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가 곧 공익이라는 마음으로”···시각장애 김진영 변호사

2024.09.19 11:31 입력 2024.09.19 20:37 수정

시각장애인 김진영 변호사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동천’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시각장애인 김진영 변호사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동천’ 회의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약자가 약자를 돕는다는 것…. 혼자 그런 고민을 하곤 해요. 장애 법률가가 자신을 돕는다고 할 때 불안해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죠. 그럴수록 더 매달리게 돼요.”

김진영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수습을 뗀 새내기 변호사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동천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점자가 찍힌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채 20년을 살아온 시각장애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입사한 뒤 종각역부터 새로 생긴 점자블록을 따라 걸으면서 사무실로 출근한다.

재수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이름을 단 지 1년4개월이 흘렀다. 김 변호사는 장애와 복지 분야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로스쿨에 들어갈 때부터 공익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사회에서도 제일 안 보이는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특성과 소통 방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쪽방 주민에 대한 전입신고 거부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아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승소 결과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어리바리했던 수습 생활을 이겨내고 맡은 사건이어서 굉장히 뿌듯했다”고 말했다.

요즘 김 변호사는 버스정류장을 법에 맞게 정비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맡아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대리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사건에 대해 묻자 자신의 일화를 먼저 꺼냈다. “사실 저도 버스를 거의 안 타거든요. 사람이 없는 버스정류장에선 정차한 버스가 몇 번 버스인지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김 변호사는 “같은 장애인, 같은 소수자로서 감정을 이해하고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 더 사건에 매달리게 되기도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변호를 하며 겪는 난관도 적지 않다. 서류 준비부터 법원 출석까지 장애인 변호사는 비장애인보다 조금 더 수고스럽다. 판사가 “표로 정리해달라” “중요 부분은 체크해달라”고 주문할 때 김 변호사는 이를 곧바로 반영하는 게 쉽지 않다. 김 변호사는 “저는 음성 프로그램이 쭉 읽어주니까 시각적으로 괜찮은지 신경 쓸 수가 없다”며 “판사뿐 아니라 다른 분들과 협업할 때도 ‘어디에 메모 달아뒀습니다’ ‘빨간색 부분 수정해주세요’라고 하면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어 이중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에 출석할 때면 근로지원인이 동행하곤 하지만, 지원 예산이 언제 끊길지 모르기 때문에 법원 차원의 보조 인력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법을 아는 것과 별개로 정책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4개월 전부터 장애 법률가를 위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지원을 받으며 법학전문대학원과 변호사시험 운영 전반의 미비점을 연구 중이다. 김 변호사는 “학교마다 장애 이해도가 달라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는 학교도 있었다”며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차원에서 당사자들로부터 자문을 받고, 입학부터 기숙사, 편의시설, 학내 시험을 다 통틀어서 업무 매뉴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시험에서 법무부가 제공한 노트북이 10번 이상 꺼져 손해를 봤던 경험을 언급하며 “예측 가능한 변수들을 세심하게 고려해 장애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을 넘어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사연에 매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나아가 “정책적 변화까지도 이끌 수 있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변호사는 “장애 법률가가 활동하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선 공익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며 “공익을 두루두루 다루며 사회와 약자들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법을 다루고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김 변호사가 구청에 넣은 민원 신청으로 동천 사무실까지 가는 길에 점자블록이 새로 놓인 것처럼 소수자들의 삶에 작은 다리를 놔주는 게 김 변호사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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