이 오갔다.

지난 21일 중증장애인 23명이 사는 전남 여수시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을 찾았다. 노인 20명이 사는 요양시설과 함께 운영되는 이곳도 후원 감소와 고물가로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었다. 2000년 이곳을 세운 문 시설장은 “개인 돈으로 메꿔가며 겨우 운영하고 있다. 사명감으로 이분들을 돌보고 있지만 물가가 계속 오르니 ‘존치 가능할까’ 위기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 중 약 80%는 보호자가 없다.

내리지 못하는 보일러 온도, 전기세·난방비 ‘부담’

회계 담당 사회복지사 공지선씨는 “공공요금이 제일 부담된다”고 했다. 그는 “2019년까지만 해도 일반용 전기요금이 연 3200만원 정도이다 점점 오르더니 지난해 5600만원정도 나갔다”고 했다.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마당에 설치된 LPG 탱크. 도시가스 공급이 되지 않아 열효율이 떨어지는 LPG가스로 난방을 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마당에 설치된 LPG 탱크. 도시가스 공급이 되지 않아 열효율이 떨어지는 LPG가스로 난방을 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그나마 전기료와 수도세는 복지시설이라 30% 감면받지만 민간이 공급하는 충전용 LPG는 감면 혜택이 없다. 이 시설은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LPG를 난방 연료로 쓰고 있다. 문 시설장이 LPG충전 내역을 보여줬다. 지난달 10일 가스 1403kg을 충전하고 243만9817원의 요금을, 열흘 뒤 963kg을 충전하고 167만4657원의 요금을 고지받았다. 리터당 요금은 지난해 1784원(1월3일)에서 올해 1739원(1월10일)으로 45원 줄었지만 충전량은 19kg 늘었다.

입소자 대부분이 합병증을 앓고 있어 난방을 약하게 할 수도 없다. 이날 오후 4시30분, 남성 숙소에 들어가보니 보일러 온도가 25도에 맞춰져 있었다. 문 시설장은 “난방비 아끼겠다고 1도 낮추고 감기 걸리면 의료비용이 더 나올 수 있고, 보호자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병원에서 행정처리 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내부의 깨진 유리문. 테이프를 붙여서 사용중이다./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내부의 깨진 유리문. 테이프를 붙여서 사용중이다./서성일 선임기자

오래된 보일러는 부품을 교체해 쓰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여성 숙소의 8년 된 보일러가 한밤중에 멈춰서는 바람에 시설에 있는 전기장판과 히터를 모두 모아 난방을 하기도 했다. 사회복지사 김리원씨는 “깨진 창문과 타일 등 낡은 물건을 교체 못하고 수리하며 버티고 있어 난방 효율까지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식재료값도 부담이다. 김씨는 “단백질 섭취가 중요해 급식하는 고기 양을 줄일 수는 없다”며 “계란도 한판에 8000원대로 올라 ‘계란카레’ ‘계란찜’ 등도 덜 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제난에 ‘사회화’에 필요한 야외활동 제한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사무실내부 2월 행사계획표. 코로나와 고물가로 주말 봉사자 방문일이 26일 하루 뿐이다./서성일 선임기자

전남 여수시 소라면 ‘더불어사는집’ 사무실내부 2월 행사계획표. 코로나와 고물가로 주말 봉사자 방문일이 26일 하루 뿐이다./서성일 선임기자

이날 오후 4시45분쯤 여성 숙소에 들어가자 지적장애인 구하나씨(가명·35)가 하얀색 패딩과 목도리를 걸친 채 문 시설장에게 다가갔다. 문 시설장은 “밖에 나가고 싶어 저렇게 나온 것”이라고 했다. 같은 장애를 가진 50대 심이숙씨(가명)는 입이 삐죽 나온 채 “밥 먹으라”는 사회복지사의 말을 무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남자들이 밖에 나갔다 온 걸 알고 삐진 것”이라고 했다.

지출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바깥 나들이는 ‘사치’가 돼 버렸다. 문 시설장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야외 활동을 주 2~3회 정도 했으나 최근에는 주 1회 할까말까 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동안 기업의 후원에 힘입어 영화관, 카페, 여행지 등에 갈 수 있었지만 후원 기업은 2020년 초 6곳에서 1곳으로 줄었다. 지자체 자금 사정으로 시설 보조금도 지난해보다 줄었다고 했다.

사회복지사들은 시설 장애인들이 바깥에 나가 공공질서를 배우는 것은 사회화와 자립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공씨는 “오랜만에 밖에 나가다보니 (장애인들이) 주문 전에 줄을 서고 화장실을 찾아 대소변을 보고 하는 방법을 잊었다”며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고 표현은 못하지만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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