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블루스크린 사태와 자동차와 말 : ‘수동화’인가 ‘자동화’인가?

인스피아

🎓블루스크린 사태와 자동차와 말 : ‘수동화’인가 ‘자동화’인가?

25분 2024.08.07

블루스크린 운전 자율주행 말 기술

블루스크린 사태와 자동차와 말 : ‘수동화’인가 ‘자동화’인가?

Why We Drive?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32), 2024.8.7,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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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블루스크린, 운전, 자율주행, 말, 기술

1.머리말
2.‘덜 운전하기’의 시대 : 서먹한 자동차와 위험
3.“모든 쥐는 죽는다. 하지만 모든 쥐가 사는 건 아니다” : 효능감
4.말에서 자동차로의 발전? : 기수에서 운전자로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지난달 19일, 전세계적인 [블루스크린 사태]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총 피해 규모만 무려 1조 4000억원대로 추산된다고 하는데요.

동네 마트부터 시작해 은행, 일반 기업, 항공사, 방송사, 병원 응급실까지 완전히 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보안 프로그램 충돌로 인한 오류였다고 하는데요(링크). SNS에는 손으로 직접 쓴 비행기 티켓, 먹통이 된 채 블루스크린을 띄우고 있는 마트 키오스크 등의 사진이 올랐습니다. 사이버 보안 전문가인 트로이 헌트는 이번 사태에 대해 “Y2K 때 우리가 우려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일어났다”고 평하기도 했죠.

이 사태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겼는데요. 우리의 편리한 일상이 상상 이상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에 [의존]하고 있었고,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결성과 자동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위험성도 나란히 커질 것이라는 것도요.(링크)

지난달 19일 회의실에서 모든 참가자의 화면에 일시에 블루스크린이 뜨자 허탈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왼쪽) 시스템이 마비되자 미국의 방송사 KRCR의 기상캐스터 프레스턴 도니언은 직접 지도를 종이에 그려 일기예보를 진행했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 X(링크), KRCR

이런 난리통 안에서도 개인적으로 왠지모르게 인상 깊었던 장면은, 손으로 직직 그린 어설픈 기상예보 배경으로 방송을 진행한 한 미국 기상캐스터 에 대한 것이었습니다.(링크)

평소 그는 ‘일을 익히기’ 위해 캘리포니아 지도를 지갑에 넣어서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방송 시스템이 고장나서 지도를 컴퓨터로 띄울 수 없게 되자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컴퓨터가 없다면, 그냥 그리면 되겠네!’

그는 그래서 커다란 종이에 직접 매직펜으로 지도를 그렸습니다. 많이 서투른 그림이었지만 사람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죠.

저는 이런 반응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의 어설픈 도전이 우리가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잃어버려온 무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짚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고요.

이어 저는 일련의 일들을 바라보며, 문득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일단 ‘완벽하게 안전하고 100% 문제 없는’ 자동화가 가능한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평소 익숙하게 쓰고 있는 ‘자동화’라는 표현이 과연 적합한지 궁금했고요.

어쩌면 ‘나’의 관점에서는 - 무언가에 의존하게 된다는 의미의 ‘수동화(受動化)’ 쪽이 더 상황을 잘 표현하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무언가가 내 중요한 일을 대신해준다면, 나는 덜 행동하고 덜 생각하고 덜 숙련되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물론 우리가 하루 아침에 기술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살자!라고 외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처럼 - 아무 문제 없었던 것처럼 살자고 할 수도 없죠.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우리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기술과 어떻게 관계맺을 수 있을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운전하는 철학자>(매슈 크로포드)와 <말의 마지막 노래>(울리히 라르프)를 지팡이 삼아 운전이라는 활동, 그리고 기술과의 관계맺기에 대해 해찰해볼까 합니다.

【2.‘덜 운전하기’의 시대 : 서먹한 자동차와 위험】

“새로운 기능과 꾸준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자동차의 명백한 개선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차를 사소한 버그나 결함에 취약한 스마트폰처럼 만들 수도 있다. 웹사이트가 다운되거나 휴대폰을 재부팅하는 일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만약 운전 중인 차량의 컴퓨터가 다운되거나 재부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 에드워드 니더마이어, <루디크러스>

"우리는 운전대 앞에서 워낙 주의가 산만해서, 이미 자기 차가 자율주행차인듯 운전하고 있다...일차적이고 치명적인 사건은 1990년대부터 자동차가 몰고 다니기 재미 없는 물건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지루하다는 뜻이다" - 매슈 크로퍼드, <운전하는 철학자>

연구자님은 ‘운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운전을 직접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분도 계실테고, 운전을 거의 안하시거나 면허가 없는 분도 계실텐데요.

운전은 때로 위험하고 힘들긴 하지만 ‘드라이빙’이 취미가 될 수도 있듯, 운전이란 활동은 단순히 이동을 위한 것만은 아니고요.

설령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동차를 타거나 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골목을 살피고요. 자전거, 새나 고양이 등 작은 동물, 오토바이, 자동차와 함께 거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운전이 꼭 운전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죠.

그리고 이런 운전은 안전 등과 관련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활동이면서도 근래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링크1 링크2)에서 우리가 한번쯤 곰곰 살펴볼만한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것을 모두 다 기계에게 맡겨도 될지,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만약 이번 블루스크린 건과 연관하여 생각해본다면 - 갑자기 주행 시스템이 해킹 당하거나 고장나면 어떡하지? 라는 의문도 가능하고요.1) 우리는 운전자로서든 승객으로서든 기계에 일체의 ‘운전’을 맡기고 사람들은 안락하게 살 수 있을까요? 나아가 그런 ‘운전 안하기(혹은 덜하기)’의 상태가 모두에게 도움이 될까요?

‘철학자이자 정비공’인 매슈 크로퍼드가 쓴 책 <운전하는 철학자Why We Drive>의 부제는 ‘운전이 어떻게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입니다.

저자는 정치철학자이면서도 학부는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자동차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폭스바겐 등 많은 자동차에 대한 실험을 진행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15살부터 운전과 자동차 정비를 시작해, 올드카를 직접 개조해서 타고 다니고 심지어 자신이 탈 차를 직접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할 정도로 자동차에 진심인 사람인데요.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2023)에선 위성이 해킹당해 인터넷, 통신이 모두 두절되고 주행시스템 오류로 선박이 갑자기 해변으로 밀려들어오거나 비행기들이 대거 추락하는 참사가 일어나는데요. 주인공 가족이 차를 직접 운전해 다른 도시로 대피하려던 중 테슬라 자율주행차들이 시스템 오류로 대거 사고가 발생해 엉켜있는 장면. 해당 장면이 포함된 티저에 일론 머스크가 직접 댓글을 달기도 했죠. (왼쪽·X링크) 매슈 크로퍼드가 쓴 책 <운전하는 철학자> 표지 / 넷플릭스, 시공사

이런 사람이 ‘운전’에 대한 글을 썼다니, 자동차 덕후의 열렬한 고백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 의외로 이 책은 덕후의 자동차 예찬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좋은 자동차/운전이란 무엇인가’를 꼼꼼하게 따지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선 깐깐하게 고개를 젓는 종류의 사람이죠.

제가 이 책을 흥미롭게 읽고 또 편지에도 언젠가 꼭 써봐야겠다고 벼른 이유는, 그가 기술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과 태도가 오늘날 운전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기술을 바라보고 관계맺어야 할지에 대한 귀중한 해찰거리를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는 지난 수십년 간 자동차의 디자인은 한사코 운전자와 자동차 사이의 연결된 감각을 줄이고, ‘덜 운전하는’ 방향(Driveless Car)으로 바뀌어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틀어 ‘자율주행 및 점차 운전자의 수고(숙련,감각,지식,조작,주체성...)를 덜어주는 디자인’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는데요.

그가 ‘덜 운전하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아볼 수 있습니다.

1.감각의 상실 : 자동차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숙련, 대처 능력

2.효능감 : 자율성, 뿌듯함, 도전

우선, 감각의 상실에 대해 말해봅니다.

저자에 따르면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오늘날의 전기기능을 덧붙인 자동차들은 점차 우리와 기계, 바깥세계와 연결된 감각 - 나의 행동이 어떻게 자동차에 그리고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신호와 ‘감각’을 없앤다고 강조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지만, 점차 게임 속 세계에서 운전을 하는 감각과 크게 차이가 없어진다는 건데요.

실제로 수십년 전의 올드카들에 비해 오늘날 등장하는 자동차들은 점차 우리가 굳이 위험하고 커다란 철덩어리(성인 평균 몸무게의 약 30배정도고 우리가 달리는 속도보다 3~40배 빠른)를 운전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방식, ‘덜 운전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는 거죠.2)

도로 주행에 도움이 되는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도로주행 연습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하기도 하고요. 현실의 주행 경험은 점점 게임과 큰 차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왼쪽) 수동변속기가 달려있는 자동차. 과거 NYT에는 수동변속기 차량의 장점을 말하는 독자들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링크) 많은 장점이 있는데, 운전을 하는 동안 문자를 보낼 수 없으며 감각에 더 집중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점, "나쁜 놈badass"이 된 것 같은 통쾌한 기분 등이요. / GettyImage

이런 디자인 방식은 우리에게 더 안전감이라든지 안락함을 주긴 했지만, 오히려 저자는 자동차를 끄는 우리의 ‘감각’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으로 인해 위험은 더 커졌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우리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죠.

아이스하키를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스틱을 사용하는 이유는 퍽을 조작하려는 것이지만 퍽의 현 상태를 감지하려는 것이기도 하다(예를 들어 퍽이 미끄러지고 있는지 아니면 구르고 있는지). 프로 선수에게 스틱은 의수와 비슷하다 […] 타고난 신체와 구분할 수 없어진다 […] 우리가 무엇을 인지하는지는 무엇을 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마치 우리가 자기 손을 사용할 때처럼 말이다. 또는 1963년형 폭스바겐을 사용할 때라든가.
프로 하키선수의 주의는 스틱을 향하지 않는다. 스틱을 <통해서> 퍽을 향한다. 마치 피아노 연주자의 주의가 손가락을 향하지도, 심지어는 피아노의 건반을 향하지도 않고, 자신이 연주하는 선율을 향하듯이. 실제 ‘운전자의 자동차’는 이와 유사한 사라지기 행위를 완수해, 정보와 의도를 전달하는 투명한 양방향 전도체가 된다. 하지만 이런 이상과, 운전자와 도로 사이에 훨씬 많은 전자적인 중재(=전자 클러치, 후방카메라 등)의 층위를 끌어들이려는 흐름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재현의 층위를 개입시켜 행위와 지각 간의 자연스러운 유대를 약화시켰다.

-매슈 크로퍼드, <운전하는 철학자>(이하 동일)

조금 알쏭달쏭할 수 있습나다만, 예를 들면 옛날에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을 때 자동차가 덜덜거리다가 푸슝...하면 깜짝 놀라고, 직감적으로 ‘뭔가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은 클러치가 삐걱거리거나, 페달을 밟을 때도요. 저자는 이런 물리적 감각에 대해 ‘인지의 확장’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대부분의 장치들이 전자화되면서 운전자가 물리적인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점차 인위적인 전자 신호로 대체되고 있다는 거죠.

이런 ‘전자화’를 거친 정보는 두 가지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데, 우리가 점차 현실 대신 신호 자체에 관심을 두면서 급작스러운 예외 상황에 대처하는 감을 잃게된다는 것이고요. 또한 과소 정보의 문제입니다.3)

캐스너등은 “경보 시스템의 의도치 않은 결과는 일부 운전자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1차 과제를 경보음에 귀를 기울이는 2차 과제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1차-2차 과제의 전도”라고 하는데 고도로 자동화된 비행기 조종사들에게는 익숙한 문제다. 가령 이들은 잠재의식적으로 올바른 고도를 유지하는 과제보다는 고도 경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여기게 될 수 있는데, 알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이는 명백하게 문제가 된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대신 ‘삑삑’ 거릴테니 오히려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삑삑 에만 신경을 쓴다는 거죠. 그럴 경우 시스템이 오작동할 경우엔 대처할 수가 없겠고요.

또한 저자는 우리는 얼핏 전자화를 통해 ‘더 많은, 풍부한 정보’를 얻게 된 것 같아보이지만 오히려 전자장치를 통하면서 우리가 상황에 대해 얻는 정보의 밀도, 다채로움은 ‘뚝 떨어진다’고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운전 입력사항을 변조하는 견인력 제어장치, 전자식 주행 안전장치, 잠김 방지 브레이크뿐만 아니라 전자식 스로틀, 전자식 브레이크, 전자보조식 조항장치가 있다. 종종 이는 운전자에게 도달하는 정보의 양이 터무니없이 적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의도와 행위 사이에서 거름 장치 역할을 한다. 게다가 기계적인 ‘과도 상태’에 대한 지나치게 열성적인 제동 때문에 자동차는 육감과 경험보다는 다른 수단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 도로와의 관계에서 자동차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직접 전달하는 일이 줄어들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상징(단어와 벨소리)으로 <재현되었다> [...] (하지만) 로드니 브룩스가 1991년의 고전적인 논문에서 밝혔듯 “세상은 그 자체로 최고의 모델이다”

이 책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느낌표가 떠올랐던 대목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날로그 vs. 디지털’의 문제로 생각하는 게, 단순히 ‘레트로 vs. 최신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다채로운 정보 감각 vs. 단순화되고 지루하게 과소화된 정보’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겁니다.4)

더 큰 문제는, 과소정보와 ‘덜 운전하기’가 나아가 우리가 비상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율주행이 제대로 작동할수록 우리는 운전에 신경을 덜 쓰게 되니까요.

* 운전자가 자신의 차량을 제어하는 고리 밖에 있을 때는 졸음이 밀려오고 경계심이 늦춰지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돌발 상황에 반응하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는 비행기에서보다는 자동차에서 더 심각한 문제다. 도로는 하늘에 비해 훨씬 예측 불가능한 장소이고 […] 자동차에서는 1초 미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신속한 온보딩’ 문제라고 한다 […] 자동화에 의한 제어가 완벽할수록 우리는 더 오랫동안 다른 데 주의를 쏟는 경향이 있다. 휴대 전화에서 얼마나 자주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까?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필요하면 운전에 다시 개입해 적극적인 제어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울까?

* 니콜라스 카(<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쓴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는 <유리감옥>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 정보과부하의 부작용을 안다. 그런데 정보의 과소부하 역시 똑같이 인간을 약하게 만들 수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는 인간에게 일이 너무 쉬워지는 것이 어떻게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적요인 연구를 인용한다. 우리의 “주의 용량이(…) 정신적인 작업량 감소에 맞춰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운전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동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이상하게 운전을 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죠.

때문에 운전이란, ‘거리 위의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활동’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을텐데요.

만약 ‘99%의 평상시’에는 제대로 작동하지만, 비상상황에서 제대로 섬세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기계라고 한다면 거기에 나의 삶을 온전히 맡겨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운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대부분의 일에서, 정말 중요한 1%의 일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 판단을 필요로 합니다)

1) 연결성의 문제 역시 시스템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자율주행자동차도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최근까지도 자율주행차량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만 만 오늘 레터에서는 자율주행차량이 실제로 현시점에서 얼마나 기술적으로 안전한지에 대해 입증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므로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다음의 기사들을 참고해주세요.(링크1 링크2 링크3)

2) 우리의 감각은 위험성을 지각하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데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오늘날 점차 대형화되고 외부와 차단되는 형태의 차체는 운전자는 보호하지만 보행자, 외부에 주는 위협감은 줄어들게 할 수 있죠. 이와 관련해 존 무어John Muir는 <폭스바겐을 어떻게 살아있게 할 것인가?How to keep Volkswagen Alive>(링크)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치 아즈텍 제물처럼 자동차 앞에 끈으로 묶여서 충돌시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될 상태로 운전을 한다면 사고가 엄청 줄어들 것이다.”

3) 저는 어쩌면 최근 장년층 가운데 급발진 의심 사고가 많이 나는 것과도 이 문제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점차 차량들이 전자화되면서 장년층의 '숙련된 운전 기술'은 다른 종류의 신차를 몰 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4)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예전에 디자인 관련 서적을 읽다가 접했던 ‘스큐어모피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링크) = 디지털 환경에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물을 구현하는 디자인 경향. 예를 들어 카메라 앱에 '필름 카메라' 모양을 넣고 물리 버튼을 모방한 버튼과 '찰칵' 소리를 넣는 것, 음악 앱에 '아날로그 라디오 주파수 조절 아이콘'을 추가하는 등.) 만약 아날로그의 신호를 모방해야지만 디지털에 구현이 가능하다면,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진화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가성비 있는 열화버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디지털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느쪽이 우리에게 진짜 진보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1020세대의 '레트로/아날로그 선호'를 통상 그래왔듯 트렌드 차원에서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쪽이 좀 더 본질적인 설명에 가깝지 않은가,하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나저나 이 챕터는 재밌는 해찰거리가 많아, 줄였는데도 각주가 너무 길어졌네요ㅠ...양해 부탁드립니다)

【3.모든 쥐는 죽는다. 하지만 모든 쥐가 사는 건 아니다 : 효용감】

이상, 우리는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운전 못하는 사람보다 기계가 낫지 않나요?” “사람이 운전해도 사고가 나는데요...”

이에 대해, 위에서 말한 내용이라든지 이것저것 기술적인 복잡한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 한 가지 단순한 반박이 가능한데,

제가 멍청하다고 해서 똑똑한 남에게 제 인생의 운전대를 완전히 맡기지 않듯 - 그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어떤 일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기는 것은 인간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직접’하는 것에는 꼭 실용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서울에서 대전까지 이동한다고 할 때, 무엇을 타고 갈지(마차, KTX, 경운기, 자전거, 오토바이...) 혹은 걸어갈지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경험과 만나게 되기도 하고요.

어려운 도전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때가 많지만, 그것이 도전적이고 어려운 만큼 한 사람의 삶에 독특한 경험과 깨우침의 결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계로 짠 스웨터나 가구를 싼 값에 얻을 수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뜨개질을 하거나, 목공을 취미로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취미의 차원에서 이런 ‘직접하기’의 경험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일상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도전적인 일을 직접 해내고 숙련의 감각을 지켜가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의 질, 경험의 깊이, 효능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패스트 카: 슈퍼카를 이길 차fastest car>(2019·링크)는 최신 슈퍼카와 ‘고도로 개조된 올드카’(Sleeper car)를 타고 경주하는 내용을 담은 시리즈입니다 (왼쪽) 차고에서 자신이 개조하고 있는 있는 자동차를 소개하는 매슈 크로퍼드의 모습(링크) / 넷플릭스, 유튜브 갈무리

저자는 심지어 차를 직접 만드는 수준이기도 하고요.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호모 파베르(Homo Faber·도구의 사람), 호모 모토(Homo Moto·운전하는 사람)으로서의 본능이 저자가 자신의 삶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사는 것은 아니다.” […] 육체적인 상해의 위협이 거의 전무한 부르주아 사회에서 인간들이 종종 느끼는 들끓는 불만, 심지어는 자기 혐오를 간과하기 힘들다. 이 <질문>은 던지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없다. 간단히 말해서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기겁했다가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자신의 기술을 신뢰하는 것에는 어떤 강장제 같은 효과가 있다. 그것은 마음을 집중시킨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깨끗이 치워버린다. 그리고 상황이 끝날 때면 살아 있음에 의기양양해진다. 자신이 지구상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정당하다는 기분에 잠시나마 휩싸인다.
[...] 자동차를 직접 만들어탄다는 이상은 조금 극단적이다. 자동차 속으로 그렇게까지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볼트와 너트의 세계 속으로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은 그 경험에서 유용한 관점을 얻는다. 자동차를 직접 만들어 탄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노동을 자동차에 뒤섞음으로써 자동차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에 대한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정도로 무언가에 진심일 ‘필요’는 없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경험이 그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점차 기술이 나 대신 모든 것을 다 하고, 심지어 숙련된 기술마저 내겐 필요없고 단지 빌려 쓰기만 하면 되고 소비자/이용자가 될 뿐이라고 한다면 -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더 파악하고, 자기 손에 장악하고, 알고, 심화해서 이해하고, 커스텀하고, 만드는 경험 - 효용감을 얻는 주체적이고, 뿌듯한 경험을 얻을 수 없습니다.

* 비틀(1963년형)을 모는 방법을 배운 직후 나는 모로 운전하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괜찮은 날이면 40마력까지 나오는 1200cc모터로는 직선차로 가속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스윙 액슬’식 리어서스펜션이 있는 상황에서는, 코너를 돌면서 처음에 가지고 있던 미약한 견인력마저 상실하는 지점에 이르러 무게가 실리지 않으면 안쪽 뒷바퀴가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재미가 시작된다. 코너를 빠르게(여기서 말하는 ‘빠르게’는 순전히 주관적인 용법이다) 달리면서 조향바퀴를 갑자기 젖히는 동시에 스로틀을 해제해 앞으로 조금 하중이동을 하면 뒤쪽이 옆으로 틀어지게 된다. 이제 조향에 신경쓰면서 슬라이드를 하면 시속 32킬로미터에서 액션히어로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스윙 액슬과 후방장착형 엔진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이 기이한 핸들링 때문에 랄프 네이더는 쉐보레 코베어가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이런 차는 “어떤 속도에서든 재미있기도” 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 가까운 미래의 (자율주행형) 포르쉐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뉘르부르크링에서 미하엘 슈마허*가 최상의 한 바퀴를 돌면서 입력했던 스로틀, 조향, 브레이킹의 정확한 재현을 즐길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라는 (포르쉐) 최고경영자의 공개 연설문을 접하게 되었다 […] 이런 시각에서 고성능 자동차는 본질적으로 놀이공원의 놀이기구가 된다. 아주 비싼 놀이기구. 우리를 대신해 ‘경험을 창조’하고자 하는 자동차는 […] 우리의 변덕스러운 유흥비를 놓고 경쟁을 벌이리라. 소비자, 특히 젊은 소비자들이 ‘아날로그’와 실체가 있는 모든 것의 즐거움을 재발견하고 있는 시기에 이는 나쁜 비즈니스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에세이에) 그렇게 썼다.

*미하일 슈마허(1969~) = 독일의 전설적인 전 F1 드라이버.

이런 ‘뿌듯함’과 ‘도전정신’은 단지 사치스러운 감정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뇌의 활성화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요.

2019년 쥐 실험(크로퍼드&램버트·링크)에서, 운전을 직접 하는 등 ‘자극이 많은 환경’을 만끽한 쥐들은 표준적인 실험실 폐쇄 환경에 갇힌 쥐에 비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끈질기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적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직접 운전한 쥐들은 탑승만 하는 쥐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낮았다고 하죠.

미니카를 운전하는 대단한 쥐. 2019년 리치몬드대학교 심리학과 켈리 램퍼트 교수 등은 시리얼 조각을 주는 훈련을 통해 쥐가 직접 운전하도록 한 실험을 했는데요. 운전은 쥐의 뇌를 활성화시키고 스트레스를 낮췄다고 합니다. (왼쪽·영상) 1939년 뉴욕의 세계박람회. 19세기무렵부터 시작된 박람회에선 거대한 기계 볼거리, 위압적인 진보의 이미지를 뽐내는 방식의 구조물이 많았습니다. / Phys.org, Life(링크)

반면 이런 ‘성취감’ ‘효용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 자신이 무언가를 시도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삶의 의미마저 잃는, 깊은 수치심, 무력감에 빠져들기 쉬운데요.

저자는 독일 사회철학자 권터 안더스(1902~1992)의 에세이를 인용하며 ‘프로메테우스적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언급합니다.

1942년, 권터 안더스는 친구와 함께 테크놀로지 전시회장에 갔다고 하는데요. 거기서 친구는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를 보고 크게 주눅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손이 기계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졌기 때문에 등 뒤로 감추기까지 했다고 하죠.

기계에 대한 복종이라는 기질을 이해하려면 귄터 안더스가 도움이 될 수 있다 [...] 그는 1942년 캘리포니아에서 쓴 일기로 에세이(<프로메테우스적 수치심>)를 시작한다. 그는 친구 ‘T’와 함께 새로운 테크놀로지 전시회에 갔다고 말한다. 안더스는 전시된 새로운 기계보다는 친구를 구경하는 데 더 정신이 팔렸다.

“대단히 복잡한 물건 하나가 작동을 시작하는 순간 그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해졌다. 이보다 더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등뒤로 감췄다. 마치 이 무겁고 품위없고 한물간 도구를 이렇게 정확하고 정교하게 작동하는 일단의 기계들 앞에 가져온 것이 수치스럽다는 듯이(권터 안더스, <프로메테우스적 수치심> 中)”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오늘날엔 아예 수치심을 느낀다는 감각 자체가 무뎌지고 사라져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일체의 ‘수동화(受動化)’는 ‘자동화’라는 이름 하에 ‘편리하고 최첨단의 좋은 것’으로 선전되곤 하니까요.

【4.말에서 자동차로의 발전? : 기수에서 운전자로】

저자가 시종일관 이처럼 ‘덜 운전하기’에 대해 회의적이긴 하지만, 오늘날의 추세를 보았을 때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메우게 되는 것은 그리 머지 않은 미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불과 수십년 후의 우리 자손들은, ‘옛날엔 심지어 직접 사람이 운전을 했대!...’라며 놀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말에서 자동차, 그리고 자율주행차로 바뀌는 것은 - 단순히 ‘탈 것 기술’의 진화 과정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이어 마지막으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하는 <말의 마지막 노래>는 따로 떼어 읽어도 그 자체로 흥미로운 책이지만, <운전하는 철학자>와 연결해 놓았을 때 새로운 작은 빛이 ‘반짝’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의 마지막 노래>는 제목이 곧 내용인데요. 한 역사학자가 20년에 걸쳐 ‘말의 쇠락기(18~19세기)’를 살펴본 역사책입니다.

그래서 얼핏 이 책은 말에 대한 시무룩하고 쓸쓸한 이야기로 가득찬 엘러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오히려 이 책은 다르게 이름을 붙이면 “말의 마지막 불꽃 축제!”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아이러니하게도 수천 년 말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다채로운 문헌과 말과 사람이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 소설, 전쟁에서의 역할, 그림 등이 꽃 피었던 절정기이기도 하죠.

독일 역사학자 울리히 라르프가 쓴 <말의 마지막 노래>. 그는 자신이 실제로 어렸을 적 고향에서 말을 보았던 인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인류가 말을 길들이고 탄 것은 약 6000년 전부터의 유구한 일입니다만, 도시라는 밀집된 공간에서 말을 움직이는 것은 최초였기 때문에 18~19세기 무렵 도시의 교통 체계는 말을 중심으로 개편됩니다. 당시 말 채찍 소리는 도시 '거리소음'의 큰 원인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 까치

이 책을 오늘 레터에서 함께 읽어보기 위해 가져온 이유는, ‘말’이 단순히 탈것이 아니라, 어떻게 인간과 기나긴 역사동안 소통해오고 서로를 길들이고,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는, 말과 사람이 ‘말 따로 사람 따로’ 가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 독특한 역사, 문화를 만들어 왔다는 건데요.

심지어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심지어 인류의 역사를 ‘말 이전기’ ‘말 시기(약 6000년 간)’ ‘말 이후 시기’ 세가지로 나누었다고 하네요.

이 책을 읽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크게 두 가지 꼽을 수 있는데요.

첫째, 이 책 속에서 묘사된 말과 사람의 관계가 매슈 크로포드가 묘사한 자동차와 사람과의 관계와 굉장히 밀접하다는 겁니다.

카를 슈미트는 말을 타는 것은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말타기가 상징적인 행위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훨씬 더 직접적이다. 각기 따로 움직이지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시스템이 생각이라는 긴 도선을 사용하지 않고 신경과 힘줄, 열과 신진대사라는 경로를 통해서 정보를 서로 교류한다. 말 타기는 신체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조종 정보, 즉 감각 정보들 간의 직접적인 교류를 뜻한다. 이것은 안장, 덮개 혹은 맨살을 통해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호흡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맥박이 고동치는 두 신체를 서로 연결해준다. 인간은 함께 춤추고, 부대끼고, 포옹할 때에 말을 탈 때와 비슷한 정보 교류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 인간과 말은 서로의 맥박을 느끼고, 예민함을 감지하고, 땀냄새를 맡는다. 이와 같은 모든 상징과 은유에서 말 타기는 살아있는 두 신체에 대한 표현이다 […] 말타기에서도 순수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울리히 라르프, <말의 마지막 노래>(이하 동일)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자동차와 함께 행동’하듯, 말을 탈 때도 ‘말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죠.

비록 무생물과 생물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매슈 크로포드는 말을 타듯 자신의 자동차를 아끼고 그것과 연결된 감각을 느꼈습니다.

이때 단순히 사람은 말-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교류하고 또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습니다.

‘똑똑한 말 한스Clever Hans’는 20세기 초 간단한 단어를 구사하고 사칙연산을 하는 말로 당시 충격을 주었는데요. 알고보니 한스는 지능이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과의 무의식적인 교감, 눈치보기를 통해 맞춘 것처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맥락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말과 사소한 몸동작들을 통해 긴밀하게 교감을 해왔는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실은 덧셈을 하는 말보다 이쪽이 더 대단할지도요. (왼쪽) 16세기 이후 출간된 말과 관련된 책들을 출간연도별로 모은 서지 서적(Works on horses and equitation,1887·링크)의 한 페이지. 책 제목/작가만 나열했는데도 무려 460여페이지에 달합니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Internet Archive

이어 이처럼 긴 시간동안 사람과 쌓아온 ‘말-인간의 관계’는 다양한 문화적 산물로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꺼운 책의 내용을 모두 다 다룰 순 없겠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마치 말과 사람이 시끌벅적하게 놀고 어울려온 역사의 궁전을 탐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에 대해서 글을 쓰고, 품종마를 어떻게 개량할지 궁리하고,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그림으로 그리고, 경마에 미치고, 18세기 이후 대도심에서는 말의 사체와 분뇨에 치를 떨고, 승마과학을 발달시키고, 은 사람이 말에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말을 어떻게하면 안전하게 길들일지에 대한 수많은 책이 나왔고, 말을 살 때 어떻게하면 사기당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이 한권의 책으로(!) 발간되었으며, 말에 대한 책의 서지만으로 한 권의 책이 되었으며 ‘말 도서관’에는 무려 ‘말과 관련된 책들’이 무려 4만권이나 꽂혔습니다.

아래 내용은 <말의 마지막 노래>의 책장을 넘기다가 입을 떡 벌리고 읽게 된 대목입니다.

* 독일의 출판업자 요한 프리드리히 코타 <말 애호가, 건초용 시렁, 품종개량자, 마의, 궁정 종마소 상관의 일기>라는 긴 제목의 책은 1792년 첫 출간 이후 매년 성 마틴 축일마다 발행되었다 […] 그는 달력으로 독자를 확보한 후에, 말 사육 분야와 관련된 유익한 정보와 이야깃거리뿐만 아니라 세계 유행, 귀족과 전문가의 소식 등을 제공하고 마과학 신간에 관한 일화와 정보로 마무리했다

* 크세노폰의 <승마술에 관하여>라는 책의 첫장은 “말을 사는 법”과 “말을 살 때에 최대한 사기를 당하지 않는 법”에 관한 조언으로 시작한다 [...] <말을 구매할 때에 사기꾼의 사기 수법을 분별하고 사기 당하지 않는 법>(1764)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훌륭한 삽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품질이 떨어지는 말의 물리적 특성과 사기를 치려는 인간들의 도덕성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의심의 해석학>으로 특허를 내도 될 만큼 명쾌한 설명이 돋보이는 책이다.

* 중세 독일의 궁정 서사시인 하르트만 폰 아우에의 <에레크>에서 엘렌 슈트리트마터는 작은 말을 “완벽하고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존재”로 묘사한다. 이 책에서는 [… ] 에니테(말 이름)의 이미지를 무려 500개가 넘는 동사를 이용해서 표현한다 […] 독일의 소설가이자 장교였던 막스 엔스는 말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들을 수집 […] 즉 독일어로 말을 의미하는 단어는 총 63개였다.

말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책들이 존재했다니요! 제가 원체 실용적이고 엉뚱한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저는 이 대목들을 읽으며 조금은 질투가 나기도 했습니다.

일상의 ‘탈 것’ 하나에 대해서만도 이런 섬세한 애정과 독특한 고집, 관심을 담은 엉뚱책들이 쏟아져나온 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삶은 얼마나 그 자체로 재미나고 풍요로웠을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히 말에 대한 향수를 말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 책을 덮고 나면, 옛날 말과 사람이 관계맺었던 방식과 오늘날 우리 주변의 도구 등 기술과 사람이 관계맺는 방식의 차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옛날 말과 함께 살았던 선조들처럼 - 오늘날 우리의 일상, 주변에 있는 각별한 무언가에 대해 어떤 통제력과 고집, 애정, 관심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은 자동차-사람의 관계에서 ‘사람’을 쏙 빼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아무것도 안해도 되지만’ 동시에 무력해집니다.

어쩌면 자동차 말고 다른 거의 모든 일들에 있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더이상 그런 것들에 대해 전혀 관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 그저 자동화된 모든 기계 위에 누워있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돌아가고 어떤 종류의 문화를 만들어나갈 필요도 없다고 하면, 애초에 우리가 굳이 이 번거로운 삶을 사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5.맺음말】

실은 이번 ‘블루스크린 사태’와 관련해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이야깃거리가 있었습니다.

오류로 인해 비행기가 연착되고 숱한 시스템이 마비됐지만 뉴욕 지하철은 멀쩡히 운행되었다는데요. 뉴욕 지하철의 시스템이 너무 낡았기 때문에 애초에 시스템에 연결조차 되어있지 않아서 초유의 블루스크린 사태에도 멀쩡히 운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링크) 사람들은 낡은 것도 때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웃었죠.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 작가 조지 R.R. 마틴은 ‘워드스타4.0’이라는 MS-DOS에서만 돌아가는 구식 워드프로세서를 쓰는 걸로도 유명한데요. 그는 평소 자신의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돼있지 않으니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도 없다며 농담하곤 합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다만 ‘위험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굳이 옛날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있다는 ‘방어적 접근’에는 조금 탐탁찮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냥 내 마음에 든 도구이기 때문에 옛날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율주행 장치를 단 최신식 슈퍼카 대신, 내 고집과 취향에 맞는 1970년대 올드카를 선호할 수도 있듯요.

마지막으로, 오늘 레터를 쓰기 위해 <운전하는 철학자>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하고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왜 기술과의 관계가 꼭 ‘의존적’이기만 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묻는 대목이었습니다.

저도 편지를 다 써갈 즈음엔, 저자의 낯선 물음에 동참해보게 되었습니다.

왜 기술의 발전 방향은 꼭 자동화여야 할까요?

오늘날엔 통상 우리가 더 아기처럼 누워있고, 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더 편하고, 수고와 노력을 하지 않기 위해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최근 챗GPT 등 생성형AI 붐 역시 ‘우리는 더이상 직접 읽고 쓰고 그림 그리지 않아도 돼!’라는 차원에서 주목을 받아 왔고요.

하지만 ‘기계에 진심인’ 매슈 크로퍼드는, 오히려 우리의 경험이 더 복잡해지고, 더 흥미롭고 개성적이고 어렵고 도전적이고 까다로워지기 위해서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통념을 뒤집는 발언이죠.

“물론 우리는 자연환경에서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와 문화적 실천들로 구성된 건조(建造) 환경 역시 우리가 가진 모든 지능을 활용해야 할 정도로 충분히 다채로울 수 있다”-매슈 크로퍼드, <운전하는 철학자>

얼핏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조금 어리둥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실은 이는 먼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말’을 굳이 63가지 단어로 부르고, 말에 대한 쓸모있고 엉뚱한 책을 수만권이나 쓰면서 다채롭고 번거로운 경험과 문화를 만들어온 것을 감안한다면 - 어쩌면, 오히려 이쪽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요.

결국 ‘기술’은 그 자체로 완결된 네모난 덩어리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재미나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발전 방향이, 매슈 크로퍼드의 주장처럼 꼭 굳이 ‘사람’이 쏙 빠진 자동화일 필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안전 차원에서든 꿀잼 차원에서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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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역학이나 물리학이 아니다. 기술은 인간과학이다”-앙드레조르주 오드리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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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속용 급커브길에는 고속으로 달렸을 때 숭고함을 안기는 육체적인 리듬 같은 것이 있다. 나는 한번도 운동을 잘해본 적이 없지만 타고난 우아함으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는 존경심을 느낀다. 하지만 협곡 도로 위에서 스포츠바이크를 타고 있으면 나는 순간 신이 내게 주신 범상함에서 훌쩍 벗어난 기분이 든다. 기계의 힘을 빌려서! 이건 기적이다.”

-매슈 크로퍼드, <운전하는 철학자>

미래의 전자동차를 상상한 1950년대의 광고 / Advertising Archive, via Everett Collection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매슈 크로퍼드, 성원 옮김, 『운전하는 철학자』, 시공사, 2022.

-실은 이번 블루스크린 사태와 관련해 '운전'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 책 속 메시지가 가진 매력이 워낙 대단하고 또 우리 시대에 필요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 다루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운전과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저는 자동차는 커녕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저자가 하는 이야기들을 전혀 무리 없이 흥미롭게 따라가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튼 이 책의 저자는 '기계 덕후이면서도 반기술적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한 위치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톤앤매너로 독창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에 쓰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동차의 '익명성'을 인터넷 공간 소통의 '익명성'에 비유한 대목과 '은둔 고수 차덕후' 콜센터 직원과 전화로 내적 친밀감을 쌓은 사례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한가지 마음에 찜찜하게 남았던 의문은(아무래도 제가 '운전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승객'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보니 더욱 이런 의문이 들었겠지만) - 그는 이기 팝의 노래 의 가사를 인용하며, 우리가 우리 삶의 '수동적인 승객'이 아닌 '주체적인 운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저는 애초부터 승객으로서의 정체성에 만족하는 편이라, 그렇다고 한다면 제가 자율주행 시스템에 몸을 맡기는 것과 버스 운전자(때론 난폭운전이나 졸음 운전을 하기도 하는)에 몸을 맡기는 것 사이의 차이가 무엇일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울리히 라울프, 강영옥 옮김, 『말의 마지막 노래』, 까치, 2019.

-이 책의 영어 제목은 '말에 대한 작별인사Farewell to horses'로, 한국어 번역 제목의 느낌과도 유사합니다. 여튼 이 책은 여러모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었는데요. 실은 이 책이 어떤 뚜렷한 주장이나 논지를 펼쳐가는 종류의 책은 아니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프리즘으로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디언 서평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간결하게 잘 짚고 있습니다.(링크)

에드워드 니더마이어, 이정란 옮김, 『루디크러스』, 빈티지하우스, 2021.

-이 책은 과거 일론 머스크와 관련된 회차 레터에서 다루었던 책입니다.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의 '루디크러스(ludicrous, 터무니없는)'한 성향을 중심으로, 테슬라가 자동차 업계에서 외쳐왔던 '혁신'의 정체에 대해 살펴보고 -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불합리성,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고발하는 책입니다. 이번 레터에서 직접적으로 이 책을 다루진 않았지만, 오늘 다룬 두 권의 책과 함께(특히 매슈 크로퍼드의 책) 읽을 때 오늘날 자동차 업계의 방향에 대해 입체적인 독해가 가능합니다.

【글 속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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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지만, 어쩌면 최적의 기술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200자

🖍글 속 한 문장

“연말을 이집트 카이로에서 보냈다. 처음 간 이 사막의 나라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도로 시스템이었다. 우선 왕복 6차로를 별다른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없이도 뛰면서 건너는 사람들이 흔히 보였다. 당나귀와 말, 낙타가 끄는 마차도 혼란에 한몫했다 [...] 무엇보다 놀라웠던 광경은, 차선의 존재가 무의미할 정도로, 두 개 차로 안에서 세 대의 차가 함께 달리는 모습들이었다 [...] 큰 원인 중 하나는 합승택시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독특한 교통수단은, 차에 빈자리만 있으면 길가 어디서든 승객을 틈틈이 싣는 작은 승합차를 일컫는다. 수시로 차를 세우기 때문에 정체가 이어진다. 그러나 대중교통 인프라가 취약한 이 도시에서는 이만한 운송수단이 없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유재연 작가가 직접 지난해 연말 이집트 카이로에 체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카이로의 깜짝 놀랄만한 '대환장파티 교통'에 대해 쓴 글입니다. 오늘 레터에선 충분히 다루진 못했지만, 매슈 크로퍼드는 '차선을 나눠 쓸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지나치게 경직된 규율은 오히려 비효율, 비자율성을 불러온다는 차원에섭니다.

실은 자율주행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는 '자동차 기술' 외에도 '기계가 오인식하지 않을 수 있을만큼 철저하게 표준화된 거리교통 인프라 및 법규'입니다. 그것을 구축하는 데 드는 세금, 공력 문제 외에도, 그런 환경이 과연 '모든' 경우에 이득일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로봇’이 앉으면 ‘자율주행자동차’다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2000자

🖍글 속 한 문장

“현재 과학계와 기업이 지향하는 자율주행차 개발 방향도 <아이, 로봇> 속 자동차와 유사하다. 자동차가 자신의 차체에 장착한 기기를 이용해 전방 장애물과 교통 신호를 인식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자율주행과 관련해 새로운 발상이 나왔다. 자율주행을 하기 위한 첨단 기술을 차체에 가득 품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동차 운전석에 똑똑한 머리와 사람 같은 신체를 갖춘 로봇을 앉히는 개념이다. 자율주행 기능이 전혀 없는 구식 자동차를 ‘로봇 운전사’가 대리 운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사실상 모든 자동차를 자율주행차로 변신시킬 수 있게 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 6월 일본의 한 연구팀은 기존의 '자율주행자동차'의 통념을 바꾸는 한 기계를 선보였습니다. 통상 자율주행자동차라고 하면, 자동차-기계에 주행 시스템을 탑재하는 방식이었는데 관점을 바꾸어 '어떤 차든 운전하는 로봇'을 만든 것이죠. 이 로봇의 이름은 '무사시'라고 하고요. 이처럼 운전하는 로봇을 만든다면 아무리 낡은 차도 자율주행자동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획기적이라고 합니다.

어디까지 다양한 차를 운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매슈 크로퍼드는 '호모 모토' 즉 운전자로서의 정체성 외에도 '호모 파베르' 즉 정비사, 기술자로서의 정체성 역시 강조하는데 예를 들면 그가 직접 만든 자동차라든지 올드카도 '무사시'가 운전하면 자율주행자동차가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멸망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독서시간: 약 15분 / 글자수: 약 1만자

🖍글 속 한 문장

유조선이 해안가에 무단으로 상륙하고, 비행기가 추락을 하고, 전기자동차의 대명사인 테슬라 자동차가 완전자율주행으로 도로를 향해 달려오다가 자신들끼리 부딪혀 파손된 채 서 있는 장면은 '사이버 테러'의 재난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누리는 문명의 이기가 언제든 공포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에 섬뜩하다 [...] 이곳에는 그토록 원했던 것이 있다. 벽장에는 프렌즈의 모든 시즌 DVD가 진열되 있었다. 어쩌면 로즈가 그토록 열망하던 것은 새로운 세계의 파국이 아니라 '벙커' 안에 있는 미드들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일 수 있다. 로즈는 더 이상 바깥에 나가 새로운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파국의 현실에서도 그녀가 원하는 것은 폐쇄적인 시스템 속에 채워져 있다. 그것은 또 다른 파국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열릴 수가 있을까.

👤김스피의 블라블라

두번째 챕터에서 '자율주행자동차 사고 장면'을 소개하며 짧게 언급한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2023)와 관련된 영화평입니다. 영화를 보고 읽는다면 더 깊은 생각이 가능하겠지만, 영화를 보지 않고 읽어도 (반전 같은 게 있는 영화는 아니고 스토리/설정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영화라) 나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대비되며 인상적인 은유와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어른 세대'와 '어린 세대' 간의 차이도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기에 '테슬라 장면' 외에는 그닥 오늘 다룬 레터의 내용과 별 관련이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한데, 깊이 들어가보면 이어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10대 아들의 운전 vs. 자율주행기술 ?

NYT(영문)

🖍글 속 한 문장

자율주행기술을 시도한 몇 달 동안 테슬라의 소프트웨어가 갑자기 해제되어 내가 즉시 제어권을 잡아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마치 달리는 초스피드 디즈니 놀이기구 열차에 갑자기 뛰어들어 버거헛으로 향하는 승무원같은 느낌이 든다. [...] 시스템은 핸들을 잡고 운전대를 잡을 준비를 하라고 끊임없이 경고한다. 가끔은 내가 핸들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자동 주행이 해제되어 내가 운전대를 잡을 의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른 때는 버그가 발생해서 그 신비한 알고리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알겠는가? 1과 0이 교차했을까?

👤김스피의 블라블라

2010년 ‘산만한 운전distracted driving’ 시리즈 보도(출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저널리스트 맷 리히텔이 최근 자율주행자동차 운전과 관련해 쓴 복잡하고 인상적인 NYT 칼럼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2018년 1월부터 2023년 8월까지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기술이 총 956건의 사고에 관계되었고, 사망자는 총 29명이었다고 합니다.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 연구하는 관계자들은 '더 나은' 기술이 개발되면 이런 문제들은 사라지고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과연 그 '1%'는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역시 제기됩니다. '안전성'과 관련해서는 지난 6월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는데요. '통상적인 상황'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더 안전했다고 하는데(링크), 과연 운전에 있어 완벽하게 통상적인 상황이란 존재할 수 있을지 역시 의문입니다. 다만 이미 '산만한 운전'에 적응되고, 그런 환경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운전자들의 운전이 자율주행차의 운전보다 나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지난 회차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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