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도 참 이상합니다. 밥에서 쌀이 누락되거나 옷에서 실이 누락되는 일은 없는데, 아파트에선 철근이 누락됐어요.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쌀 없이 밥 짓는 레시피나, 실 없이 옷 짓는 방법은 없어도 철근 없이 아파트를 짓는 설계도는 있기 때문이에요. 아파트는 ①설계 ②시공 ③감리의 과정을 거쳐 지어집니다. 검단 아파트를 비롯한 문제의 '철근 누락'은 ①②③ 전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앞서 국토부는 검단 아파트 사고 원인을 분석하며 '설계·시공·감리 전 과정이 총체적으로 문제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함께 읽은 기사에서는 ②시공과 ③감리의 문제를 주로 다뤘는데요, ①설계 과정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들여다본 후 오늘 점선면Lite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지난 4월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검단 아파트는 LH가 발주하고 GS건설이 시공한 곳이었어요. 사고 직후 책임 공방이 오갔습니다. 처음 GS건설은 "설계대로 했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철근 누락의 책임이 시공 아닌 설계에 있다는 말이었어요. 이후 사고 원인을 조사해보니, 실제 설계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물론 시공 단계에서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설계도가 주차장 전체 기둥 중 절반만 보강 철근을 세우도록 작성된 거예요. 구조 설계상 높은 하중을 견디려면 모든 기둥에 보강 철근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요. 그런데 이번에 철근 누락이 밝혀진 다른 LH 아파트도 설계도에서 이미 보강 철근이 빠져있었던 경우가 다수 밝혀졌습니다. 15곳 중 무려 10곳에서 설계 문제가 있었죠. 철근을 빠뜨리는 설계도라니. 이런 문제는 왜 발생하는 걸까요? 설계 과정에는 건물이 받는 하중을 고려해 안전한 골조를 계산하는 '구조 설계'가 꼭 필요합니다. 구조 설계 단계에서 오류가 생기거나 그 값이 설계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때, 당연히 있어야 할 철근을 빼먹은 부실 설계도가 만들어지게 되죠. 누가 설계를 했길래 이런 문제를 만들까요? 한 민간 건설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해요. "민간 건설사는 입찰을 해서 설계사를 채택하지만 LH의 경우 퇴직자들이 넘어간 소수 회사 중 극히 일부가 무량판 설계를 사실상 독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량판 설계는 특히 세심한 구조 설계가 필요한데, 그럴 실력이 부족한 실무자들이 일을 맡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이야깁니다. 윤지원 기자가 철근 누락이 확인된 LH 아파트 15곳 중 13곳의 LH 퇴직자가 근무하는 회사가 맡았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으니, 한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