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보다 더운 집안, 폭염은 낮은 곳부터 달군다

2024.08.07 06:00 입력 2024.08.07 09:59 수정

1일 황복예 할머니가 집안 거실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홍근 기자

1일 황복예 할머니가 집안 거실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홍근 기자

“평생을 더운 줄 모르고 살았어. 아, 그런데 (올여름엔) 죽겠더라니까. 어떻게 (이렇게) 더워서 그냥.”

선풍기 앞에 앉은 황복예 할머니(81)의 얼굴 주름 사이로 땀방울이 흘렀다. 건강을 걱정하는 김명화 활동지원사에게 연신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 공사장에서 들어오는 분진과 소음 때문에 창문을 닫은 지 5분. 온도계 숫자는 2분마다 1도씩 올라갔다. 집 안 온도가 실외 온도를 넘어 33도가 되면서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되자 그제야 할머니는 입을 열었다. “집이 너무 더워.”

대전 서구 괴정동에 있는 황 할머니 집은 1980년에 지은 저층 연립주택이다. 44년 전 설치된 손가락 한 마디 두께의 알루미늄 틀 창문은 틈새가 벌어져 더위도 추위도 막지 못한다. 집 바로 앞이 공사장이라 창문도 열지 못한다. 햇볕을 가둔 뿌연 유리창은 집 안을 비닐하우스처럼 달궜다. 황 할머니를 돕고 있는 김 활동지원사는 “벽도, 창문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집 안이나 실외나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 할머니 집 침실의 온도. 이홍근 기자

황 할머니 집 침실의 온도. 이홍근 기자

지난 1일 오전 11시쯤 황 할머니 집 온도를 재어 보니 실내 곳곳의 온도가 30도를 웃돌았다. 주방 기온은 이날 대전 낮 최고 기온인 34도보다 1도 낮은 33도였다. 침실 온도는 32.5도, 습도는 70%였다. 베개엔 땀을 닦기 위한 수건이 감싸져 있었다. 같은 시간 집 밖은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더웠지만, 온도는 32도 정도였다. 집 안 온도가 밖보다 높았다. 노령연금과 노인 일자리 월급을 합쳐 월 50만원으로 생활하는 할머니는 이 주택 말곤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당뇨와 저혈당에 시달리는 할머니에게 더위는 시한폭탄과 같다. 당뇨 환자가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면 포도당과 수분이 소변으로 배출돼 쇼크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황 할머니는 “해가 떠 있을 땐 경로당에 가서 앉아 있는다. 집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면 경로당도 에어컨을 끈다”면서 “해가 짧으면 5시에 끄는 날도 있는데, 그걸 놓고 관리자랑 옥신각신하는 노인도 있다”고 전했다.

황 할머니 집 주방의 온도. 이홍근 기자

황 할머니 집 주방의 온도. 이홍근 기자

1일 대전 서구 괴정동 실외 온도가 황 할머니 주택 온도보다 낮은 32.3도로 측정됐다. 이홍근 기자

1일 대전 서구 괴정동 실외 온도가 황 할머니 주택 온도보다 낮은 32.3도로 측정됐다. 이홍근 기자

낮고 낡은 곳부터 폭염은 파고든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평등하다”고 했다. 환경에 따른 악영향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연구 결과는 폭염에 따른 위험은 더 이상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강원대, 충북대, 단국대 공동 연구진이 지난 1월 대한건축학회 논문집에 발표한 ‘폭염에 대한 국내 주거용 건축물의 취약성 분석’ 논문을 보면 건축물의 건축 연도가 오래될수록,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폭염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기가 낮고, 가난한 곳부터 달군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주택 유형에 따라서도 실내 온도가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2022년 6월20~22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단독주택의 온도는 공동주택보다 평균 0.16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온도차는 0.34도 수준이다. 폭염경보가 발효됐던 같은 해 7월3~4일 조사에선 평균 온도차가 0.42도, 최고 온도차가 0.48도로 나타났다. 역시 폭염경보가 내려진 8월4~6일엔 격차가 더 벌어져 평균 온도차 0.8도, 최고 온도차가 1.23도로 조사됐다. 공동주택보다는 단독주택이 폭염에 취약하고, 기온이 오를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는 의미다.

황 할머니 사례와 연구를 보면 건축 연한이 오래된 건축물과 단독주택이 폭염에 더 취약하다. 단독주택의 온도가 공동주택보다 높은 것에 대해 연구진은 “공동주택의 경우 상하좌우 인접가구가 있어 단열효과가 발생하고, 2013년 이후 적용된 ‘건축물의 에너지절약 설계 기준’에서 공동주택보다 단독주택의 창 및 외벽의 최소 단열 성능 기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에 기인한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공동주택은 인접가구가 열을 막아주는 효과를 내는 반면, 단독주택은 그런 효과를 보기 어려운 데다 집 안의 열이 빠져나가기도 더 쉽지 않다는 뜻이다.

5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한 주택의 온습도. 이홍근 기자

5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한 주택의 온습도. 이홍근 기자

오래된 집일수록 실내 온도가 높아지는 것은 단열재의 최소 성능 규정이 과거 더 느슨했고, 건축물 노후화에 따라 단열 성능도 낮아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자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서울 강북구 미아동 단독주택, 동대문구 전농동 저층 연립주택, 성북구 돈암동 구축 아파트, 마포구 아현동 신축 아파트 등에서 온·습도를 측정해보니 아파트와 주택의 차이가 도드라졌다. 5일 낮 12시 기준 서울 마포구 신축 아파트 온도는 29.2도, 습도는 66.8%로 나타났다. 같은 시간 동대문구 전농동 한 주택의 온·습도는 각각 30.2도, 73%였다. 습도가 10% 높아질 때마다 체감온도가 1도 오르는 점을 고려하면 같은 서울의 신축 아파트가 구축 주택보다 1.5도 가까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서울 최고 온도는 34도를 기록했다. 성북구 돈암동 아파트의 온도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는데도 종일 31도를 넘지 않았다. 미아동 단독주택의 온도는 33도까지 올라갔다. 전농동 주택에 사는 김동건씨(29)는 “주택은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면서 “같이 사는 친구 방엔 에어컨이 없어 친구가 정말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독립 전까지 부모와 아파트에 살다가 현재 단독주택에서 지내는 직장인 A씨(31)는 “온도 차이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2013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이사 온 A씨는 현재 단독주택을 개조한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다. A씨는 “아파트에 살 때는 창문만 열어도 맞바람이 불어 시원했는데, 지금 사는 주택은 앞뒤가 다른 주택으로 꽉 막혀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다”면서 “습기가 빠지지 않아 체감온도는 더 높다”고 말했다. 5일 A씨 집을 방문해 보니 환기가 되지 않아 꿉꿉하고 습한 상태에서 더운 기운이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A씨 방에 설치된 벽걸이 에어컨을 끄자, 거실과의 온도 차이로 금세 장판에 습기가 차 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변했다.

서울시  폭염 취약성 지도

서울시 폭염 취약성 지도

‘여름 폭염’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집을 고를 때 ‘겨울에 따뜻한 집’을 중시했다. 앞으로는 ‘여름에 시원한 집’을 찾는 것이 중요해질 수 있다. 주택 건축에도 이 같은 요인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동절기 건축물 내부의 열손실 방지에 주안점을 두고 만들어진 현행 단열 설계 기준이 하절기 폭염 상황에서의 실내 열환경 측면에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면서 “매년 국내에 발생하는 폭염 재난에 대비해 지역의 기후학적 특성과 폭염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적절한 단열 설계 방법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 할머니 같은 에너지 취약계층의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 대전환경운동연합 조용준 국장은 “기후위기 시대가 오면서 취약계층이 더 위험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실태조사조차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에는 한 시민단체가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를 했는데 대면조사가 어려워지면서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인 단체는 대전환경운동연합이 유일하다는 것이 조 국장의 설명이다.

조 국장은 “실제 현장에 나가봐야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다 보니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 조사가 마무리되면 총 50가구에 조도, 습도, 실내 공기질,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달아 실태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폭염지도 그려보니...낡고 가난할수록 덥다

서울 중구 광희동, 성북구 장위동, 종로구 창신동, 양천구 신월동, 강북구 미아동, 용산구 보광동,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연구원 도시정보실 빅데이터분석팀이 2021년 12월 발표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서울시 주거지역 폭염 취약도 진단’ 보고서에서 폭염에 취약해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꼽은 지역들이다. 폭염에 취약할 가능성을 높이는 3가지 요인을 공통적으로 갖춘 곳들이다.
 연구진은 ‘인구학적 요인’(고령층 및 폭염 시 낮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긴 인구집단이 많은 경우), ‘주택 관련 요인’(건축된 지 오래되었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주택 유형이 많은 경우), ‘경제적 요인’(낮은 소득으로 냉방 가전을 갖추지 못했거나, 전기료 부담 등으로 폭염 대응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많은 경우)으로 정리했다.
이 요인에 모두 해당하면서 동시에 체감온도가 가장 높아 ‘상’으로 분류한 곳이 광희동2가와 장위동이다. 연구진은 이들 지역을 최우선적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세 가지 요인과 함께 체감온도가 비교적 높아 ‘중상’으로 분류된 곳은 창신동, 신월동, 미아동, 보광동, 대림동이다.
체감온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원효동, 청파동, 공덕동, 독산동, 구로동, 연남동, 서교동, 창동, 창신동, 숭인동이다. 체감온도가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 간 차이는 최대 2.7도다. 2021년 여름 기준 체감온도가 높은 지역들의 평균은 34.9도, 낮은 지역들의 평균은 32.2도다. 기온이 29도 이상일 경우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열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15.9% 증가한다. 뇌졸중 사망자는 1.3% 늘어난다. 체감온도 2.7도 차이는 폭염 영향을 고려할 때 작은 수치가 아닌 것이다.
연구진은 “모든 사회적 요인에 대해 취약하면서도 상대적 고온인 지역들은 주거환경 개선 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곳으로 판단된다”며 “폭염 취약지역 분석에 따른 주거환경의 순차적 개선은 도시 내 폭염으로 인한 건강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연구원이 서울 전역에 설치한 1000여개 센서에서 수집한 기온과 습도 등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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