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된 공공돌봄, 약자를 내몰다

‘아름다운 이별’ 강요당한 노동자···뒷짐 진 서사원·서울시

2024.07.08 06:00 입력 2024.07.08 06:03 수정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지부장과 조합원들이 지난 6월 12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 산하 공공돌봄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을 승인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며 릴레이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지부장과 조합원들이 지난 6월 12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 산하 공공돌봄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산을 승인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하며 릴레이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서울시 공공돌봄을 맡아 온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은 설립 5년 만에 문을 닫는다. 갑작스러운 해산에 당황한 이용자들 앞에서 서사원 노동자들은 해고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했다. 서울시와 서사원이 뒷짐을 지고 방치한 사이, 이용자와 노동자는 갈 길을 잃었다.

연계는 말로만…이별은 뒷짐만

서울시는 지난 5월23일 서사원 해산을 승인했다. 애초 서울시는 서사원 이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용자를 인근 방문요양기관 중 최우수(A등급) 이상 기관에 우선 연계하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와 서사원 소속 종사자의 고용 문제를 협의하고 구직 수요가 있는 기관들 정보도 안내하겠다고 했다.

속전속결 운영 종료를 향해가는 동안 시가 약속한 연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용자들은 인근 기관 이름과 연락처, 기관별 등급이 담긴 명단을 건네받은 게 전부라고 했다. 이용자들은 민관 기관에 직접 전화하고,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며 스스로 갈 곳을 찾아야 했다.

서울시는 ‘형평성 문제’를 댔다. 지난달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 질의에 서울시는 ‘기존 이용자를 다른 기관으로 연계하는 대신 돌봄 기관 목록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기존 서비스 이용자를 다른 기관으로 의뢰(연계)할 경우 알선 및 유인행위로 오인,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될 우려가 있어 서비스 의뢰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대안 없는 운영 종료’로 난감한 것은 서사원에서 일해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란 말이냐’는 이용자들 불만을 최일선에서 마주해야 하는 이들이 노동자들이다.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보낸 안내문에서 “아름답지 않은 상황 가운데 힘이 드시겠지만, 최대한 아름답게 서비스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함께 해달라”며 “이용자와 마지막까지 신의를 지키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서사원 장애인활동지원기관’이 되도록 협조해달라”고 공지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아름다운 이별’이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요양보호사 박모씨(62)는 “우리도 밥줄이 끊겼지만 어르신들이나 보호자들이 발 동동 구르는 걸 보고 있어야 하니 어쩔 줄 모르겠다. 서사원이 없어지더라도 그대로 와서 일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해산 관련 안내문. 독자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해산 관련 안내문. 독자 제공

미래도, 자긍심도 무너진 돌봄 노동자들

서울 서대문구에서 소아마비 장애인 신현숙씨(56)를 지원해온 장애인 활동지원사 정옥임씨(57)는 당초 서사원 지원 조례가 폐지되더라도 10월까지는 기존 예산으로 기관이 운영될 줄 알았다고 했다. 갑작스레 6월부터 7월까지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씨는 “돌봄과 돌봄 노동자의 가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느꼈다”고 했다.

정씨는 서사원 설립 6개월 차에 입사했다. 돈을 좇는 대신, 좋은 돌봄을 실현한다는 효능감에 출근길마다 힘을 냈다고 했다. 공적인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정년까지 일하겠다는 인생 계획도 세웠다.

민간 기관에서 지원사가 6명씩 바뀌었던 이용자도 정씨가 맡아왔다. 하루 서비스 이용 시간이 90분에 그쳐,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민간 기관에서 내쳐지던 이용자였다. 정씨는 “이용자와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만두는 민간과 달리 서사원에선 회사가 조율하는 과정이 있어서 이용자와 노동자가 좋은 돌봄을 위해 소통하며 발전하는 걸 느껴왔다”고 말했다.

자부심이 컸던 만큼 박탈감은 컸다. 정씨는 “적자를 많이 내는 서사원 노동자들은 그냥 사라지면 되고 이용자는 민간으로 가면 된다고 너무 쉽게 결정해버렸다”며 “민간 기관에서 일어나는 부정수급, 이용자 거절 등의 문제는 서사원에선 생기지 않는다. 이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비용만으로 하루아침에 없애버릴 수 있나”라고 말했다.

공공돌봄을 도맡아온 기관이 통째 사라지고 노동자들이 모두 해고되는 데도 세상은 조용했다. 정씨는 이 무관심에 좌절했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나이다. 정씨는 서사원 해산으로 꿈꿔온 미래도, 자긍심도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면접도 보고 들어와서 열심히 일했는데 우리는 해산 결정에 항의할 근거도, 구제받을 방법도 없대요.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요. 회사가 나를 보호하기는커녕 내 노동의 가치를 오히려 깎아내리는 모습에 너무 허망합니다.”

공공돌봄 해산, 이리도 급히 해치워야 했던 이유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6월2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해산 관련 이사회 결의를 비판하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6월2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해산 관련 이사회 결의를 비판하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서사원이 일부 서비스는 7월 말 종료하면서도 6월 말 문을 닫겠다고 발표한 것이 ‘졸속 해산’의 여파라는 해석도 나온다. 개정된 사회서비스원법 의무 조항을 부과받지 않으려 서둘러 문을 닫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오는 24일부터 개정 시행되는 사회서비스원법은 기관 해산 시 타당성 검토, 이용자와 종사자의 권익보호 조치 등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는 “서사원 지원 조례 폐지 조례안이 시행되는 것은 오는 11월1일로, 서사원 지원 조례가 아직 폐지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사원 이사회가 해산을 의결했다”며 “서사원 해산이 개정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의결됐기 때문에 서사원 이용자와 노동자들은 개정된 법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24일 서사원 해산을 결의한 이사회의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지부장은 “말로만 이용자와 종사자를 돕겠다고 하지 말고 당장 꼼수 해산을 중단하고 권익 보호 조치를 이행하라”며 “(서사원 조례) 폐지 시행일인 11월 전까지 시민공청회를 열어 제대로 평가하고 노동자와 이용자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의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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