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회계처리 시점은 재량권 남용”
금융위 “전체 패소여도 2015년 회계 지적 의미”
참여연대 “삼성 합병 연결고리 정확히 짚어내”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논란을 촉발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사건에 대해 삼성 측 손을 들어줬다. 삼성바이오가 고의로 회계기준을 누락했다며 시정조치를 내린 금융당국이 패소한 것이지만, 법원은 2015년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가 행정소송을 제기한 지 6년 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14일 삼성바이오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등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 등 문제를 회피하려고 회계처리 시점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후에 검토한 것은 재량권 남용에 해당한다”면서도 “인정되지 않은 처분 사유도 함께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부 취소가 타당하다”고 밝혔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2~2014년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회계를 처리하면서 미국 제약회사 바이오젠과 합작계약을 맺은 콜옵션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이후 삼성바이오가 보유한 에피스 주식을 재평가해 2015년 삼성바이오 자산을 약 4조8000여억원으로 과다 계상해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했다. 분식회계는 기업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 등을 크게 부풀리고 부채를 적게 계산해 재무상태·변동을 조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증선위는 2018년 삼성바이오 대표이사 해임 및 과징금 80억원 부과 등 처분을 내렸다.
삼성바이오 측은 ‘정당한 회계 처리였다’고 주장하며 행정소송을 냈다. 제재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함께 냈는데 법원이 인용했다. 이날 선고는 증선위의 징계처분 사유가 타당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2012~2014년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단독으로 지배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은 제무재표는 회계처리기준 위반이라고 보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는 최대주주로 있는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회계처리를 했는데, 2015년 9월 이후 콜옵션을 공시했다. 콜옵션은 회계상 금융부채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가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인정될 수 있다면 “처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삼성바이오가 ‘지배력 상실’을 이유로 에피스의 회계처리를 새롭게 한 시점을 임의적으로 판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9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후 에피스에 대한 관계를 지배사에서 관계사로 조정했다. 재판부는 “지배력 상실 근거가 되는 사실과 상황이 발생한 날을 기준으로 회계처리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특정일 이후의 지배력 상실 근거로 내세울 사건을 찾아 나가는 것은 일반적인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 모습이 아니다”며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근거자료를 임의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같은 회계처리는 “재량권을 남용해 처분사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인정된 처분사유만으로는 각 처분의 타당성을 인정이 어려워서 각 처분은 위법해 전부 취소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판결 주문상 전부 패소이기는 하지만, 판결 이유 중 처분의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본 점과 형사사건의 1심과 달리 2015년 지배력 변경은 정상적 회계처리가 아니라고 판시한 점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판결문이 입수되는 대로 내용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월 이재용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먼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이 회장 등이 제일모직의 가치를 고평가하기 위해 거짓공시·분식회계를 동원했다는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계처리 시점에 대해서도 “이유가 있다”고 보고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2012~2014년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공동지배했다는 증선위 결정 부분뿐으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와 삼성 합병의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짚어냈다”며 “삼성 합병 정당화를 위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은 삼성 합병 2심 재판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이재용 승계를 위해 주가를 조작하고 분식회계까지 저지르며 자본시장을 뒤흔든 중대한 범죄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엄중한 책임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