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밥심에 울고 웃었다…투쟁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채운 ‘거리의 집밥’

2024.06.19 19:40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유희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성동훈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유희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성동훈 기자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 유희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애도하며 “감사했다”고 전했다. 유씨는 빈민, 장애인, 노동자 등 거리의 투쟁가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먹여주는 사람이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유씨의 빈소에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조합원들이 ‘밥은 하늘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이 문구는 유씨가 평소 가장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가 30년 가까이 밥 연대를 다닌 활동사진을 모은 현수막도 맞은 편에 걸렸다. ‘장례식에서 너무 많이 울지 말고 슬픈 노래만 틀지 말라’는 고인의 생전 당부를 담아 동료들이 준비했다.

주황색 앞치마를 입은 사진 속 유씨는 여느 때처럼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조문객들이 빈소에 들어설 때마다 유가족과 고인의 동료들은 “유희 동지가 마지막으로 해주는 밥”이라며 “많이 먹으시라”는 말을 건넸다.

고공농성장에서 세월호까지…그가 지은 밥은 힘이고 깃발이고 위로였다

유씨의 밥을 한 번이라도 먹은 이라면 국자를 들고 호탕하게 웃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김종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은 “유희 동지는 정말 호탕하고 옆집 형 같은 스타일이었다”며 “노래도 어찌나 잘 부르는지 고공농성을 할 때마다 유희 동지가 마이크 잡고 노래도 불러주고 밥도 해줘서 정말 힘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컵라면 하나 챙기기 쉽지 않은 투쟁 현장에서 삼시세끼를 차리는 밥묵차는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된장국, 우거짓국, 어묵탕, 오이냉국…. 유씨가 만든 집밥을 먹은 이들은 저마다 힘이 됐던 음식을 떠올렸다. 1990년대 노점상 활동을 하며 고인과 만났던 김상열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부본부장은 “누나가 했던 제육볶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웃으면서 ‘많이 처묵어!’라고 말하던 누님의 모습은 맏누나 같아 늘 반가웠다”고 말했다.

고인은 약자가 싸우는 곳은 어디든 찾았다. 2020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복직 투쟁을 위해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투쟁을 함께 했던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 “한겨울 유희 동지가 끓여줬던 따뜻한 어묵탕을 잊을 수 없다”며 “당시 김진숙 위원은 유씨가 입은 주황색 앞치마를 보며 ‘투쟁의 선두에 선 깃발 같다’고 했었다”고 전했다.

밥묵차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있던 팽목항과 광화문 광장 농성장 등도 찾았다. 희생자 임경빈군 어머니 전인숙씨는 “2019년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할 때 선생님이 밥으로도 발언으로도 연대해주면서 ‘같이 못 자서 미안하다’고 하시곤 했다”며 “언제나 멋지고 든든한 ‘내 편’이었고 언니, 엄마 같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유희씨(왼쪽 두번째)와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활동가들. ⓒ십시일반 밥묵차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유희씨(왼쪽 두번째)와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활동가들. ⓒ십시일반 밥묵차 제공.

암 투병 중에도 이어간 밥 연대…“밥상 앞에선 누구도 차별받지 말아야”

빈소에는 민주노점상전국연합과 전국철거민연합의 근조 화환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고인은 1988년 서울 청계천에서 폭력 단속에 맞서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인 노점상의 죽음을 목격하며 집회 현장에서 밥을 짓기 시작한 것이 30년 밥 연대의 시작이었다.

유씨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10년간 그와 함께 일해온 성미선씨는 “일에 집중해 무표정하게 있을 때면 언니가 국자로 상을 두드리면서 ‘웃으면서 밥을 나눠야 밥을 먹는 사람이 힘이 나지’라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성씨는 “언니는 ‘막내아들 좋아하는 반찬을 싸가라’는 권유는 마다하고, 노숙인과 어르신들께는 아낌없이 반찬을 나누던 사람”이라며 “밥상 앞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유씨는 투병 중에도 밥묵차 활동을 이어갔다. 장애인의 날인 지난 4월20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행사에 참석해 활동가 50~60명에게 불고기 100인분을 나눴다. 집에 가는 길 챙겨가라며 떡 한 말도 쪄갔다.

빈소 한쪽에는 추모 메시지를 적은 메모지를 붙이는 공간이 마련됐다. 조문객들은 “사랑하는 언니 그곳에서는 좀 쉬었으면 해, 국자 들고 호통치는 모습이 그려지니까. 사랑해” “우리는 유희 동지가 보여준 사랑과 연대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서로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함께 살아갈 겁니다” “언니! 누나! 동지!” 등의 글이 보였다. 유씨의 밥으로 생명과 희망을 이어갔던 이들이, 꾹꾹 눌러쓴 마음들이었다.

19일 유희씨의 빈소 벽 한편에 포스트잇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조문객들 유씨에게 ‘밥심으로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신 동지’ ‘따뜻한 한 끼 담대한 저항으로 발효될 것이니 편히 쉬소서’ 등의 글을 남겼다. 이예슬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19일 유희씨의 빈소 벽 한편에 포스트잇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조문객들 유씨에게 ‘밥심으로 넉넉한 품으로 안아주신 동지’ ‘따뜻한 한 끼 담대한 저항으로 발효될 것이니 편히 쉬소서’ 등의 글을 남겼다.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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