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 4위 중고의류 수출국
생산~폐기, ‘지구 반 바퀴’ 여정
결국 소각되거나 쓰레기로 쌓이는 옷,
“매립지 주변에 피부 성한 동물이 없어”
아파트 3층 높이로 쌓인 옷더미를 너클크레인(집게차)이 한 움큼 집어 컨베이어 벨트로 옮겼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 낮, 기계 굉음 위로 ‘불놀이야’ ‘나 어떡해’ 같은 8090 유행가가 흘렀다. 한 더미 옷들이 박스로 묶여 사라졌다. 의류 먼지를 막으려 마스크를 쓴 노동자들의 손이 분주했다. 그보다 많은 옷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하루 50t씩 쌓이는 옷더미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버려진 것들이 모인다
9월4일 경기도 파주의 한 중고의류 수출업체. 입구에 ‘KTMC’ ‘Safmarine’ 등이 적힌 해외 선사 컨테이너가 줄지어 섰다. 이곳은 전국에서 온 중고의류를 분류하는 국내 최대 작업장이다. 버려진 것들이 한데 모였다가 이 업체를 거쳐 소각장,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30개국으로 흩어진다.
오전 10시58분, 빨간 줄무늬가 선명한 분홍색 치마가 1층 구석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2월3일 서울에 사는 A씨가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타오바오에서 주문한 55위안(약 1만300원)짜리 옷이다. 치마는 흰색 기모 상의, 청색 후드티 사이에 끼어 3층 대분류장에 도착했다. 분류 ‘첫 관문’에 도착하는 데 45초가 걸렸다.
3층에 수평으로 펼쳐진 컨베이어 벨트 앞에는 ‘맨투맨’ ‘세타(스웨터)’ ‘백보루’ ‘만물’ 등이 적힌 20개 정도의 물품함이 있다. 함 바닥이 뚫려 있어 벨트에 놓인 옷을 잡아 던지면 그대로 2층과 1층으로 이동한다.
오전 11시2분, 분홍색 치마가 1층 분류대 ‘치마’ 라인에 떨어졌다. 노동자가 치마를 집어 파란색 박스에 휙 던져 넣었다. 다른 여름용 치마들이 위로 쌓이며 한데 엉켰다. ‘면 100%, 메이드 인 코리아’가 적힌 라벨을 단 아이보리색 여름 치마, 나일론 100% 태국산 치마가 한 박스에 담겼다.
이날은 분홍색 치마의 첫 외출날이었다. 헌 옷 박스에 담겼지만 착용 횟수가 0회인 사실상 새 옷이다. 올 3월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배송이 시작됐다. 이후 한 달간 광둥성에서 산둥성 웨이팡시로, 다시 옌타이시로 이동하며 중국 안에서만 2000여㎞를 움직였다.
4월 초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서울 보라매동 A씨의 안방 옷장에 걸렸다. 4개월 동안 옷장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지난봄 “당시 핑크색에 꽂혀 있었”던 A씨가 비슷한 옷을 여럿 사둔 탓에 매번 경쟁에서 밀렸다. 지난 8월 A씨가 앞으로도 입지 않을 것 같은 옷들을 정리하며 이 치마를 선택한 이유기도 했다.
오후 1시49분 분홍색 치마를 담은 헌 옷 박스가 가득 찼다. 저울에 125.8㎏이 찍혔다. 업체는 옷들을 겨울용 파카, 무스탕, 울재킷, ‘뽀글이’ 등 약 180종으로 세분화해 분류한다. 종류가 많다 보니 한 박스가 채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분홍색 치마가 든 박스는 곧 압축 기계로 옮겨졌다. 옷들이 쏟아져나와 직사각형 형태로 압축됐다. 위로 비닐이 덮이고, 굵은 철사들이 교차하며 옷더미를 죄었다. 윗면에 검정 보드마커로 ‘#006L’ ‘LCS’가 적혔다. Ladies Cotton, Long Skirt(여성 긴 치마)의 줄임말이다.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소비된 분홍색 치마는 그렇게 수출용 옷더미 ‘베일(Bale)’의 일부가 됐다. 곧장 한국을 떠나진 않는다. 헌 옷 중에서도 여성 여름 의류는 공급이 많은 편이다. 많이 버린다는 뜻이다. 재고가 넘치니 창고에 보관했다가 바이어(구매자)가 나타나면 그제야 수출길에 오른다.
‘중고 옷’의 이동은 매일, 전 지구적으로 이뤄진다. 재활용품 이동일지, 폐기물 이동일지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여러 국가를 돌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소각 또는 매립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상품으로서 짧은 생, 버려진 이후 맞는 긴 죽음.’ 현대 사회에서 다수 공산품이 맞이하는 운명이다.
지게차가 ‘#006L LCS’ 베일을 들고 재고 창고로 향했다. 오후 2시1분, 창고 왼쪽 구석에 베일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예상 출고일은 1년 뒤다. 목적지는 알 수 없다.
나이지리아로 향하는 ‘7번 박민혁’
갈 곳이 명확한 옷들도 있다. 분홍색 치마 위로 옷들이 쌓여가던 오전 11시쯤 등에 ‘7번 박민혁’이 적힌 검정·빨강 줄무늬의 축구 유니폼이 중국에서 생산된 ‘즐겨라 대한민국 We are the Reds!’ 티셔츠와 함께 1층 ‘잠바’ ‘츄리닝’ 라인에 떨어졌다.
‘7번 박민혁’ 티셔츠는 엑스라지(XL), 한국식으로는 100 사이즈다. 폴리에스터 100%로 만든 뒤 ‘쿨에어텍스(COOLAIRTEX)’라고 적어 시원한 재질임을 강조했다. 이후 누군가의 주문에 따라 뒷면에 등번호와 이름이 새겨졌을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당일 나이지리아로 가는 컨테이너에 실려 9월7일 인천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남성 스포츠 의류는 인기 품목이다. 헌 옷으로 들어오는 양은 많지 않은데, 아프리카 등 국가에서 수요가 높다. 일부 저개발 국가에서는 여전히 여성 속옷이나 아동 의류를 구하기 힘든 경우가 있어 이런 종류도 인기가 많다.
A씨가 치마와 함께 버린 비스코스 41.5%, 폴리아미드 34.6%, 폴리에스터 23.9%가 섞인 78위안(약 1만4000원)짜리 중국산 아동 원피스도 ‘아동 겨울옷’ 박스에 놓이며 자리를 찾아갔다. 결혼식장에 가는 아이에게 입혀져 옷으로서 딱 한 번 외출했다.
올 초 해외 직구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초저가 물품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떠들썩하게 퍼졌다. A씨는 원피스를 비롯해 아이를 위해 샀던 69위안(약 1만3000원)짜리 검은색 에나멜 구두, 23.8위안(약 4900원)짜리 하늘색 모자도 더는 꺼내지 않았다.
이들 물건에서 중금속이 검출된 것은 아니었지만, 저가로 산 옷들을 지인에게 나누기도 꺼려졌다. 그렇게 8월 치마와 함께 버려졌다. 일단은 재고 창고에 들어갔지만, 인기 품목인 만큼 길어도 한두 달 뒤면 수출길에 오른다.
헌 옷은 줄지 않는다
유엔 국제무역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기준 미국, 중국, 영국에 이어 세계 4위 중고의류 수출국이다. 수출액은 한 해 약 3억7400만달러 규모로 2020년 2억8860만5455달러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수출 물량은 지난해 기준 29만5492t이다. 인도 수출량이 8만420t으로 가장 많고 이어 말레이시아(5만8030t), 필리핀(2만5001t) 순이다. 나이지리아(1만8009t), 칠레(1만3796t) 등 아프리카나 남미 국가들도 있다.
서울 공공데이터포털과 각 구청에 확인한 결과 9월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에 설치된 의류 수거함은 총 1만1101개다. 관악구가 888개로 가장 많고 은평 832개, 강북 730개, 강남 667개, 양천 674개 순이다.
최근엔 온라인을 통해 헌 옷을 직접 수거하는 업체들도 있다. 9월3일 온라인 헌 옷 수거업체 ‘리클’ 남양주 공장 앞엔 초록색 택배 전용 봉투에 담긴 헌 옷들이 가득했다. 업체 관계자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수거하는 방식이라 젊은 분들이 많이 이용한다”며 “명품 브랜드 옷이나 신발도 종종 섞여 있다”고 말했다.
사업 초기 월 100여건이던 수거 신청 건수는 2022년 말 기준 2500여건까지 늘었다. 최근에도 증가세는 계속된다. 패션 트렌드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겉은 멀쩡해도 철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옷도 늘어난다. 이런 통계와 현상을 보면, 헌 옷 수거량은 당분간 줄지 않을 것 같다.
바다를 건너기 전 소각되기도
수거된 옷들이 수출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헌 옷을 수거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수출이고 재활용이고 안 되는 옷들이 있다. 그런 것은 소각장에 가져가 태운다”고 전했다. 그는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 때문인지 소각장 자체는 출입통제가 심한 편”이라며 “(수거한 헌 옷을) 소각장 옆 건물 적재창고에 두고 온다”고 말했다.
옷이 되지 못한 쓰레기도 있다. 원단 자투리다. 서울시 집계 결과 올해 1월 기준 서울에서 하루에 나오는 원단 쓰레기는 약 84t이었다. 지난 8월 서울시가 봉제원단집하장을 신설해 원단 자투리 재활용 계획을 세웠다. 그전에는 하루 발생량의 3분의 2 수준인 약 50t이 매일 소각되거나 매립됐다.
소각에는 비용이 든다. 수거업체도 수출업체도 소각 물량을 줄이는 것이 좋지만, 늘 옷이 쌓인다. 수출업체에 모인 물건은 ‘A·B·C’ 세 단계로 분류되는데, A와 B급은 해외 또는 국내 구제시장에 판다. C급은 소각이다. 작업장 한쪽에 100㎏ 정도로 압축된 소각용 옷들이 철사로 묶인 채 천장에 닿도록 높이 쌓였다. 소각 물량은 일주일에 20t 정도 발생한다고 했다.
파주 중고의류 수출업체에 들어오는 전체 물량 중 소각이 10%를 차지한다. 나머지 90% 중 상당수가 해외로 수출되고 이 중 5%가 재활용업체로 간다. 일부 의류기업들이 버려진 옷을 재활용해 새 옷을 만드는 ‘서큘러 패션(Circular fashion)’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헌 옷을 재활용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업체를 운영하는 송연희 대표는 “독일 등 해외 일부 국가는 섬유 재활용이 활발하다. 옷을 스캔하고 그 옷에 어떤 섬유가 몇 퍼센트 섞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계도 있다. 국내에 도입하면 좋겠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의류 재활용하면 폴리에스터 100% 원단만 원한다. 재활용시장이 다양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수출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각국 통관이 중단되면서 수출이 막혔다. 쌓인 중고의류를 처리할 수 없어 문제가 발생했다. 환경부는 당시 중고의류 수출업체 5곳에 대해 5개월간 약 4880t 규모의 폐의류 비축 비용을 지원했다.
송 대표는 수출이 막힐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재활용이 쉽지 않은 국내 상황상 수출을 하지 못하면 “전부 소각행”이라고 말했다.
지구를 돌아 ‘쓰레기산’이 되다
“도착 20분 전부터 매립지 위 하늘이 새까맣게 보였어요. 쓰레기에서 자연발화가 일어나서 가스가 먹구름이 낀 것처럼 보이는 거였어요. 창을 여니까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해 온갖 것들이 다 섞여 있더라고요. 환경오염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매립지 주변에 피부가 멀쩡한 동물이 없어요. 다들 바짝 말라 있어요.”
의류 및 쓰레기 소각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그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 여러 곳에 기술 수출을 위해 방문했다. 그중에서도 5년 전 광저우의 한 매립지를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광저우는 중국 무역 중심지 중 하나다. 전자상거래 발달 이후 일대에 ‘타오바오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수백개 생겼다. B씨는 의류 쓰레기가 심각하다면서 “저가 옷 공세가 심해지면서 재활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옷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광저우뿐 아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섬유들이 폐기돼 쌓인다. 칠레 아카타마 사막, 가나 아크라 해변의 쓰레기산과 캄보디아 프놈펜 벽돌공장의 소각 연료로 사용되는 헌 옷들이 대표적이다. 옷들은 어떻게 모이는 것일까.
지난 6월 유엔 산하 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발간한 ‘중고의류 위기에서의 방향 전환’ 보고서를 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유럽연합(EU)은 단일 경제권으로는 가장 많은 중고의류를 수출하는 지역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중고의류를 수출하는 규모가 늘면서 버려진 의류의 전 세계 무역량이 지난 30년간 7배가량 증가했다.
유럽 주요 중고의류 수출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다. 고가 의류는 유럽 내에서 재판매한다. 오염된 섬유는 대부분 소각한다. 나머지가 개발도상국에 수출되는데 “수입국이 주로 저품질 의류를 대량으로 받는다는 의미”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해외로 수출된 헌 옷이 100% 재활용될 거라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토니 블레어 세계변화연구소(TBI)가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가나에 들어온 총 6500만t의 중고의류 중 40%가 판매되지 않고 폐기됐다. 폐기물은 매립지에 버려지거나 바다로 흘러간다.
유럽에서 중고의류를 자체 처리하지 않고 수출하는 이유는 “비용 압박” 때문이다. 의류 분류 작업에 드는 인건비와 자원순환을 고려하지 않은 혼합섬유 재질의 옷이 증가하는 현상 등이 비용을 늘렸다. 일부 개발도상국은 폐기물 처리 규제가 약하기 때문에 처리가 쉬운 국가로 중고 옷을 수출하는 것이 ‘경제적’ 선택이 된다. 칠레와 캄보디아는 환경 규제가 심하지 않은 나라로 꼽힌다.
헌 옷의 국제적 이동이 급격히 증가하자 일부에선 이를 막기 위한 시도도 나왔다. 2016년 우간다·르완다·케냐·탄자니아·남수단 등 동아프리카 공동체(EAC) 소속 국가 일부가 자국 내 섬유산업 보호를 이유로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의 중고 의류·신발 수입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중고의류 수출국인 미국의 반대로 계획은 무산됐다.
지금도 중고의류를 포함해 의류 수출을 금지하는 국가가 없지는 않다. 칠레와 같은 남미 연안 국가 중 하나인 페루는 자국 섬유산업 보호를 위해 의류 수입을 금한다. 다만 이미 전 세계적인 중고의류 순환경제의 한 부분으로 그 역할을 하는 국가들이 이 체계 안에서 자력으로 발을 빼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향신문 2024 창간기획] ‘흔적’
라벨을 넘어…인도양으로
옷을 포함한 다수 공산품의 생산과 폐기 과정은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며 복잡해졌다. 소비자는 자신이 사는 물건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옷을 최초 구매한 국가의 소비자도, 긴 여정을 거쳐 자국에 도달한 중고의류를 구매한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사는 덱스타 알마드(32)는 시내에 있는 ‘오위노 시장(Owino Market)’ 등에서 해외 중고의류를 구매한다. ‘나이키’ 등 인기 있는 브랜드 티셔츠의 경우 2만우간다실링(약 7000원) 정도다.
덱스타는 기자와 진행한 e메일 인터뷰에서 중고 옷을 사는 이유로 “저렴하고 독특하기 때문”이라며 “진짜를 파는 곳에 가도 가품을 파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고품을 사는 것이 진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중고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옷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폐기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라벨에서 물건의 ‘시작점’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어렵다. A씨의 분홍색 줄무늬 치마는 라벨이 없다. 옷 정보는 판매사 홈페이지에 적힌 ‘폴리에스터 100%로 이뤄진 봄여름용 얇은 치마’ 정도가 전부다. 생산지와 생산일도 미상이다. A씨는 라벨의 유무엔 관심이 없었다. “옷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버려진 이후에 어디로 갈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라벨이 있다면 나아질까. 그렇지도 않다. 굉장히 친절한 라벨도 옷의 생산지와 생산일, 소재, 보관 방법, 수입사에 대한 정보 정도만 전달한다. 옷을 구성한 면화가 어디서 재봉되고 생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사바르 공단 내에서 발생한 라나플라자 붕괴사고로 1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4년 1월 캄보디아 프놈펜의 의류공장에서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시민·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정부로부터 유혈진압을 당하기도 했다. 비슷한 사고는 이후에도 연이어 반복됐다.
라벨에 담긴 간단한 정보는 옷의 시작과 끝을 보여줄 수 없고, 이는 옷들이 지구를 돌며 만들어낸 탄소발자국과 저임금 노동의 문제를 가린다. 이 상황에서 ‘윤리적 소비’는 가능하지 않다.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빠르게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많이 생산하기 위해 더 싼 노동력이 필요하고, 쉽게 버리기 위해 이를 받아줄 나라들이 필요하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버리지 않고 쌓아뒀다 해도 버린 것과 다름없다. 필요 이상 소비가 생기는 순간 물건은 쓰레기가 된다.
지난달 4일, 수출업체에서 분류된 ‘7번 박민혁’ 티셔츠는 같은 달 7일 업체를 떠나 인천항 컨테이너 창고로 옮겨졌다. 11일 새벽, 그리스의 섬 이름을 딴 폴레간드로스호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다음날 중국 다롄항에 잠시 멈췄다 27일 말레이시아 탄중 펠레파스, 28일 싱가포르를 지났다. 이달 초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에 머물렀다. 나이지리아 오네항에는 11월25일 도착 예정이다.
이동 국가는 지금까지 최소 5개국, 예상 이동 거리는 최소 1만8933㎞다. 원료가 만들어지고, 생산지에서 배송되기까지 여정이 더해지면 지구 반 바퀴(2만㎞)를 훌쩍 넘을 것이다. 티셔츠는 6일 현재 인도양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몇년 뒤에는 가나 아크라 해변의 쓰레기산 일부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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