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안 주는 ‘가족 같은 회사’…터지는 신고, 못 잡는 정부?

2023.04.12 15:05 입력 2023.05.12 16:19 수정

최저임금 사각지대 ‘5인 미만 사업장’

5년간 ‘절박한 신고’ 꾸준히 늘었지만

근로감독은 감소추세…적극성 ‘의문’

“노동 법치 강조하는 정부, 더 관심을”

2017년 대선 당시 여야 주요 후보들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시간표도 제시했다.

하지만 전년 대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정점을 찍은 2018년 이후 최저임금은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당했다. 그해 2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이 10만4000명으로 크게 둔화했고, 8월에는 3000명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빚은 “고용 참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 최저임금도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인상률(10.9%)을 기록하면서 최저임금을 겨냥한 공세는 더 강화됐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커진 뒤 최저임금은 줄곧 한 자릿수 인상에 그쳤다.

최저임금은 정말 ‘고용 참사’의 원인일까. 각종 통계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릿수였던 2019년,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 폭은 30만1000명으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용률도 2018년 0.1%포인트 감소했지만 2019년에는 60.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고용이 줄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낮아지고 소득분배가 개선됐다는 통계도 나왔다.

18일 시작하는 올해 최저임금 심의는 2020년 이후 처음으로 코로나19라는 변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2023년 물가 인상으로 인해 실질임금은 줄었고, 미국·독일 등 해외 주요국은 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최저임금이 미운 오리 새끼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깔렸다.

경향신문은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혼란스러워진 현장,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해외 사례 등을 4회에 걸쳐 다룬다. 다시, 최저임금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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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 월급 110만원.

수도권의 한 미용실에서 스텝으로 일하는 A씨(24)가 2021년 경북의 다른 미용실에서 스텝 과정을 밟을 때 받은 월급이었다. 1달을 4주로, 1주에 60시간 일했다고 ‘퉁쳐서’ 주휴수당 빼고 계산해도 A씨는 시간당 4583.3원을 받은 셈이다. 그해 최저시급은 8720원이었다.

“여기서 일하면서 배우면 디자이너가 될 수 있겠지, 그 생각으로 버텼죠.” 미용사들은 통상 2~3년간 스텝으로 일하며 기술을 배우고 이후에 헤어디자이너로 승급한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A씨에겐 현장에서 경험도 쌓고 원장에게 기술도 배우는 실습 교육이 절실했다. 하지만 ‘연습하면서 돈도 받는 것’이라던 원장은 A씨에게 기술을 거의 가르쳐주지 않았다. A씨는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실상 혼자서 직원처럼 일했다.

A씨가 의구심을 품지 않은 건 아니었다. A씨는 미용실에 막 채용된 2020년 7월 원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써달라고 했다. 원장은 ‘서류가 집에 있다’는 등 핑계를 대며 계약서 작성을 미뤘다. 그해 말 미용실이 작은 시골 동네를 떠나 시내로 옮겼을 때도 원장은 계약서를 써주지 않았다. A씨는 임금명세서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원장과 A씨 2명뿐인 미용실에서 A씨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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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결국 2021년 9월쯤, ‘대구 시내에 있는 다른 인턴들은 최저시급도 받고 원장한테 교육도 듣는다는데, 왜 나는 교육도 못 받고 돈을 떼이냐’고 따졌다. 원장은 ‘(A씨가)부모에게 잘못 배웠다’고 맞받았다.

A씨는 일을 그만두고 원장을 노동청에 신고했다. 스트레스로 정신적 어려움도 겪었지만, 출퇴근하는 동안 남자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와 사진 등이 증거로 인정됐다. 노동청은 지난해 9월 최저임금법 위반과 근로계약서 미작성, 퇴직금 미지급 등으로 원장을 검찰에 기소 의견을 달아 송치했다. 근로감독관은 A씨가 1년3개월 동안 임금과 퇴직금 약 1800만원을 뜯겼다고 봤다.

“정부가 이런 걸 제대로 신경 쓰는지 잘 모르겠어요.” A씨는 말했다. “사실 중간에 후회도 많이 됐어요. 그래도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보다 그 사람(원장)이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회사 관두더라도”…절박한 ‘5인 미만’ 최저임금 신고 ↑

작은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임금법 위반에 시달린다. 최저임금 미지급으로 신고된 사업장 중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비중이 오르고 있다.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감독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정부가 ‘노동 약자’와 ‘노동 법치주의’를 중시한다면 기초노동 질서조차 지켜지지 않는 작은 사업장에 관리·감독을 더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받은 ‘2018~2022년 사업장 규모별 최저임금법 신고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노동부는 지난 5년 동안 1만1448건(사업장 규모 미입력 제외)의 최저임금법 위반 사건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5822건이 행정 종결(권리구제·위반 없음·불출석 등)됐고 4742건은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노동부가 처리한 신고사건 중 98.2%인 1만1239건이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최저임금법 제6조’ 위반이었다.

[단독]최저임금 안 주는 ‘가족 같은 회사’…터지는 신고, 못 잡는 정부?[다시, 최저임금①]

최저임금 위반 신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인데, 이 비중이 최근 뚜렷하게 늘고 있다. 2018년 노동부가 처리한 최저임금법 6조 위반 신고 처리사건 2228건 가운데 49.3%(1097건)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신고였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중은 2019년 48.8%(2583건 중 1260건), 2020년 47.7%(2619건 중 1249건)로 조금 내려갔다. 그러나 2021년 51.6%(2032건 중 1048건)로 다시 늘더니, 2022년에는 57.1%(1777건 중 1015건)로 훌쩍 뛰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법 위반을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장의 입김이 직접적으로 미치고,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 금지 조항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작은 사업장에서 최저임금법 위반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원장과 둘이 일한 A씨도 여러 차례 불만을 품었지만 신고는 일을 그만둔 뒤에야 가능했다.

신고 ‘5인 미만’ 가장 많은데…정부 근로감독은 어디에?

최저임금법 위반 신고 대부분이 5인 미만 사업장이지만, 작은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감독은 한참 부족했다. 윤 의원실이 받은 ‘2018~2022년 사업장 규모별 근로감독 결과 최저임금법 6조 위반 건수(사업장 규모 미입력 제외)’를 보면, 시간이 갈수록 5인 미만 사업장의 적발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노동부가 근로감독에서 잡아낸 최저임금법 6조 위반 건수 중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중은 2018년 22.0%(1527건 중 336건)에서 2019년에는 13.4%(1350건 중 181건)였다가 2020년 13.9%(165건 중 23건), 2021년 7.7%(209건 중 16건)에 그쳤다. 2020~2021년은 코로나19로 근로감독 사업장 수 자체가 평년의 20~40%로 줄었다. 하지만 근로감독 사업장 수가 원상회복된 2022년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의 6조 위반은 11.3%(441건 중 50건)에 머물렀다.

[단독]최저임금 안 주는 ‘가족 같은 회사’…터지는 신고, 못 잡는 정부?[다시, 최저임금①]

정부의 감독은 5~5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됐다. 5~50인 규모 사업장의 적발 건수가 5년간 3692건 중 2164건(58.6%)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엔 74.6%(329건)에 달했다.

노동부는 감독 대상 영세사업장의 범위를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신고건수와 감독건수 사이에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감독 시 영세사업장의 기준을 통상 10~30인 미만 등으로 많이 잡고 있을 뿐, 영세사업장에 대해 감독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신고사건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많은 것은 사업장 수 자체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2022년은 일상회복 이후 30인 미만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무관리 계도에 집중했기 때문에 (코로나19 이전과) 건수에서 차이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대기업·공공기관과 비교하면 10~30인 사업장도 영세한 사업장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신고사건 대부분이 5인 미만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보면 지금의 근로감독은 ‘미스 매치’다.

정부가 ‘노동시장 약자’를 위한다면서, 정작 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구제엔 신경을 덜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윤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있어 가장 취약한 곳으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며 “노동약자의 권익과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한다면, 법의 보호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노동부의 책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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