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전남 순천시 풍덕동에서 열린 아랫장은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평소에도 순천시민뿐 아니라 근처 구례, 광양, 여수에서까지 방문하는 오일장이지만 이날은 추석 전 마지막 장날이라 더욱 붐볐다.
떡집은 오전 1시부터 불을 밝혔다. 박선덕씨는 “평소에는 20kg 쌀 10포대 정도를 사용하는데, 명절 대목엔 100포대는 쓴다”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해가 뜨기도 훨씬 전에 과일, 채소 등을 펼쳐 놓은 상인들로 길이 가득 찼다. 상인들은 토란, 도라지,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잔돈을 세봤다. 버스에서 내린 주민들은 바퀴 달린 수레에 장바구니를 얹은 채로 비장하게 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농사지은 깨를 들고 온 사람들은 방앗간부터 들렀다. 들깨, 참깨 담긴 바구니와 빈 소주병을 두고 차례를 기다리며 사과를 나눠 먹었다. 고추가 빻아지는 매운 내가 나면 함께 콜록댔다. 정경순 할머니는 “애기들 입맛에 맞는 음식은 따로 있어서 음식은 많이 안 한다”며 “과일도 다 자식들이 집으로 보낸다고 해서 기름이나 한 병 짜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직접 기른 콩나물이 통통하다는 집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박스에 들어있던 샤인머스캣은 할머니가 들고 온 보자기에 다시 포장됐고, 평소엔 오일장에서 보기 힘든 맛살도 금방 팔려나갔다. 한 할머니는 어린이 옷이 걸려있는 가게로 들어가자마자 “번개파워 옷 9호 주세요”라며 캐릭터 옷을 찾았다. 그는 “토요일에 내려오는 4살짜리 손자가 어디 가나 번개파워 옷만 입어서 벌써 여러 번 같은 옷을 샀다”고 했다.
시장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장바구니를 꽉 채운 주민들은 다시 집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모였다. “배추 얼마 주고 샀냐”며 시세를 점검하기도 했다. 이날 버스로 40분 거리의 마을에서 온 김홍임 할머니는 “(배추가) 한 포기에 만원이면 두 포기 사려고 했는데 만 오천원이라 한 포기만 샀다”고 했다. 김 할머니의 푸념을 듣고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나도 작년에는 파를 키워 먹었는데 올해는 더워서 그런지 다 죽어서 장에서 샀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원엽 할머니는 지난 9일 손톱에 매니큐어도 칠했다. “보건소에서 와서 해줬는데 나 혼자만 반짝이를 골랐다”며 “기왕 한 거 자식들 올 때까지 안 지워지게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더운 날씨에 지친 표정으로 버스를 기다리다가도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자랑에 여념 없었다.
강기자 할머니는 김치가 제일 맛있다는 자식들을 위해 새 김치를 담을 예정이다. 다음 날 서는 구례장에도 가 모자란 장을 더 보고, 낙지호롱도 하고 갈비도 잴 거라고 했다. 강 할머니는 고들빼기, 배추, 쪽파로 무거운 장바구니를 두고 버스를 기다리며 말했다. “(자식들이) 안 오면 섭섭하고, 오면 반갑고, 가면 또 섭섭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