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계엄군, 44년 지나도 반성 없어”

2024.06.02 21:22

5·18 조사위, 최초로 9명 개별 특정해 검찰 수사 의뢰

주남마을 뒷산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강윤중 기자

주남마을 뒷산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강윤중 기자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송암동 양민학살 11공수 소속
방조한 장교 3명도 포함…여당 추천위원 3명은 ‘반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가 검찰에 5·18 당시 민간인 학살에 직접 가담한 계엄군과 지휘관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다. 국가기관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계엄군을 특정해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44년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5·18과 관련한 형사처벌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등 신군부 지휘부 일부에 한정됐다.

5·18조사위는 “지난달 31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양민학살 계엄군’과 ‘내란목적살인 행위자’에 대해 위원 5명의 찬성으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의결했다”고 2일 밝혔다. 위원회에는 8명이 참석했지만 보수정당이 추천한 3명은 표결에 불참했다.

5·18진상규명특별법에는 ‘조사한 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되고 범죄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검찰총장에게 고발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5·18조사위는 지난 4년의 조사를 통해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과 ‘송암동 양민학살’ 사건은 계엄군 9명의 범죄가 명백하다고 결론 냈다.

특히 조사위는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확인사살하거나 즉결처형을 직접 실행한 계엄군의 소속과 계급 등을 동료 군인들의 진술 등을 통해 특정했다.

주남마을에서는 1980년 5월23일 오전 9시쯤 광주 외곽을 차단하고 있던 11공수가 14명이 탄 미니버스에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당시 A하사는 총격 이후 차량에 올라 부상한 시민을 확인사살까지 했다. 5·18조사위는 최소 4명이 A하사의 확인사살로 뇌 손상이나 흉부관통상 등으로 숨진 것으로 결론 냈다. B일병은 미니버스에서 부상을 입고 여단 본부로 붙잡혀온 시민 2명을 작전보좌관 C소령의 지시로 인근 숲속으로 끌고 가 사살하고 암매장했다.

암매장된 청년 2명은 5·18 이후 주민 신고로 발굴됐지만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무명열사’로 묻혔다가 2001년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족을 찾았다.

5월24일에도 11공수는 남구 송암동에서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했다. 광주비행장으로 철수하던 11공수는 송암동 인근에서 매복해 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 보병학교 교도대와의 오인 교전으로 큰 피해를 봤다. 11공수는 이후 인근 마을을 뒤져 젊은 주민들을 분풀이로 학살했다. D상사는 마을에서 붙잡아온 비무장 청년 3명을 M16 소총으로 쏘고 확인사살까지 했다. E상사는 비무장 상태였던 시민 1명의 머리와 등을 대검으로 찌르고 M16 소총으로 살해했다. 5·18조사위는 최웅 당시 11공수여단장과 소속 계엄군들의 범죄를 막지 않고 방조한 장교 3명도 함께 고발하기로 했다.

이들 사건은 연행한 시민을 임의로 처형한 범죄인 만큼 유엔의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규정된 집단살해에 해당한다는 게 5·18조사위 판단이다. 또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아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5·18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수사와 조사에서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개별 계엄군들에 대한 처벌이 추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조사위 관계자는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계엄군을 특정, 처음으로 개별 형사책임을 묻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가해자로 특정된 계엄군들이 44년이 지났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죄가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도 고발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이종협·이동욱·차기환 위원은 계엄군의 검찰 고발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나타내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