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고 날 수도” 구로역 노동자 생전 메시지···‘위험성 평가서’는 간과했다

2024.08.24 06:00 입력 2024.08.24 14:16 수정

지난 9일 ‘구로역 사고’로 숨진 코레일 노동자 2명이 탑승했던 ‘모터카’ 작업의 ‘위험성 평가’에 ‘옆 선로 열차와의 충돌 위험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모터카의 구조와 작업 원리상 예상 가능한 위험이었고, 코레일 노동자 사이에서도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위험성 평가에서 지적하지 않아 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레일은 지난해에 중대재해 억제책 가운데 하나로 작업 시 폐쇄회로(CC)TV 촬영을 제시했지만 이번 사고 장면을 녹화한 영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돼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번 구로역 사망 사고는 작업용 차량인 모터카에 설치된 작업대(바스켓)가 옆 선로에서 운행하던 선로점검 차량에 부딪치면서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모터카는 작업대가 좌우로 최대 4m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고가 난 구로역은 선로 간 거리가 약 1.5m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터카의 작업대를 이용한 작업이 진행될 경우 옆 선로의 차량 운행이 중단되거나, 안전을 위한 사전 경고가 있어야 했지만 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로역 사고 개요도

구로역 사고 개요도

유족들이 “왜 인접 선로 열차와의 충돌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냐. 인접선로에 대한 차단이 이루어져야 했다”고 반발하고 것도 이 때문이다. 사고로 숨진 노동자 가운데 한명인 고 정석현씨의 유족은 “생전에 석현이가 ‘점검·수리 업무를 할 때 옆에서 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실수로 기우뚱하기만 해도 바로 사고가 날거 같다’고 말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코레일 노동자 고 정석현씨와 가족들이 나눈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내용. 정씨는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사고 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씨 유족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코레일 노동자 고 정석현씨와 가족들이 나눈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내용. 정씨는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사고 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씨 유족 제공

경향신문이 23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24년 영등포 전기 사업소 위험성 평가표’를 보면 모터카 작업대에 탑승해 일하는 ‘차상 작업’의 위험성 부분에서 ‘옆 선로 운행 열차와의 충돌 위험성’은 언급되지 않았다. 모터카에 탑승해 ‘선로 위 공중’에서 작업하는 전차선 정비·점검 작업을 할 때 ‘모터카 작업대 이동 시 추락 위험’ ‘시설물 충돌 및 미끄러짐 위험’ 등이 유해·위험 요인으로 명시됐지만 인접 선로와의 충돌 가능성은 경고하지 않은 것이다.

40쪽 분량이 평가서는 지난 4월 작성됐는데 옆 선로 운행 열차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바닥 쪽’ 작업에서 등장했다. 평가서는 ‘전차선로 이물질 제거 작업’ 등의 경우 ‘선로 이동 및 작업 시 열차 접촉 위험’을 유해·위험요인으로 언급하면서 ‘주간 차단 시간 등을 활용해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2024년 영등포 전기 사업소 위험성 평가’의 일부. 이예슬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2024년 영등포 전기 사업소 위험성 평가’의 일부. 이예슬 기자

위험성 평가에서 이런 허점이 발생한 건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위험성 평가를 진행했는데도 작업대 확장 시 옆 선로와의 충돌 위험이 명시되지 않은 것은 현장 작업과 위험성 평가가 괴리되어 있다는 의미”라며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위험성 평가에 대해 고용노동부 지침을 따랐다는 입장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위험성 평가는 고용노동부 지침상 현장 직원들이 현장 상황에 따라 실시하고 있다”면서 각 현장별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공사는 위험성 평가가 절차대로 시행되는지와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노조 측은 위험성 평가 이전에 어떤 작업이든 인접 선로의 열차를 차단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근본적인 문제는 인접 선로가 차단되지 않은 것”이라며 “현장 노동자들은 인접 선로 열차를 통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모터카와 선로점검열차에 달려있던 CCTV에 사고 장면이 녹화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고 당시를 담은 영상이 확보되지 않아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코레일 지난해 ‘중대산업재해 재발방지 종합안전대책안’을 발표하면서 안전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작업장 CCTV 설치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사고가 난 모터카에 설치된 카메라 8개 가운데 4개의 영상기록만 남아 있다. 하지만 녹화된 영상에서도 사고 장면은 담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로점검열차에는 2대의 카메라가 달려 있었으나 영상 기록이 아예 남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사고 당시 상황을 확인하지 못해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코레일 측은 CCTV에 모터카에 설치된 카메라 8대 가운데 4대의 영상기록만 남은 데 대해 4대는 모니터 표출용이라 원래 영상이 저장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상이 녹화된 4대도 전방과 후방주시용이라 사고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앞으로 작업용 CCTV를 안전 관리용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완할 방침”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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