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사망자를 낳은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에는 불법파견·위장도급을 통한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위험의 이주화’가 함께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파견·도급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등 노동시장 내 약자들에게 위험이 전가되는 것을 구조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종식 한구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노총과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 등 주최로 열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 긴급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이제는 하도급 자체가 산재 원인 중 하나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며 “이 점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산재예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화재 참사 희생자 23명 중 20명은 외부 인력공급업체 ‘메이셀’을 통해 고용돼 원청인 아리셀에서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20명 중 18명은 이주노동자였다. 아리셀이 일용·단기 이주노동자 위주로 공정을 운영해 오면서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사고 이후 속속 드러났다. 정부는 아리셀의 불법파견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박 부연구위원은 “1980년대 이후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하청계열화 방식의 동원 전략이 이어졌다”며 “중층적이고 파편화된 노동계약 관계가 확산하고, 위험의 외부전가를 통한 노동차별이 심화됐다”고 했다. 원·하청 불공정거래가 기업 간 격차를 키우고 노동자들의 격차까지 벌려 사회 불평등이 확산했다고도 했다.
파견·도급노동자들은 직접생산을 담당하면서도 안전관리에서 소외돼 왔다. 박 부연구위원은 “중소사업장은 경영진이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고, 체계적으로 안전보건관리를 할 인력도 부족하다”며 “열악한 근무환경을 감내하면서 ‘보이지 않는’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은 집단적 노사관계를 통해 스스로 보호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원·하청 등 다양한 고용관계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관리방안을 사회구조적으로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며 “사업장 경계를 넘어서면서 발생하는 위험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한 지역-업종 수준의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위험의 이주화’도 같은 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류현철 일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기업들은 공장과 회사를 쪼개기만 하면 규제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위험의 외주화’의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며,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더 위험해진다”며 “소규모 사업장들은 이윤을 실현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위험을 무릅쓴 노동이 만연하게 된다”고 했다.
류 이사장은 이어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권리를 부여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적 차원의 위험성 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을 입안·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리튬 전지 제조업에 대한 안전보건관리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도급 금지 대상 작업에 리튬 및 리튬화합물 작업을 추가하고, 화학물질관리법상 ‘사고대비물질’에 리튬을 지정해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