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Lite] 🩺 수술비는 '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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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 🩺 수술비는 '시가'입니다

11분 2023.03.07

임신중지 낙태죄 건강권 여성 페미니즘

☔

임신을 안전하게 중지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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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3.07. 화요일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김지혜 기자입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오늘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아야 해요.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요?

보통은 병원과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밟아갈 거예요. 의학적 전문성과 가이드라인에 따른 안내일 테니, 따로 의심하거나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유능한 의사와 병원을 수소문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선택 사항이죠.

하지만 어떤 이들의 상황은 아주 다릅니다. 수술해줄 병원을 찾으려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지거나, 약을 구하기 위해 익명의 네티즌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병원마다 천차만별인 수술비 앞에서 당황하기도 하죠. 수소문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예요. 절차 아닌 소문에 기댔으니, 무엇 하나 믿음직스럽지도 안전하지도 않아요.

예상하셨겠지만 임신중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낙태죄’ 폐지 이후 4년이 흘렀지만, 입법을 포함해 임신중지에 대한 모든 것은 여전히 공백 상태로 남아있어요.

김한솔·박하얀 기자는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임신중지가 보건의료서비스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기사 2회에 걸쳐 조명합니다. 오늘은 임신중지 시술을 제공하는 의사들의 고민을 담은 1회를 소개할게요.

임신중지 문제의 주요 당사자 중 하나인 의료진이 겪는 어려움과 그로 인해 위협받는 여성의 건강권 문제를 구체적으로 짚어낸 기사입니다. 약 7분 분량이에요.

☑️ '낙태죄' 폐지 후 4년, 임신중지는 보편적 보건의료서비스로 자리 잡지 못했다.

☑️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임신중지는 시술 비용이 병원마다 들쭉날쭉하다.

☑️ 임신중지에 대한 교육 과정과 가이드라인이 없어 시술과 관련된 고민과 판단, 책임은 의사 개인이 온전히 지고 있다.

☑️ 정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의 영역에서 다뤄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 4년, ‘안전한 임신중지’ 아직도 없다

2023.03.06. 김한솔·박하얀 기자

‘낙태죄’가 폐지된 지 곧 4년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낙태죄를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임신중지는 범죄 굴레를 벗었지만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임신중지를 ‘어디서, 어떻게, 얼마에’ 할 수 있는지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구하는 주요 통로는 여전히 인터넷 검색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은 들쭉날쭉이고,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인 유산유도제도 국내에선 정식으로 구할 수 없다. 형법·모자보건법 등 관련법 개정도 안됐다.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정부는 ‘입법 공백’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다. 임신중지에 관한 의료적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현장의 의료진은 ‘모든 것을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임신중지는 보편적인 건강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임신중지가 보건의료서비스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2회에 걸쳐 조명했다. 1회에는 임신중지 시술을 제공하는 의사들의 고민을 담았다. 2회는 국가의 필요에 좌우된 여성의 건강권, 임신중지 관련 공적 정보체계 부재, 유산유도제 미도입 등의 문제를 짚었다.

임신중지 시술에 쓰이는 의료기구.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이 지난달 8일 질 모형과 기구를 들고 기자에게 시술법을 설명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임신중지의 적정 비용은 얼마일까?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은 지난해 여름 개원을 준비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임신중지 시술은 건강보험(건보)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다. 환자가 전액을 부담한다는 뜻이다. 시술비는 병원마다 다르다. “비급여 수가는 병원이 각자 정해요. 페이닥터로 있을 때는 신경을 안 썼죠.” 그런데 병원을 직접 운영하려면 시술비를 정해야 했다. “진짜 고민됐어요. ‘이렇게 임의로 가격을 정한다고?’ 혼란스러웠죠. 원가에 기기 비용, 인건비 등을 고려하고 특히 주변 병원 시세를 감안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어요.” 이혜연 삼성봄그린산부인과의원 원장도 개원을 준비하며 같은 고민을 했다. “비싸게 받자니 돈 벌려고 하는 것 같고, 너무 싸게 하자니 그것도 좀 그렇고…. 보통 비급여 가격은 주변 병원을 봐서 정해요. 주변보다 너무 낮거나 높지 않게. 그래서 다 비슷해져요.”

2023년 현재 임신중지 평균 비용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비급여인데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없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 ‘임신중절 비용’을 검색해 봤다. 서울을 기준으로 ‘7주 70만원, 8주 80만원’ 등 임신 주수에 따라 달리 광고하는 곳이 많았다. 이 원장은 말했다. “보통 임신인 줄 모르고 오는 분들은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요. 그럼 초음파로 처음 볼 때 주수를 추정하죠. 크기가 1~2㎜만 달라져도 주수는 바뀌어요. 그런데 7주6일은 70만원이고 8주1일은 80만원? 7주6일은 70만원만큼 위험하고, 8주1일은 80만원만큼 위험할 것 같아요? 그렇게 차이 없거든요. 주수가 늘수록 조금 더 위험할 수는 있어요. 그렇다고 10만원씩 올라가는 건 이상해요. 누군가가 그렇게 하니까 다들 그렇게 하기 시작한 건데, 이상하죠.”

최 원장도 같은 의견이다. “임신 주수에 따라 위험률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건보 적용되는 수술도 8주, 12주, 16주, 이런 식으로 수가가 올라가요. 그래도 임신 초기에 일주일 지났다고 10만원씩 올리는 건 비합리적이에요. 초기에는 술기(수술법)나 시간적 비용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없거든요.”

김새롬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암 수술을 누구는 200만원, 누구는 2500만원에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받아들일 것”이라며 “임신중지는 병원마다 가격을 달리 할 수 있고, 환자는 협상력이 없어서 내라는 대로 내거나 (돈이 없으면) 시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덕기 기자

고민도 판단도 의사 몫…여전한 부담

대학병원 의사들의 고민 지점은 개원의와 약간 다르다. 오정원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임신중지 시술을 하고 있다. 병원에는 아직 임신중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고, 병원 내 논의도 없었던 탓이다. 임신 몇 주까지 시술이 가능한지, 시술 전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이렇다 할 지침이 없다. 고민과 판단, 책임까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하나하나가 고민이에요. 보통 의료시술 전에 일정한 양식에 따른 설명문이 포함된 동의서를 받도록 돼 있어요. 하지만 임신중지는 병원에 공식적인 동의서 양식이 없어요. 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한 동의서를 임의로 만들어 서명을 받고 있어요. 충분한 설명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의료진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임신중지는 아직 병원, 학회의 ‘컨센서스’가 없기 때문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공의나 간호사 등에게는 참여 의사를 확인하곤 한다. “그분들이 이 의료 행위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설명을 하고, 혹시 원치 않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요. 아직까지 안 하고 싶다고 한 분들은 없었어요.”

김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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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기자는 미국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1998~2004) 얘기를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봤는데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고 했어요.

주인공 사만다와 미란다는 뉴욕의 한 터널을 지납니다. 늘 그랬듯 수다를 떨면서요. 대화의 주제는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입니다. 2023년의 한국 드라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소재지만, 20년 전의 미국 드라마는 자연스레 흘러갔습니다. 김 기자는 “신기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한국에선 이제 임신중지가 죄가 아니지만, 드라마에 태연하게 등장할 만큼 보편적인 의료 서비스도 아닙니다. 엄연한 현실이자 권리인 임신중지를 온 힘 다해 ‘못 본 체’하는 이들이 만든 공백이죠.

김 기자는 “실제 의료 현장에선 임신중지는 이미 찬반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라는 실무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사실 비범죄화 이전부터 임신중지 시술은 병원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온 것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적 가이드라인이 전무하지만, 그 필요성에 대해선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대체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입법 공백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기엔, 법 개정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프진 같은 유산유도제의 도입이나, 임신중지 상담을 의사 국가시험에 포함시키는 방법처럼요.”

김 기자는 “지난해 말 미프진 도입이 무산됐다는 기사를 읽고 좀 더 이야기해볼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준비한 기획”이라면서 “입법 공백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김 기자는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세대별 혹은 개인별로 임신중지 당사자의 다양한 경험을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싶다고 합니다. 임신중지 경험의 복잡함을 복잡한 그대로 그려낼 수 있는, 기존과는 다른 문법의 기사를 써보고 싶다고 했어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도저히 '못본 체'할 수 없는 생생한 말과 삶들이 수다처럼 쏟아지길 바라요.

🔗 임신중지 위해 목숨 건 시대

미국에서 임신중지가 불법이던 1960년대 결성돼 1만2000명가량의 여성들에게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을 제공한 단체 ‘제인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 <콜 제인> 리뷰입니다. 임신중지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만 했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자, 지난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폐기 이후 어쩌면 다시 현실이 된 이야기입니다.

🔗 먹는 임신중단약 ‘미프진’, 국내 도입 무산됐다

지난해 말 먹는 임신중단약으로 알려진 ‘미프진’의 국내 도입이 업체의 허가 신청 자진 취하로 무산됐음을 전한 기사입니다. 오늘 소개한 기획 기사의 출발점이 되었죠. 임신 중단을 목적으로 한 미프진 처방이 합법화된 곳은 현재 전 세계 70개국 이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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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의 이야기

📬 지난 3월3일 점선면Lite <대한민국 진짜 지방시는 죽나>편에 보내주신 의견이에요.

"공공보건의료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저에게는, 서울시에 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이라는 인간의 가장 존엄한 가치를 다루는 분야이다보니 지역소멸, 격차라는 단어가 크게 다가옵니다. 갑작스러운 중증질환, 응급상황이 발생했을때 이는 더 심각해집니다. 응급의료권역을 설정할때 흔히 주진료권을 거주지 반경 10km-30km, 이동거리 30분정도로 계산합니다. 급성심뇌질환 발생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송 및 처치까지 30, 90분 기준을 적용하구요! 서울에서는 이런 선진국과의 격차를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지방은 어떨까요? 아찔합니다. 단순히 교통인프라가 좋아진다고 개선되는문제가 아닌게, 진료잘하는 병원들도 인구수 단위를 기준으로 진료권 분석을 하여 설립되기 때문에 인구가 소멸해가는 지방은 점점 인프라가 들어서기 힘든 여건이 되어버리죠 해결방안을 찾기위해 저도 늘 고민하지만 쉽지않은 문제같습니다."(가연님)

📝 저희 점선면팀도 관심 많이 기울이는 문제예요! 지난 2월7일 점선면Lite 첫 회 <3억원에도 오지 않는 의사>편에서 관련 기사를 소개한 적 있습니다. 고액 연봉을 내걸고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경상남도 산청군의 이야기였어요.

얼마 전 정재훈 가천대 의과대학 교수가 쓴 글도 SNS에서 많이 공유된 것 같더라고요. 공공의료·필수의료의 위기와 '의대 블랙홀(인재들이 의대로 쏠리는 현상)' 문제를 두고 의대 정원 확대 등 현재 거론되는 해법은 소용없다는 내용이었어요. 정 교수는 저출생으로 현재 이미 인구당 의사 수는 자연 증가하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고령화로 의료수요가 늘기 때문에 일반 임상의사의 높은 기대소득과 고용안정성은 유지될 것이란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 가연님 외에도 많은 분들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남겨주셨어요. 특히 후속 기사·레터를 제안하신 내용은 앞으로 취재 활동에 참고하기 위해 경향신문 담당 기자들에게 공유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지역 뮤지션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연장으로 지역에 남아있는 클럽(뮤지션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어떤 클럽들이 버티고 있는지, 지역 뮤지션을 지원하는 창제작 지원사업의 현실은 어떠한지, 지역 축제에서 지역 뮤지션을 대하는 방식은 어떠한지도 다뤄주셨으면 해요."(H씨님)

"수도권에 살고 있어 저도 모르게 수도권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았나봐요. 너무 당연한건데 대구의 뮤지션이라는 자체가 새삼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지방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상황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됐어요. 여성 뮤지션을 찾기 어려운가요? 그 문제에 대한 후속기사도 기대해요."(익명의 독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