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2024.10.01 06:00 입력 2024.10.01 19:54 수정 정효진 기자

전남 곡성 회화마을 귀농청년 볕뉘·풀·연어·망고·핸내의 ‘리틀 포레스트’

지난달 22일 볕뉘,연어,풀(안쪽부터)이 이웃 망고, 핸내의 논에서 비바람에 쓰러진 벼를 묶고 있다. 전남 곡성군 겸면 회화마을에 사는 청년 다섯은 모두 항꾸네협동조합의 귀농 프로그램을 마치고 이곳에 정착했다. 정효진 기자

지난달 22일 볕뉘,연어,풀(안쪽부터)이 이웃 망고, 핸내의 논에서 비바람에 쓰러진 벼를 묶고 있다. 전남 곡성군 겸면 회화마을에 사는 청년 다섯은 모두 항꾸네협동조합의 귀농 프로그램을 마치고 이곳에 정착했다. 정효진 기자

농사짓는 일은 미래를 조금 미리 사는 일이다. 씨를 틔울 때는 싹이 나는 걸 그려보고, 싹이 나면 키가 커질 모습을, 그 후에 열매가 달릴 모습을 생각한다. 맨땅에서도 빼곡함을 보고, 빼곡함에서는 다시 수확 후의 맨땅을 본다. 내일의 햇볕, 비, 구름을 가늠하고 염려한다. 농부는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 땅을 돌보고, 땅이 내어주는 것을 얻는다.

전남 곡성군 겸면 회화마을에 사는 볕뉘(35), 풀(32), 연어(28)는 올해로 5년 차, 4년 차, 3년 차 농부다. 키워서 파는 직업인으로서의 농부보다는 농사를 삶의 지향점으로 삼는 것에 가깝다. 필요한 만큼 길러 먹고, 소비보다는 자급자족을 목표로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기계가 아닌 손으로 심고 거둔다. 지역협동조합인 항꾸네협동조합의 청년 귀농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농사를 배웠고, 프로그램을 마친 후 곡성에 정착했다. 이제 비가 오면 벼가 쓰러졌을 것이고, 물에 닿은 벼에서 싹이 나기 전에 얼른 일으켜 세워주어야 한다는 걸 아는 제법 어엿한 농부가 됐다.

풀의 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은 셋이 뒷정리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벽에는 계절에 맞는 농작물과 절기가 표시된 달력이 걸려있다.

풀의 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은 셋이 뒷정리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벽에는 계절에 맞는 농작물과 절기가 표시된 달력이 걸려있다.

연어가 풀에게 씨앗을 나누기 위해 종이에 옮겨 담고 있다. 키운 식물에서 다시 씨앗을 얻기도 하고, 이웃에게서 씨앗을 받거나 인터넷으로 조금씩 구매하기도 한다.

연어가 풀에게 씨앗을 나누기 위해 종이에 옮겨 담고 있다. 키운 식물에서 다시 씨앗을 얻기도 하고, 이웃에게서 씨앗을 받거나 인터넷으로 조금씩 구매하기도 한다.

풀이 상토에 초록 양배추와 적양파 씨앗을 심고 있다. 전날 연어에게서 얻어온 씨앗이다.

풀이 상토에 초록 양배추와 적양파 씨앗을 심고 있다. 전날 연어에게서 얻어온 씨앗이다.

연어가 밭에서 배추 모종을 심다 땀을 닦고 있다. 연어는 “원래는 태어난 계절인 겨울을 좋아했는데 농사지으면서는 여름이 진짜 필요한 계절이다 싶다. 열매가 익어갈 수 있는 그런 더위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연어는 밭에서 가지, 콩, 동부, 토란, 레몬 바질, 당근 등을 기른다. 가지만 해도 쇠뿔가지, 스트링가지, 팡가지 등 종류가 많다.

연어가 밭에서 배추 모종을 심다 땀을 닦고 있다. 연어는 “원래는 태어난 계절인 겨울을 좋아했는데 농사지으면서는 여름이 진짜 필요한 계절이다 싶다. 열매가 익어갈 수 있는 그런 더위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연어는 밭에서 가지, 콩, 동부, 토란, 레몬 바질, 당근 등을 기른다. 가지만 해도 쇠뿔가지, 스트링가지, 팡가지 등 종류가 많다.

볕뉘가 도정기에 나락을 넣고 도정하기 위해 포대를 꺼내고 있다. 보리벼, 북흑조, 한양조, 멧돼지찰 등의 다양한 종류의 벼를 키우는 볕뉘는 “쌀 맛이 다 다른데, 갓 도정한 쌀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볕뉘가 도정기에 나락을 넣고 도정하기 위해 포대를 꺼내고 있다. 보리벼, 북흑조, 한양조, 멧돼지찰 등의 다양한 종류의 벼를 키우는 볕뉘는 “쌀 맛이 다 다른데, 갓 도정한 쌀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풀이 밭에서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풀 ‘수영’을 뜯고 있다.

풀이 밭에서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풀 ‘수영’을 뜯고 있다.

지난달 22일 이른 아침, 각자의 논과 밭에서 일하던 셋이 다시 논길을 걸어 만났다. 이틀 동안 강한 비가 쏟아지다 겨우 조금 멎은 참이다. 주황색 논 장화를 무릎까지 올려 신고 질척한 논바닥에 들어가 쓰러져 있는 벼를 들어 올린다.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구역이 나뉘고, 근처에 있는 벼끼리 묶는 작업을 반복한다. 일이 얼추 끝나자 볕뉘가 전후 비교 사진을 찍어 보내겠다고 한다. 사고로 입원한 망고(28)와, 망고의 간병을 위해 함께 병원에 머무는 핸내(26)에게다.

회화마을에 사는 청년 다섯은 ‘느슨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챙긴다. 밥과 반찬, 씨앗과 작물이 오가는 것만큼 생활을 자연스레 돌본다. 이날 망고와 핸내의 논을 살핀 것도 당연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옆집을 방문하는 게 익숙하다. 며칠 비가 오는 동안에도 나물 비빔밥, 된장국, 오이 김밥, 가지 스테이크, 깻잎 페스토 파스타 등을 만들어 같이 먹었고, 마을 공유 공간에서 영화를 봤으며, 밤에는 반딧불이를 찾아 산책하고 망원경으로 달도 봤다. 각자 일하고 함께 쉬기도 하고, 함께 일하고 각자 쉬기도 하며 이들의 하루가 채워진다. 논과 밭에선 진지한 표정으로 손끝에만 집중하다가도 모이면 별거 아닌 것에도 웃음이 터진다.

셋이 저녁을 먹다 망고, 핸내와 통화하며 웃고 있다.

셋이 저녁을 먹다 망고, 핸내와 통화하며 웃고 있다.

회화마을 청년 다섯이 밥을 챙겨주는 강아지 ‘까망이’와 ‘노랑이’가 풀을 보고 반기고 있다.

회화마을 청년 다섯이 밥을 챙겨주는 강아지 ‘까망이’와 ‘노랑이’가 풀을 보고 반기고 있다.

풀이 농사 일기를 쓰고 있다. 풀은 “작년, 재작년 이맘때의 내가 뭘 했는지 보면서 올해 계획을 세운다”고 했다. 이날 풀은 일기에 ‘무순 솎아 먹기, 대파 하나 뽑아먹기, 돼지감자꽃 피기 시작’ 등의 내용을 적었다.

풀이 농사 일기를 쓰고 있다. 풀은 “작년, 재작년 이맘때의 내가 뭘 했는지 보면서 올해 계획을 세운다”고 했다. 이날 풀은 일기에 ‘무순 솎아 먹기, 대파 하나 뽑아먹기, 돼지감자꽃 피기 시작’ 등의 내용을 적었다.

볕뉘가 논에서 비바람에 쓰러진 벼를 묶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벼가 이렇게 많이 쓰러진 것도 올해가 처음”이라던 볕뉘는 “얼만큼 했는지가 바로바로 보이는 게 재밌다”며 계속해서 벼를 세우고 묶었다.

볕뉘가 논에서 비바람에 쓰러진 벼를 묶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벼가 이렇게 많이 쓰러진 것도 올해가 처음”이라던 볕뉘는 “얼만큼 했는지가 바로바로 보이는 게 재밌다”며 계속해서 벼를 세우고 묶었다.

도시에 살 때는 성취, 인정, 효율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했던 이들은 곡성에서 내려놓음을 배웠다. 토마토를 잔뜩 심었지만 하나도 열리지 않을 때도, 기대하지 않고 심었던 참외 수확이 좋을 때도 있었다. 연어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날씨, 토양 다 같이 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식물이 잘 자랄지, 어떤 열매가 잘 열릴지 땅과 대화하는 법을 아직 익히는 중이다. 20년, 30년 후 볕뉘는 “훨씬 노련한 농부가 되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평생을 농사지은 어르신도 기회가 60번 밖에 없어서 아직도 잘 모른다고 하셨다”며 “지금 농부로서 5살이니 20년 후인 스물다섯 살은 한창때일 것”이라고 말했다.

집과 땅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도시에서와 다르지 않다. 마을에 빈집, 빈 땅은 많지만 임대로 잘 나오지 않는다. 집을 수리해놓으면 주인이 나가라고 하니 고치지 말고 살라는 조언을 들었다. 회화마을에 정착하고 싶었던 청년들이 집을 구하지 못해 인근 마을로 귀농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이들은 “이곳에서 계속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내가 돌보는 땅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재밌다. 물 찬 논에 달그림자가 비치는 것, 봄이 오면 꿀벌이 깨어나서 꽃 주위를 맴도는 것 역시 경이롭다.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쓸모 있음과 없음은 어떻게 다른지 고민하게 된 계기도 자연이 줬다.

연어가 볕뉘 논 구석에 있는 밤나무에서 밤을 하나 주워왔다. 셋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연어가 볕뉘 논 구석에 있는 밤나무에서 밤을 하나 주워왔다. 셋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달이 크고 밝은 밤 셋이 망원경으로 달을 바라보고 있다.

달이 크고 밝은 밤 셋이 망원경으로 달을 바라보고 있다.

볕뉘가 자신의 논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다른 논들에 벼멸구 피해가 있어 걱정이다. 볕뉘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논에서 벼농사를 지은 마을의 첫번째 여성이기도 하다.

볕뉘가 자신의 논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다른 논들에 벼멸구 피해가 있어 걱정이다. 볕뉘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논에서 벼농사를 지은 마을의 첫번째 여성이기도 하다.

‘까망이’가 연어 손에 있는 알밤을 탐내고 있다.

‘까망이’가 연어 손에 있는 알밤을 탐내고 있다.

서로가 부르는 별명에는 뜻이 있다. 볕뉘는 ‘틈 사이로 비치는 햇볕’, 연어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는 의미다. 풀은 “사람들이 어떤 풀을 보고는 약초라고, 어떤 풀을 보고는 잡초라고 한다”며 “잡초도 아니고 약초도 아니고 그냥 풀이에요라고 대답하는 마음으로 별명을 지었다”고 했다. 이들에게 “당신들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비슷하게 답할 수 있겠다. “심을 게 있으면 심고, 거둘 게 있으면 거두고, 비가 오면 쉬고, 비가 그치면 다시 일하고, 밥해 먹고, 낮잠 자고, 다시 일해요.” 이들이 기르고, 거두고, 나누는 모든 순간이 수확에 가깝다.

비가 그친 뒤 셋이 볕뉘의 논을 둘러보고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비가 그친 뒤 셋이 볕뉘의 논을 둘러보고 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항꾸네협동조합 공용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셋이 마을에 돌아와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기 전 인사하고 있다.

항꾸네협동조합 공용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셋이 마을에 돌아와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기 전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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