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책 본다” 체벌한 교사···대법 “아동학대” 유죄 확정

2024.10.04 12:00 입력 2024.10.04 20:08 수정

교실 이미지컷. pixabay

교실 이미지컷. pixabay

“이거 야한 책 아이가?”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런 야한 종류의 책이 아닙니다.”

2019년 3월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 3학년 교실. 자율학습 시간에 교사 A씨가 B군(당시 14세)이 읽던 소설책을 발견했다.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소설이었는데 A씨는 ‘야한 책’이라고 했다. B군이 부정했더니 가슴이 노출된 소녀의 삽화가 들어 있는 책의 페이지를 펼쳐 들고는 20명가량의 동급생 앞에서 펼쳐 보였다. A씨는 “이 그림이 선정적이야, 아니야?”라고 물은 다음 한 학생에게 책을 주면서 “야한 거 나오는지 체크하라”고 했다.

B군에게는 체벌이 내려졌다. B군은 교실 앞으로 불려나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약 20분간 엎드려뻗치기를 했다. 수업이 끝난 뒤 B군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남기고 학교에서 자살했다. B군의 부모는 “학교 측이 사건 경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사과도 없다”며 한 달간 학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후 A씨는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A씨의 정서적 학대행위를 인정하고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취업제한 5년도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중학교 교사가 정서적 학대행위를 했고 그 이후 피해 아동이 교내에서 사망에 이른 사건으로 죄질이 무겁다”며 “A씨가 피해 회복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가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2심도 A씨의 행위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수강명령 40시간으로 감형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이전까지 A씨와 B군이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A씨가 B군을 괴롭힐 의도였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4년 넘게 심리한 뒤 지난달 12일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A씨의 행위 정도가 훈육 범위를 벗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이고, 실제 피해 학생이 이 사건을 계기로 수치심을 느껴 자살했으므로 그 관점에서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수긍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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