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지원하기에 미흡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건복지 예산 규모는 늘었지만,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한 증가분을 감안하면 복지 사각지대를 메울 재정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정부 복지예산, 취약계층 지원 미흡”
참여연대가 30일 발표한 ‘2025년도 보건복지 분야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보면 내년 보건복지부 예산은125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증가율이지만 2024년(11.8%), 2023년(12.2%)와 비교하면 낮은 증가 폭이다.
기초생활 보장 예산은 2025년 21조8616억원으로 올해보다 5.0% 증액됐다. 기준중위소득 인상에 따른 영향이 컸다. 기준중위소득은 4인가구기준 6.42%(2024년 572만9913원→2025년 609만7773원)으로 올랐고 기준중위소득변동에 따른 급여액도 증액됐다.
다만 국가 공식통계자료 변경 과정에서 발생한 격차를 해소할 추가 인상분이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에 미반영되면서 당초 산출된 기본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
의료급여 예산은 8조6882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8% 줄었다. 건강생활 유지비가 월 6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2배 늘었을 뿐 전체 예산 규모는 감소했다.
특히 의료급여 수급자의 본인 부담 체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하는 개편안은 약자복지 기조를 무너뜨리는 ‘개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초생활 보장 분야를 분석한 김윤민 교수(창원대 사회복지학과)는 “정부는 기준중위소득 3년 연속 역대 최대 인상을 홍보하며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오히려 약자복지가 약한복지로 전환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생계가 곤란한 저소득 위기 가구를 신속 지원하는 ‘긴급복지 지원’ 사업 예산도 전년 대비 2.3% 감액됐다. 이에 따라 의료, 주거, 시설 이용 지원, 연료비, 장제비 지원이 줄줄이 감소했다.
내년 아동·청소년예산은 2조7196억원으로 올해(2조8238억원)보다 3.7% 축소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매년 보건복지 예산은 늘고 있지만, 아동·청소년 예산은 2023년 -1.5%, 2024년 -0.6% 등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
“아동 감소로 인한 예산 감소분, 정책 질 높이는 데 썼어야”
아동·청소년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동수당은 2025년 약1조9588억으로 1526억원(7.2%) 줄었다. 저출생 심화로 인한 출생아 수 자연감소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아래미 교수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는 “아동·청소년 인구감소가 가장 심각한 국가 문제라면서도 아동·청소년 예산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며 “아동·청소년 인구 감소로 인한 예산 감축은 다른 아동·청소년 정책의 질을 높일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고 밝혔다.
내년 노인복지예산은 27조4913억원으로 올해(25조6483억원) 대비 7.2% 늘었다. 고령화로 기초연금 수급자가 늘고, 물가인상으로 기준연금액이 증가한 영향이다. 2025년 기초연금예산은 전년대비 8.2%증가한 21조8645억에 달한다. 보고서는 기초연금이 노인 빈곤 완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수급·비용 분담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김형용 교수(동국대 사회복지학과)는 “내년도 예산에서 기초연금이 노인 복지의 80%를 초과했다”며 “향후 고령인구 증가로 기초연금 재정 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다른 노인 복지 사업들에 대한 하방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며 “기초연금의 방향 설정이 시급하다”고 했다.
장애인 정책 예산은 5조4533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증가율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정책 예산 연평균 증가율(15.5%)의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발생 경로의 서구화와 인구고령화로 장애 인구가 증가하고 있을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2003년 이후 장애 범주를 조정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의 장애인 정책은 늘어나는 장애 인구를 정책적으로 포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공공의료 관련 예산 감액이 두드러진다. 올해 126억1000만원 예산이 편성된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 및 운영 사업은 폐기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의료기관 손실 보상금이 폐기되면서다. 팬데믹 시기 감염병을 전담했다가 적자에 시달리는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공공지원금이 전액 삭감된 셈이다.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부원장은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예산을 대폭 늘리기 위해 공공의료부분 예산은 삭감하고 공중보건영역은 방치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