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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규명 받으면 뭐하나…‘1000만원 배상’ 판결에 항소한 법무부·서울시

2024.09.13 06:00 입력 2024.09.13 08:37 수정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는 손과 갇힌 사람, 펼쳐진 책을 표현한 일러스트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는 손과 갇힌 사람, 펼쳐진 책을 표현한 일러스트

정부와 서울특별시가 1976년 국가의 ‘부랑아 단속’으로 서울 은평구 소재 어린이마을(시립 아동보호소)에 수용된 뒤 강제 노역 등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3단독 신정민 판사는 어린이마을 강제수용 피해자 A씨가 지난달 13일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에게 공동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달 27일, 서울시는 지난 2일 “패소 부분을 취소해달라”며 각각 항소장을 제출했다.

2022년 11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피해를 부분적으로 인정받고, 40여년만에 국가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청한 A씨(61)는 “강제 수용 생활로 유년기를 영영 잃어버렸는데, 국가가 사과는커녕 법정에서 상처만 주더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에서 국가폭력 피해를 인정받더라도 사법적 피해보상이 지난할 뿐만 아니라, 정부·지방자치단체의 반인권적 행정이 2차 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0여년 전 어린이 마을…1층은 ‘과밀집’ 숙소, 2층은 ‘강제노역장’

서울시의 1976년 2월3일자 부랑인 단속에 관한 업무 처리 지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서울시의 1976년 2월3일자 부랑인 단속에 관한 업무 처리 지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1963년생인 A씨는 모친을 여읜 뒤 전라도 광주에서 홀로 상경해 서울 후암동 인근에서 살다 1976년 8월30일 ‘서울시 부랑아 단속’으로 어린이마을에 잡혀갔다. 그때 나이가 13세였다. 남대문시장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야간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A씨는 ‘서울시립아동상담소’ 앞을 지나가다 “들어와 보라”는 직원의 말에 따랐다. 그는 “(집에) 보내줄 테니 저 차를 타라”는 말에 탑차에 올라탔다가 그 길로 어린이마을에 보내졌다.

A씨가 기억하는 어린이마을은 감옥이자 강제 노역장이었다. 철창이 달린 숙소에는 방마다 20여명씩 수용됐고, ‘백화점 쇼핑백’과 수출용 ‘조화’를 만드는 2층 작업장만 갈 수 있었다. A씨는 “탈출은 불가능했고,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일했다”고 말했다. 14~16세 또래들이 많았는데, 동성에 의한 성폭력과 폭행·욕설 등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A씨는 “봐서는 안 될 것, 당해선 안 될 것을 당한 곳”이라 했다.

8개월쯤 어린이 마을에서 지낸 A씨는 전라도 광주의 시설로 전원됐다. 2년 후 다시 서울로 왔을 땐 성인 부랑인을 대상으로 한 ‘서울특별시립갱생원’에 3개월쯤 잡혀가기도 했다. 서울시립갱생원은 최근 진실화해위가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진실규명한 시설이다. 기록 증빙의 한계로 진실화해위 조사에선 어린이마을에서의 약 79일간의 피해만이 공식 인정됐다.

2022년 11월 진실화해위가 A씨의 피해사실을 인정하며 국가에 ‘피해 회복과 화해를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지만, 피해 회복은 오롯이 A씨의 몫이었다. A씨는 변호인 조력 없이 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1심 재판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인권침해 사안으로 그 위법성의 정도가 매우 중하고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가 다시 자행되지 않도록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큰 점과 “약 50년의 오랜 기간이 경과됐음에도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1000만원의 위자료를 책정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 판례를 참조해 5000만원을 위자료로 청구한 A씨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판결이었다.

서울시와 법무부의 항소는 A씨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판 과정에서 국가는 A씨에게 상처를 덧냈다. A씨는 “서울시 측 변호인단이 저를 향해 ‘국가가 기술 습득을 알려주고, 보호해줬다’고 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백화점 쇼핑백과 조화를 만드는 게 어떻게 기술 습득이 될 수 있냐”며 “궁핍했던 내게 필요했던 건 공부였지 그런 기술이 아니었다”고 했다.

A씨는 지금도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잠들기 어렵다 했다. 수용소에서 당한 성폭력의 후유증이다. 그는 “그날들 이후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다”며 “제게는 잊히지 않는 치욕인데, 국가가 사과는 고사하고 법원에서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A씨는 더욱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마을과 관련해 서울시가 피소돼 진행 중인 소송은 A씨 사건 1건이다. A씨는 “저뿐 아니라 당시 강제로 끌려가서 수용당했던 모든 이들에게 꿈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 꿈을 잃어버린 세월을 돌이킬 순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배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항소 이유에 대해 “진행 중인 소송으로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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