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위원회(군인권보호위)가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숨진 훈련병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 여부를 오는 25일 결정키로 한 것을 두고 인권위 안팎에서 비판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군인권 보호’라는 기관 수립 취지에 맞지 않는 소극 행정이라는 게 비판 골자다. 직권조사 적기를 놓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5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군인권보호위 소위에서는 ‘다음 회기에 재상정 해야 한다’는 의견과 ‘직권조사를 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용원 군인권보호관(대통령 추천)·한석훈 비상임위원(여당 추천)과 원민경 비상임위원(야당 추천)이 2 대 1로 의견이 나뉜 것으로 전해졌다.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한 탓에 의결이 무산되면서 직권조사 개시 여부를 25일 다시 논의키로 했다. 25일은 얼차려를 받다 쓰러진 훈련병이 숨진 지 한 달째 되는 날이다.
사망 한 달 뒤 ‘직권조사 여부’ 재논의
군인권보호위의 늑장 대응으로 신속한 조사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많은 장병의 죽음 끝에 만들어진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취지가 퇴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권위 내부에서도 “이미 늦은 의결을 왜 더 미루는지 모르겠다”는 평가가 나왔다. 애초 지난달 28일 예정된 소위는 위원 개인 사정으로 한 차례 연기되면서 지난 4일 열렸다.
인권위 직원 A씨는 “인권위 개입으로 피해자가 곤란해지는 경우라면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사건은 기다릴 이유가 없다”라며 “사망 이후 한 달 뒤에 직권조사 여부를 논의하는 건 너무 늦다”고 말했다. 직원 B씨는“훈련병 건강 이상 징후를 보고했는지를 두고 말이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직권조사 개시) 결정이 늦어질수록 조사 의미가 흐려질 수 있다”고 했다.
전날 인권위가 낸 ‘정부·군 당국이 진행 중인 조사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두고도 제도 취지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수사 추이를 보고 개입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은 인권위가 국방부 반대를 물리쳐가며 얻어낸 사망사건 초기 조사 권한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외부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군 관련 사건의 경우 인권위가 직권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인권위법은 군인권 침해 사건의 경우 재판·수사 중이더라도 위원회 의결을 거쳐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인권위는 인권 침해가 벌어졌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으면 직권조사할 수 있다. 사망을 유발한 군대 내 체계도 직권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지난해 7월19일 채모 상병 사망사건 후 같은달 25일 인권위는 ‘군 재난대응 동원 인력의 보호체계에 대한 직권조사’를 개시했다. 이번에서도 인권위는 지난달 30일 사망 사건이 일어난 강원 인제군 부대 현장조사에 나섰다. 인권위 관계자가 민·군 합동 조사에 입회하고 현장 보고서를 작성했다.
군인권보호관 제도는 2014년 군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으로 필요성이 대두됐다. 2021년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이 공론화되며 2022년 출범했다. ‘군 인권침해 문제에 대응하는 군 외부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합의까지 8년이 걸렸다. 이 성과에 따라 군인권보호관은 군부대 불시 방문조사권과 사망사건 조사·수사 입회 요구권을 갖게 됐다. 국방부 장관은 군인 등이 복무 중 사망하는 경우 즉시 군인권보호관에게 이를 통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