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동호가 떠난 후 모든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지금도 퇴근 시간이 되면 동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엄마 나 왔어’라고 할 것 같은데, 이젠 없습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 주차장에서 쓰러져 숨진 김동호씨(29)의 형 김동준씨가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장에 섰다. 손에는 명함 크기 만한 동호씨의 사진을 들었다.
“국회와 정부, 코스트코에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동준씨는 “동호는 내년 초 미군 입대를 고려할 만큼 건장하고 꿈 많은 청년이었다”며 “동호 사망 후 코스트코 하남점에 가서 며칠 동안 주차장 온도를 재 봤더니 40도가 넘었다. 3일 내내 40도 속에서 물도 없이 카트를 끌며 4만보를 걸었는데, 이게 중대재해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했다.
동호씨는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6월19일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 주차장에서 업무를 하던 중 쓰러졌다. 김씨는 매시간 200대가량의 카트를 밀며 매일 3만6000~4만보를 이동했다. 쓰러진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형 동준씨는 코스트코의 열악한 노동안전·인력관리가 산재를 불렀다고 했다. “내 동생을 이렇게 만든 코스트코 관리자들은 수억원의 인센티브를 받으면서도 직원들을 위해 하는 일은 없다”며 “(회사는) 직원들이 인력증원을 그렇게 요청해도 시즌에만 뽑고 콤보(순환)만 돌렸다”고 했다.
진 의원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코스트코 산재 승인 건수는 2019년 73건에서 2020년 96건, 2021년 181건, 2022년 267건 등으로 폭증했다. 진 의원은 “노동자 수 대비 산재 발생 비율은 다른 유사 대형마트 산재의 3~4배”라며 “산업안전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코스트코가 산재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유족의 자료 요청에 비협조적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동준씨는 “동호 관련 서류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여러 번의 거절과 말 바꾸기, 시간 지연으로 50일 만에 다 받았다”며 “서류를 요청할 때마다 코스트코는 ‘왜 필요하냐’ ‘부모님이 오든지 위임장을 갖고 오라’는 비협력적 태도였다”고 했다.
동준씨는 “사고 이후 회사로부터 아무 연락도 없고 소통 창구도 없어 미국 코스트코 본사 회장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한 달 만에 답장이 왔다”며 “그나마도 형식적인 사과 1~2줄뿐이었다”고 했다.
조민수 코스트코코리아 대표가 장례식장에 조문을 와 직원들에게 ‘동호가 평소에 아프지 않았나’ ‘병을 숨기고 입사한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동준씨는 “직원 8명이 모인 테이블에서 조 대표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조 대표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하자 동준씨는 “위증”이라며 “(말을 들은) 직원이 7~8명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라고 했다. 동준씨는 동생의 사진을 들고 조 대표를 보며 “눈을 시퍼렇게 뜨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라며 “동호 사진이 여기 있다. 보라. 동호 앞에서 그때 했던 말을 똑같이 해보라”고 했다.
동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 가족은 동생을 잃은 슬픔 속에서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100일 넘게 지옥 속에서 보내고 있다”며 “모든 일상이 무너졌다. 부모님은 동호 사진 앞에서 매일 기도하며 꼭 살아 올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이어 “집안 곳곳에 동호의 흔적이 있지만, 분위기 메이커였던 동생의 부재로 집은 많이 허전하다”고 했다.
동준씨는 이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소지가 있다면 사업주를 철저히 조사해 엄벌에 처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며 “동호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지 말란 법 없다. 남은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의 ‘권고’가 ‘의무’로 바뀌도록 개선을 꼭 부탁드린다”고 했다.
발언을 모두 들은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사망사고 조사 및 처벌은 엄중히 진행 중”이라며 “안타까운 현실에 답답하고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이 장관은 “여전히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맞나 싶다”며 “노동자들은 단순히 쓰다가 필요 없으면 갈아 끼우거나 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으며 같이 가야 할 동반자라는 생각을 우리 사회가 가졌으면 한다.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이날 국정감사장에는 조 대표뿐 아니라 이강섭 샤니 대표, 마창민 디엘이앤씨 대표도 증인으로 참석했다. SPC그룹 계열사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선 지난 8월 끼임사고로 노동자가 숨졌다. 디엘이앤씨 시공현장에선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뒤 7건의 중대재해(사망자 8명)가 발생했다.
여야 의원들은 기본적 안전조치조차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SPC와 디엘이앤씨에서 중대재해가 반복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대재해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노동부 책임도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에게 “SPC그룹은 ‘동료 노동자가 본인도 모르게 버튼을 눌렀다’며 지난 8월 중대재해 책임을 동료 노동자에게 돌리는 발표를 했다. 이 사고가 회사 책임인가, 동료 책임인가”라고 물었다. 이 대표는 “노동부와 경찰이 조사 중이라 의견을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답해 질타를 받았다. 마 대표는 거듭된 중대재해 사고 이후 디엘이앤씨가 안전예산을 얼마나 증액했는지를 묻는 질의에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박정 환노위원장에게 이 대표는 샤니 대표일 뿐 SPC 전체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에 허영인 SPC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의 출석은 오너(사주) 감싸기다. 종합감사 때라도 허 회장을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디엘이앤씨 중대재해와 관련해 이해욱 디엘그룹 회장에 대한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