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신문에 ‘며느리증후군’ 첫 등장··· ‘명절 스트레스’ 변천사

2024.09.14 13:23 입력 2024.09.14 13:24 수정

명절에 가족의 안부를 묻는 질문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일러스트·김상민 화백

명절에 가족의 안부를 묻는 질문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일러스트·김상민 화백

우리사회는 언제부터 명절 스트레스와 명절 증후군에 주목하기 시작했을까.

14일 ‘1993-2016년 신문기사를 통해 본 명절스트레스 양상에 대한 내용분석’(김미동·김해란, 2018)이라는 논문을 보면, 가정주부가 명절에 받는 스트레스를 ‘며느리증후군’이라고 정의한 기사가 1993년 신문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한 정신과 교수가 “남편을 따라 귀향해 시부모를 뵙는 것 자체가 핵가족 시대의 며느리들에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라고 지적하면서 “(사례자) 지씨의 증세는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사는 “나이가 어릴수록 증세가 더 심하고, 직장여성보다 전업주부에서 심각한 경우가 더 많다”며 ‘며느리증후군’이라는 신체질환을 정의했다.

한국가족관계학회지에 2018년 실렸던 이 논문을 통해서 명절 스트레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여론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봤다. 1993년 이후 약 2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명절 스트레스의 주체와 현상은 더욱 다양해졌다.

1993·2006·2015년에 명절 스트레스 기사가 등장한 이유는?

논문은 1993-2016년에 5개 일간지(경향신문·한겨레·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에 실린 명절 스트레스 관련 기사 416개를 분석했다.‘명절증후군’ ‘명절스트레스’ ‘명절우울증’ ‘명절 가족갈등’ ‘명절 이혼’ 등을 키워드로 해 기사를 선정하고, 홍보성 기사나 단순 정보성 기사는 제외했다.

명절 스트레스 기사는 1993년에 2건(전체의 0.5%)이 나온 후, 1995년에는 1건의 기사도 나오지 않는 등 약 4년간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러다가 1997년(13건·3.1%)에 갑자기 늘어난다. 2006년(45건·10.8%), 2015년(48건·11.5%), 2016년(44건·10.6%) 등 특정시기에 두드러지게 증가 양상을 보인다.

저자는 1993년부터 명절 스트레스 기사가 본격적으로 다뤄지게 된 이유로 “당시 우리사회의 핵가족의 증가와 함께 활발하게 논의되던 페미니즘의 영향”과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불평등함을 표출하게 된 사회적 분위기”를 꼽았다. 1997년에는 “당시 각 지방자치단체와 여성단체에서 ‘평등부부상’을 잇따라 제정하며 가정 내 여성의 지위에 관심이 집중”돼 관련 기사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명절 스트레스 기사는 2006년에 늘어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그 동안 꾸준히 전개되어 오던 페미니즘의 영향과 더불어 2005년 3월 호주제 폐지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짚었다. 2006년 조선일보에 실린 ‘명절 증후군은 성장통?’이라는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남성을 가족의 우두머리로 삼는 호주제도가 민법에서 삭제되었다. 현실에서 가부장 가족과 가부장 사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명절 준비와 뒷설거지는 오롯이 여자들 몫이라니. 소리가 날밖에! 현실의 변화 속도를 문화가 못 따라가는 문화 지체가 곳곳에서 일어난다. 고속도로를 메운 귀성 대열이 추석문화의 형태라면 자동차 안에서 벌어지는 말다툼은 문화지체의 당연한 풍경이다.”

2015·2016년에는 명절 스트레스 기사가 다시 눈에 띄게 늘어난다. 그 원인으로 저자는 가족 구조의 변화와 청년실업 증가라는 시대상을 주목했다. 1990년 9%였던 1인 가구 비율은 2015년 27.2%로 증가했다. 즉, 구직 중인 삼촌에게 “너 언제 취직할거냐?”를 묻는 것이 명절 스트레스로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명절 스트레스의 주체는 시대변화에 따라서 확대돼왔다. 일러스트·경향신문 DB

명절 스트레스의 주체는 시대변화에 따라서 확대돼왔다. 일러스트·경향신문 DB

명절 스트레스 주체, 기혼녀->기혼남->시어머니->고3 등으로 변화

논문에서는 분석 시기를 총 세 시기로 나눠서, 명절 스트레스의 주체 변화 양상을 살폈다. 첫 번째 시기(1993-2005년)에는 ‘기혼녀’가 명절스트레스 사례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1997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만나는 혈육이 우애롭게 지내는데 주부들이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당연한 것이지만 부담스럽기도 해 스트레스를 준다”는 내용이 실렸다.

두 번째 시기(2006-2014년)에는 기사 속 명절 스트레스 주체가 다양화된다. 이 시기 분석대상 기사에서는 ‘기혼녀’의 비중이 다소 줄고, ‘기혼남’이 주체로 두드러졌다. 2013년에는 남편들의 90%가 명절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경향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논문은 이같은 변화의 이유를 당시 경제적 상황에서 찾았다.

저자는 “2008년 우리 사회는 제2의 IMF 사태라 할 만큼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고,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가 계속되었다”며 “경제적 위기는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기혼남’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하였고 명절이면 극대화되었다”고 설명했다. ‘기혼남’과 유사한 맥락에서 ‘장손’의 명절 스트레스도 기사에 등장했다. 묘지관리와 제사 등 장손에게 부여된 의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들이다.

이전에는 명절 스트레스 유발자로 분류됐던 ‘시어머니’도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기사 분석 결과 “‘시어머니’는 이제 ‘집안 살림의 리더’로서 명절 행사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세 번째 시기(2015-2016년)에는 ‘기혼녀’와 함께 ‘미혼자녀’ ‘취업준비생’ ‘수험생(고3)’ 등 청년 층의 명절 스트레스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2016년에는 전체 분석 기사의 절반 가량인 21건(47.6%)이 ‘수험생(고3)’ 등 청년층의 명절 스트레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당시 청년층의 명절 스트레스가 명절 때 귀향이나 친척 모임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명절 버그아웃’(Bug-out, 일시 피난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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