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된 공공돌봄, 약자를 내몰다

믿었던 공공돌봄 끝이 ‘벼랑 끝’···말뿐인 약자 동행

2024.07.08 06:00 입력 2024.07.08 06:24 수정

5년 전 서울시 공공돌봄을 책임지겠다는 포부로 문을 열었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이 7월 말로 사업을 종료한다. 7월 마지막 날로 서사원 노동자들은 모두 일터를 떠난다. 서사원 서비스 이용자들도 이용 종료를 통보받았다.

서울시의회가 지난 4월 서사원 지원 조례 폐지안을 가결한 이후 서사원 폐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5월22일 서사원 이사회는 해산을 의결했다. 요양보호사인 노동이사 한 명을 제외한 이사 6명이 해산에 찬성했다. 서울시는 다음날 해산을 승인했다.

서울시는 서사원이 방만 경영으로 효율적인 예산 집행에 실패했고, 공공돌봄 역할 역시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했다. 해산 국면에서 이용자들 목소리는 반영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지난 한 달간 만난 이용자들과 노동자들은 서사원을 대체할 민간 시설이 없거나 서사원보다 낮은 질의 돌봄을 받게 될까 우려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준비·대안 없이 공공이 놓아버린 사회적 약자들은 민간으로 내몰리게 됐다.

업계 눈치 봐야 하는 ‘난도 높은 이용자’

서울시는 지난 5월23일 산하 공공돌봄기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해산을 승인했다. 사진은 지난 7일 촬영한 서사원.  한수빈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시는 지난 5월23일 산하 공공돌봄기관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해산을 승인했다. 사진은 지난 7일 촬영한 서사원. 한수빈 기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열세 살 딸을 홀로 키우는 강순영씨(가명·34)는 4년 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감정 조절을 어려워하는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1년간 또래 아이들과 마찰을 빚는 일이 잦았다. 도움이 필요했던 강씨는 집 근처 민간 기관 대여섯 군데에 연락해 활동지원사를 문의했지만 대기조차 걸 수 없었다. “연락했던 민간 기관들이 모두 ‘사람이 없다’며 거부했어요. 그때 유일하게 받아준 곳이 서사원이었어요.”

그해 겨울 연이 닿은 서사원은 지난 4년간 강씨 모녀의 일상을 지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3시까지 서사원 소속 활동지원사가 딸의 등하교와 학교생활을 도왔다. 불안해하던 딸은 곁을 지키는 어른이 생기니 진정을 되찾았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성을 보이는 빈도도 줄었다. “학교 가기 싫다고 울고 싸우는 게 매일 반복이었는데, 지원사 선생님이 오시고 나선 아이가 훨씬 좋아졌죠.” 딸이 안정을 찾고, 강씨도 생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안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지난달 6일 서사원 운영 종료를 통보받은 강씨는 다시 불안이 커졌다. 사업 종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미처 뭐라 대응할 틈도 없이, 6월 말 문을 닫고 7월 말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씨는 “미혼모라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당장 7월 이후 근무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하다”고 말했다.

서사원 요양보호사 이모씨는 업무 가방에[ ‘내일의 나를 돌보는 사람’ 문구가 적힌 열쇠고리 달고 다닌다. 이 업무 가방에는 이용자 목욕 서비스를 위한 각종 도구가 담겨 있었다. 김송이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서사원 요양보호사 이모씨는 업무 가방에[ ‘내일의 나를 돌보는 사람’ 문구가 적힌 열쇠고리 달고 다닌다. 이 업무 가방에는 이용자 목욕 서비스를 위한 각종 도구가 담겨 있었다. 김송이 기자

강씨는 4년 만에 다시 민간 기관에 연락을 돌렸다. 여전히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웠다. “민간 기관 명단을 보니 옛날에 연락했던 곳들이랑 똑같더라고요. 새로 생긴 기관들이 있는 것도 아녜요.”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딸이 받는 활동지원급여가 120시간이라는 점이 강씨의 애를 태웠다. 시급제로 일하는 민간 기관 종사자들은 하루 중 서비스 시간이 더 긴 이용자를 선호한다. 한 번 출근했을 때 보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 기관에 연락을 돌리던 강씨가 ‘(활동지원급여) 몇 시간 받느냐’는 질문에 “120시간”이라고 답하자 예상했던 답이 돌아왔다. “(급여) 시간이 적으니 좀 기다려야겠네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이용자를 활동지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기관에 전화하면 일단 장애유형부터 물어봐요.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고 하면 공격성이 있으니까 좋아하지들 않아요. 공격성은 있는지, 아이 때문에 사람들이 다친 적이 있었는지 묻더니 ‘우리 기관에선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강씨는 민간에서 활동지원사를 구하더라도 서사원처럼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순 없을 것이라 말했다. 아이의 돌발행동으로 활동지원사가 다치면 민간 기관도 서사원처럼 지원사들을 보호할 체계를 갖췄을지도 미지수다. 공공기관인 서사원은 노동자 보호 체계를 민간보다 더 잘 마련했다. 노동자 안전이 보장되니 공격성이 높은 아이라는 이유로 서비스 이용에서 배제하지도 않았다. 문제 행동이 심할 땐 활동지원사 2명이 딸을 지원하거나 심리상담가가 동행해 아이 상태를 확인했다. 강씨가 낼 추가 부담금은 없었다.

3주간 마음을 졸이고도 민간 기관의 연락이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2학기부터 아이의 학교를 따라다녀야 할까’ 걱정하던 강씨는 최근에서야 겨우 민간 기관 종사자 1명을 어렵사리 연결받았다. 그는 “지원사분이 고령이셔서 걱정되는데 달리 선택지가 없다”며 “서사원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을까. 우리처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좋은 게 왜 없어지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믿고 맡기라’던 서울시, 다 빼앗아갔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서사원 이용자 신현숙씨가 서대문구 인근 장기요양 기관 명단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송이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달 18일 서울 서대문구의 자택에서 서사원 이용자 신현숙씨가 서대문구 인근 장기요양 기관 명단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송이 기자

“진짜 어떡해요. 다음주 월요일에 또 수술하러 가야 하는데 어떡해요. 엄마도 혼자 계시는데...”

서사원 운영 종료를 열흘 남짓 앞둔 지난달 18일.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소아마비 장애인 신현숙씨(56)의 자택으로 서사원 돌봄센터 관리 직원이 찾아왔다. 서비스 종료 안내문을 가져온 직원에게 신씨는 연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여든세 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신씨는 지난 3년간 서사원에서 어머니를 위한 방문요양 서비스와 본인 몫의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해왔다. 모녀의 손발이 돼준 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대안 민간 기관을 추천해달라 부탁했지만 소용없었다. 직원에게서 돌아온 답은 ‘민간 기관을 연계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대문구에 있는 민간 기관 이름과 주소, 등급이 적힌 명단을 받아든 신씨는 “당장 요양보호사와 활동지원사 2명씩이나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대책이 없다”고 오른쪽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신씨는 회전근개 파열 수술과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이어온 목발 생활 탓에 양쪽 어깨는 물론, 무릎과 눈 등 멀쩡한 곳이 없었다. 신씨가 서사원을 이용하게 된 것도 3년 전 처음 회전근개 수술을 받았을 때였다. 수술 후 꼼짝도 못 하는 신씨와 그의 어머니를 책임진 것이 서사원의 ‘돌봄 SOS’ 서비스였다. “평생 목발 짚은 채로 집 안 청소부터 엄마 케어까지 해왔는데 돌봄을 받아보니까 숨통이 좀 트였어요. 처음으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때 그렇게 한 번만 써보라고 하더니…이렇게 좋은 걸 단맛만 보게 하고 줬다 뺏으면 어떡해요.”

서울시사회서비스사원 요양보호사 박모씨가 지난달 18일 노인성 치매를 앓는 송모씨 자택에서 인지 훈련을 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시사회서비스사원 요양보호사 박모씨가 지난달 18일 노인성 치매를 앓는 송모씨 자택에서 인지 훈련을 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신씨는 민간 기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크게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서사원에서 건넨 서대문구 일대 민간 기관 명단만 봐선 어떻게 일일이 연락을 돌릴지, 어디에 서사원처럼 검증된 ‘선생님’이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민간 기관에서 벌어졌던 학대나 방치 문제를 뉴스에서 본 기억도 떠올랐다. 그는 “복지관에 가서 보면 이용자한테 ‘야’라고 부르거나 부당하게 하는 지원사들도 있다”며 “서사원 선생님들은 남들이 친구 아니면 가족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꼼꼼하게 잘 챙겨준다. 서울시에서 하는 거니까 믿음이 갔던 것”이라고 했다.

신씨는 서사원 해산 소식을 듣고, 서울시에 항의 전화를 했다. 시청 앞에서 열린 해산 규탄 시위 현장까지 나가기 힘들어, ‘뭐라도 해야겠다’며 선택한 방법이었다. 신씨는 “오죽했으면 휘발유를 온몸에 뿌리고 분신해야 들어줄 거냐고 했다. 그랬더니 서울시 직원이 ‘(서사원) 절대 없어질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서비스받지 못하게 될 일은 없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 12시쯤 신씨의 활동지원사와 신씨 어머니의 요양보호사까지 4명이 모인 집에는 헤어짐을 앞둔 이들이 한숨을 삼키는 소리만 가득했다. 신씨가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게 있으면 개선하고 보완할 생각을 해야지 무턱대고 이렇게 없애는 게 어디 있어요. 복지는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지 돈 들어오는 사업은 아니잖아요. 서사원이 얼마나 필요한 곳인지 서울시 사람들이 직접 휠체어 탄 채로 서사원도 이용해보고 민간도 이용해봐서 각각 어떤지를 알아야 해요.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약자 목소리 들어주는 이는 없더라

서사원 이용자 이상헌씨가 지난달 18일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요양보호서비스를 받고 있다. 김송이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서사원 이용자 이상헌씨가 지난달 18일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요양보호서비스를 받고 있다. 김송이 기자

지난 4년간 기초수급자 이상헌씨(63)가 유일하게 주5일 매일 만났던 이들은 서사원 요양보호사였다. 10년 전 당한 교통사고로 뇌경색을 앓게 된 뒤로 혼자 살던 이씨에게 가족 같이 찾아온 이들이었다. 편마비로 거동이 불편하고 어눌한 이씨는 “서사원 선생님들이 사회생활 하라고 자꾸 말 시키고 운동하라고 괴롭혀 준 덕분에 우울증이 해결됐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서사원 해산에 관한 생각을 묻자 힘겹게 얼굴을 찡그리며 흐느껴 울었다.

이씨는 서사원 해산 결정을 불과 나흘 전에 들었다. 인근 민간 기관의 등급별 명단을 받았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 전 어머니를 모시며 이용했던 요양보호 기관은 70대, 80대 고령 보호사들이 많아 어머니 돌봄을 힘겨워했다. 이씨는 “우리 어머니랑 연세가 비슷한 분들만 오시니까 운동을 도와주지도 못했다”며 “그렇게 2년 사이 사람이 3명이나 바뀌었었는데 나도 이제 비슷한 상황이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민간 기관에는 여성 요양보호사들이 많아 남성 이용자들을 선호하지 않기도 한다. 목욕 서비스 등 육체적으로 고될 뿐 아니라, 성희롱 등에 노출되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씨처럼 반지하에 살아 화장실이 좁고 열악한 이용자들은 민간에서 언제든 거절당할 수 있다는 부담을 떠안고 지낸다. 서사원에선 요양보호사 2명이 동시에 이씨를 돌봐 거절의 부담이 없었다.

지난달 26일 서사원 이용자 이상헌씨가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요양보호서비스를 받고 있다. 김송이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지난달 26일 서사원 이용자 이상헌씨가 서울 강동구 자택에서 요양보호서비스를 받고 있다. 김송이 기자

이씨 같은 이들은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이지만, 서사원 해산에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동도, 의사소통도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사람 말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요양보호사 같은 사람들이나 내 말을 들어주지, 일반인한테 얘기해봐야 ‘몸 다친 네 잘못이지. 왜 돈 많이 드는 거 하려 하냐’고 해요.” 이씨는 대신 요양보호사들에게 시청 앞으로 가서 자기 몫까지 목소리를 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사원이 높은 인건비를 이유로 월급제를 폐지하려고 했을 때도 이씨는 요양보호사들에게 “가서 시위하라”고 했다.

“(민간에선) 이 사람들 시급이 최하예요. 돌봄이라는 중요한 일을 하는데 몸은 몸대로 힘들고 월급은 적으니 기분 좋게 사람을 대하질 못하잖아요. 그런 걸 서울시가 좀 알아야 하는데 인건비 싸다고 외국인 노동자들만 부르겠다는 소리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이씨는 서울시가 ‘약자와의 동행’이 어떤 뜻인지 돌아보길 바란다고 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돈 더 내고 필요한 걸 찾아 쓰면 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게 안 되잖아요. ‘서민정치’ ‘약자와의 동행’이라고들 하지만 실제로 와서 상황이 어떤지 듣는 건 하나도 없었어요. 이게 약자를 생각하는 길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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