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6 15:05 입력 2024.10.07 10:19 수정 주영재 기자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앞바다에서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다. 이 지역 어민과 해녀들은 원전 온배수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며 한수원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앞바다에서 어선들이 조업하고 있다. 이 지역 어민과 해녀들은 원전 온배수로 인한 피해를 주장하며 한수원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임덕이 부산 기장 문동마을 해녀회장은 78세인 지금도 물질을 한다. 16살 때 제주 해녀에게서 처음 물질을 배웠는데, 수업만 끝나면 가방을 던지고 바다에 뛰어들던 때라 무섭거나 낯설지 않았다. 바다는 들어가면 돈이 나오는 ‘통장 없는 은행’이었다. 운단(성게의 사투리)을 잡아 팔면 1㎏에 7만~10만원 정도를 받았다. 전복, 소라, 문어도 잡았다. 바다에서 캔 미역이 그 유명한 ‘기장 미역’이다. 천초(우뭇가사리), 모자반, 은행초 등은 반찬거리로 삼았다. 파도가 센 날만 아니면 매일 바다로 출근했다.

풍요로울 것만 같았던 바다는 인근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가동한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전에서 배출된 온배수로 피부로 느낄 만큼 바닷물이 따뜻해졌다. 모자반, 천초 등 기장 앞바다에서 자라던 해초 대다수가 사라졌다.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던 자연산 미역은 자취를 감췄다. 많을 땐 혼자서 15㎏씩 잡았던 운단은 요즘 2~3㎏ 밖엔 잡히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는 화력발전소와 마찬가지로 발전에 사용된 증기를 물로 응축시켜 재사용하기 위해 다량의 냉각수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온도가 올라간 물이 주변으로 방출되는데 이를 ‘온배수’라고 한다. 원전 온배수는 주변 바닷물보다 약 7℃ 도 높은 상태로 방출되면서 기존 생태계를 교란하는 열오염을 일으킨다. 이때 바닷물에 잠겨 안정된 조건에서 생육하는 해조류가 특히 큰 영향을 받는다.

임 회장은 “바다에 백화현상(연안 해역에서 해조류의 급격한 감소로 해중림이 소실되는 현상)이 일어나서 미역은 다 죽었고, 운단도 지난해엔 하나도 수확하지 못했다”면서 “올해도 10월 말에 운단을 입찰할텐데 색이 까맣게 변하는 등 상품성이 떨어져 있어도 못 팔 듯 하다”고 말했다.

■태안에 ‘기장 미역’ 씨를 뿌리는 이유

자연산 기장 미역은 현재 찾아보기 어렵다. 양식을 통해 명맥을 잇고 있다. 그나마 ‘반쪽짜리’다. 태안에서 태어나, 부산으로 적을 옮기기 때문이다. 일반 미역보다 출하시기가 한 달 가량 빠른 ‘조기산 미역’을 양식하기 위해 쥐어짜낸 방법이다. 기장 앞바다는 조기산 미역 양식을 위해 씨를 뿌리기엔 온도가 너무 높다. 어민들은 9월 중순부터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25~30일 정도 종묘를 길러 10월 중순 전 기장 앞바다에 미역을 이식한다. 비용는 5배 정도 늘어나지만 높은 값을 받는 조기산이라 버티고 있다.

이런 양식 방법을 처음 생각한 이는 기장 어민 김영태씨이다. “조기산 미역 양식이 갈수록 안 되서 우리나라에서 수온이 제일 먼저 떨어지는 곳을 찾아 양식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조사를 했죠. 그렇게 찾은 곳이 태안인데, 여기서 미역씨를 감아 손가락만큼 자라면 냉동탑차에 실어 부산어장으로 가져와 바다에 넣습니다. 원전 온배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어려울 일이 없죠.”

충남 태안군 신진도 앞바다에서 지난 9월 24일 어민들이 미역 포자를 이식한 줄을 바다로 내려 보내고 있다. 김태영 제공

충남 태안군 신진도 앞바다에서 지난 9월 24일 어민들이 미역 포자를 이식한 줄을 바다로 내려 보내고 있다. 김태영 제공

미역과 다시마는 22℃ 이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 수일 내에 해조류 엽체가 녹는 등 피해가 나타난다. 기장 바다의 경우 지난해 가을 22℃ 아래로 유지된 때가 10월 14일을 넘어가면서 시작됐다. 2010년대 초반에는 9월 말이면 22℃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 시기가 10월 초로, 다시 10월 중순으로 늦춰졌다. 수확기 수온이 높으면 미역 엽체에 지름 0.5∼1.5mm 정도의 작은 구멍이 생기는 ‘바늘구멍병’도 나타나 상품성이 떨어진다. 바다가 더워지면 미역을 키우기 어려워지는 이유이다.

이 지역 바닷물이 따뜻해진 게 온전히 원전 온배수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온배수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7~11㎞ 내외로, 그 너머의 바다로 가면 대양의 물과 희석돼 주변 해수 온도와 같아진다. 하지만 육지에서 가까운 곳에서 양식하는 미역 생산에는 무시못할 영향을 준다. 김씨는 “10월에 접어들면 기장군 전역에서 양식미역을 입식합니다. 우리 대변항이나 송정항에선 살아남는데, 고리 원전에 가까운 문동이나 문중, 이동쪽에선 같은 날 똑같은 종자로 입식해도 죽어요. 그게 증거죠”라고 말했다.

기장 어민, 해녀들은 온배수 피해를 주장하면서 20년 넘게 한국수력원자력과 다투고 있다. 한수원은 온배수 피해 범위를 정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했다. 2007년 부경대·한국해양대가 맡은 1차용역에선 피해범위가 원전 반경 7.8㎞였는데 범위가 축소됐다는 비판에 2차용역을 진행했다. 전남대가 맡은 2차용역에선 11.5㎞로 확대됐는데 이번엔 한수원이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3차 용역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일 부산 기장군 기장수협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학 기장군어업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태안까지 올라가 미역양식을 하는데도, 한수원은 생산량에 큰 차이가 없다는 이유로 피해를 외면하고 있다”면서 “고리 원전 건설 과정에서 이주보상을 한 걸 마치 온배수 피해 보상을 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연구의 사각지대, 원전 온배수

경향신문이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 국내 온배수 배출량은 600억t 내외로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에서 절반 정도씩 나온다. 고리 원전에서 나온 온배수는 최근 5년간 연간 60억t 내외로 초당 약 190톤이다. 온배수가 주변 바다를 데울 때 어류는 온도 변화를 감지해 이동할 수 있지만 해조류는 불가능하다.

최근 5년간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온배수 배출 현황(단위:억톤). 온배수 배출량은 발전소별 계획예방정비 등 운영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 김정호 의원실·한수원 등 6개 발전사

발전소 온배수 배출 현황

최근 5년간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온배수 배출 현황(단위:억톤). 온배수 배출량은 발전소별 계획예방정비 등 운영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 김정호 의원실·한수원 등 6개 발전사

고리4호기 가동시 온배수 피해범위. 전남대 용역보고서·기장수협 제공

고리4호기 가동시 온배수 피해범위. 전남대 용역보고서·기장수협 제공

2009년 학술지 ‘해양환경연구(Marine Environmental Research)’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브라질 원전 BNPP가 있는 일랴 그란데 만의 경우 원전 온배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어종의 다양성이 감소했고, 갈색 조류 군집이 감소했다고 나온다. 영광 원전 인근 해역의 경우도 온배수 배출구 근처에서는 해조류가 거의 사라졌다. 2019년 중국 난징대 연구진은 동중국해에 위치한 해안가 원전·화력발전소 온배수 배출구의 0.5~1㎞ 범위에서 성층화 현상(따뜻한 물과 찬물이 층을 이뤄 영양염이 교환되지 않는 현상)이 뚜렷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원전 온배수로 인한 해양생태계 변화와 관련한 장기 추적 연구를 찾기 어렵다. 과거 한전 전력연구원 방사선환경그룹, 해양조사팀 등에서 온배수 관련 연구를 했지만 현재는 사라진 상태이다. 한수원은 “해당 업무가 2011년 한수원 중앙연구원에 이관됐다”면서 “본사 환경기술부에서 연구한 결과 온배수로 인한 영향은 배수구 인근 해역에 국한되어 나타났고 특이할 만한 환경 및 생태계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변화하는 큰 차이가 있다.

원전 안전규제 전문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온배수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기후변화로 수온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온배수는 원전의 안전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기장수협 주요 해산물 위판현황. 기장수협

기장수협 주요 해산물 위판현황. 기장수협

그는 “해수 온도 상승으로 취수시 온도가 올라갈 경우 냉각능력이 떨어져서 안전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울진 원전의 경우에도 해수 온도 상승으로 냉각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해양생물이 취수구에 붙어 취수를 막을 수 있는데, 한울1·2호기나 울진 1·2호기의 경우 취수구 이중화가 되어 있지 않아 하나가 막히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짚었다.

온배수 배출 기준도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다. 환경부 수질환경보전법 시행규칙 중 오염물질 배출허용 기준에서 배출수 온도를 40℃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발전소 온배수 기준은 아니다. 한수원은 “온배수는 수질오염물질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산업폐수의 수질오염물질 배출허용 기준을 준용하지 않는다”면서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관련부처와 발전 6개사가 협의해 온배수 관리기준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윤 대표는 “바다 온도가 1℃만 올라도 어업하는 분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준다”면서 “한수원에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용역을 주는데,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전담 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기사 어떠세요?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