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약자를 돕는다는 것…. 혼자 그런 고민을 하곤 해요. 장애 법률가가 자신을 돕는다고 할 때 불안해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죠. 그럴수록 더 매달리게 돼요.”
김진영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수습을 뗀 새내기 변호사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동천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점자가 찍힌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채 20년을 살아온 시각장애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입사한 뒤 종각역부터 새로 생긴 점자블록을 따라 걸으면서 사무실로 출근한다.
재수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이름을 단 지 1년4개월이 흘렀다. 김 변호사는 장애와 복지 분야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로스쿨에 들어갈 때부터 공익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사회에서도 제일 안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특성과 소통 방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쪽방 주민에 대한 전입신고 거부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아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승소 결과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어리바리했던 수습 생활을 이겨내고 맡은 사건이어서 굉장히 뿌듯했다”고 말했다.
요즘 김 변호사는 버스정류장을 법에 맞게 정비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맡아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대리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묻자 자신의 일화를 먼저 꺼냈다. “사실 저도 버스를 거의 안 타거든요. 사람이 없는 버스정류장에선 정차한 버스가 몇 번 버스인지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김 변호사는 “같은 장애인, 같은 소수자로서 감정을 이해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 더 사건에 매달리게 되기도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변호를 하며 겪는 난관도 적지 않다. 서류 준비부터 법원 출석까지 장애인 변호사는 비장애인보다 조금 더 수고스럽다. 판사가 “표로 정리해달라” “중요 부분은 체크해달라”고 주문할 때 김 변호사는 이를 곧바로 반영하는 게 쉽지 않다. 김 변호사는 “저는 음성 프로그램이 쭉 읽어주니까 시각적으로 괜찮은지 신경 쓸 수가 없다”며 “판사뿐 아니라 다른 분들과 협업할 때도 ‘어디에 메모 달아뒀습니다’ ‘빨간색 부분 수정해주세요’라고 하면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어 이중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에 출석할 때면 근로지원인이 동행하곤 하지만, 지원 예산이 언제 끊길지 모르기 때문에 법원 차원의 보조 인력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법을 아는 것과 별개로 정책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4개월 전부터 장애 법률가를 위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지원을 받으며 법학전문대학원과 변호사시험 운영 전반의 미비점을 연구 중이다. 김 변호사는 “학교마다 장애 이해도가 달라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는 학교도 있었다”며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차원에서 당사자들로부터 자문을 받고, 입학부터 기숙사, 편의시설, 학내 시험을 다 통틀어서 업무 매뉴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시험에서 법무부가 제공한 노트북이 10번 이상 꺼져 손해를 봤던 경험을 언급하며 “예측 가능한 변수들을 세심하게 고려해 장애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을 넘어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사연에 매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나아가 “정책적 변화까지도 이끌 수 있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변호사는 “장애 법률가가 활동하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선 공익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며 “공익을 두루두루 다루며 사회와 약자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법을 다루고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김 변호사가 구청에 넣은 민원 신청으로 동천 사무실까지 가는 길에 점자블록이 새로 놓인 것처럼 소수자들의 삶에 작은 다리를 놔주는 게 김 변호사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