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본도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흉기 소지·허가 규제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흉기가 동원된 참극이 벌어질 때마다 규제·관리 강화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제도 개선은 번번이 미뤄지고 인력부족 등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시민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29일 밤 은평구 한 아파트에서 칼날의 길이가 약 75㎝인 일본도가 동원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살인 피의자로 체포된 A씨는 도검 소지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31일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A씨의 행적과 정신병력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시민들은 “어떻게 그렇게 큰 칼을 서울 시내 주택가에서 휘두르게 그냥 둘 수 있냐”는 성토를 쏟아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등에서 장식용 장검 등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롭게 조명됐다.
2021년 정신질환이 있는 남성이 검찰 공무원에게 도검을 휘두른 사건과 40대 남성이 아내를 장검으로 살해한 사건, 지난해 70대 남성이 이웃을 도검으로 살해한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도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도 흉기 소지·허가 관련 규제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은 도검을 소지하려면 허가 신청서를 관할 경찰서에 제출해 허가를 받도록 했다. 관련 범죄전력이 있거나 마약·알코올 중독자, 정신질환자 등은 소지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문제는 3년마다 소지 허가를 갱신해야 하는 총포와 달리 도검은 소지 허가 갱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처음 허가를 받을 때 운전면허를 제출하면 정신병력 등을 점검할 수 있는 신체검사서를 따로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등 빈틈도 많다.
이번 사건 뒤 A씨의 경우 평소 이상 행동을 했다는 증언이 주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A씨가 지난 1월 이후 ‘이상 행동’을 이유로 2차례 경찰의 불심검문을 당하고, 112 신고가 2건 접수된 사실도 확인됐다.
국회와 정부의 규제 보완 움직임은 번번이 성과로 연결되지 않았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도검 소지자의 정신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소지 허가 갱신 제도’ 입법안이 제출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경찰청도 2022년 도검·화약류·분사기·전자충격기·석궁 등의 소지자도 5년마다 허가를 받게 하는 등의 자체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제도화되진 않았다.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는 “피규제자가 60만명가량이라 부담이 크고, 규제 목적에 비해 내용이 과도하다”며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김원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규제개혁위는 규제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판단했겠지만, 안전 관련 규제는 오히려 강화하는 게 선진국의 추세”라며 “지역별로 총기·도검 소지 현황에 따라 자치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촘촘히 규제하고, 온라인에서도 위험 물품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투명하게 기록해 추적해야 범죄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갑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경찰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되 지자체와 협조해 행정적인 부담은 덜 수 있는 규제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검 소지 허가 규정을 보완하고 허가 갱신 제도를 신설한다고 해도 이를 관리·점검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도검 허가·관리 주체인 경찰은 현재 인력만으로는 촘촘한 규제를 제대로 이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도검 소지 갱신 허가제를 해도 그 사이에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는 것까지 통제하기는 현재 경찰 인력으로는 어렵다”며 “공기총이나 엽총은 위치정보(GPS) 추적 장치를 붙여 추적할 수 있지만 도검은 종류가 많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021년 기준 도검·분사기·전자충격기·석궁 소지자는 60만1552명이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본도와 비슷한 살상력의 회칼 등도 이미 많아 모두 규제·감독하긴 어렵다”며 “정신 감정서를 의무적으로 첨부하게 해 행정적인 규제를 보완할 수는 있지만 돌발적 범행까지 막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