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 🎓진짜로 필터버블이 문제인가? : 본다는 것의 어려움

인스피아

🎓진짜로 필터버블이 문제인가? : 본다는 것의 어려움

21분 2025.02.05

필터버블 플랫폼 관심경제 소통 공감의벽

진짜로 필터버블이 문제인가? : 본다는 것의 어려움

The filter bubble and the attention economy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46), 2025.2.5,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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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필터버블, 플랫폼, 관심경제, 소통, 공감의벽

1.머리말

2.필터버블에 대한 착각 : ‘단순 접촉’은 사상 최대

3.보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 <자기 땅의 이방인들>

4.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최근 ‘필터버블’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란 유튜브, SNS 등에서 마치 동그란 거품에 갇힌 것처럼 내게 편하고 내가 좋아할 법한 영상, 글만 보게 되는 걸 뜻하는데요.

필터버블 속에 갇힌 사람들은 내게 불편한 것 대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요.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고 합니다.

이에 지난달 24일엔 ‘유튜브 필터버블 개선’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링크) 언론에서도 ‘필터버블의 현장’을 직접 탐색해보는 기사들이 속속 눈에 띕니다.(링크1 링크2)

이런 관점들의 공통점이라면, (편향된 시각의 이유는 알고리즘 탓이며) 우리가 좀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하게 된다면 생각이 자연히 ‘균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거죠.

필터버블 이미지 (왼쪽) 처음으로 '필터버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엘리 프레이저의 저서 <생각 조종자들The Filter Bubble>(2011) 표지, 부제는 '인터넷이 당신에게 숨기는 것'입니다. / eitherview, Amazon

하지만, 저는 곰곰 생각했습니다.

과연 단순히 다른 입장을 ‘접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걸까요? 이미 우리는 네이버 뉴스 댓글 등에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잔뜩 마주하고 있는데, 그런 만남은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소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제가 한편의 레터에서 커다란 이야기를 전부 다룰 순 없겠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필터버블’이라는 단어를 두고 해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필터버블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고 그게 실제로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점에 주목해야할지입니다.

조금 거창해보이지만, 요는 ‘나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 얘길 어떻게 잘 들어볼 수 있을까 하는 거죠.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마크 알렉세예비치), <자기 땅의 이방인들>(앨런 러셀 혹실드)을 지팡이 삼아 보았습니다.

【2.필터버블에 대한 착각 : ‘단순 접촉’은 사상 최대】

“소셜미디어에서 상호작용을 팔로우하느라 시간을 소비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로 상쇄하는 견해들과 증거가, 세심한 재고再考나 사려 깊은 숙의로 이어지기보다는 사람들의 각자 입장을 더 공고하게 만든다는 점을 알고 있다.”
-마크 안드레예비치,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

연구자님은 인터넷, SNS에서 내 의견과 반대되거나, 화가 나고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게시물을 보신 일이 있나요?

만약 있으시다면, 인터넷에서 그 게시물의 작성자와 의미있는 토론을 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런 경우는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터넷상에서는 우리가 진지하게 누군가를 대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죠1).

문제는, 의미있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 단순히 다른 의견에 마주치게 하고 ‘땡’인 것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이상은 제가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을 읽으면서 주목한 메시지입니다.

호주의 미디어학자 마크 안드레예비치는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에서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미디어, 자동화 알고리즘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책 속, 저자의 ‘필터버블’에 대한 참신한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필터버블이라는 환상? : 우리는 오히려 인터넷에서 일상적으로 반대되는 의견들을 많이 보아 왔다.

2. #어설픈 접촉 : 어설픈 접촉을 늘리는 건 되레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호주의 미디어학자 마크 안드레예비치Mark Andrejevic (왼쪽)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 책 표지 / MPR, 컬처룩

1. #필터버블이라는 환상 = 우선 저자는 책에서 ‘필터버블’에 대한 우리의 기존 선입견(?)이 다소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소개합니다.

통념과는 달리, 우리는 생각보다 일상적으로 검색을 하거나 SNS를 할 때 다양한 맥락에서 나와 다른 의견들을 꽤 자주 접해왔다는 거죠.

예를 들면, 꼭 내가 나의 의견에 반대되는 신문이나 커뮤니티에서 무언가를 ‘직접 고의로’ 찾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인용해서 반박하거나 논란이 된 내용에 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거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퍼온 글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수동적으로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고, 대체로 자기가 직접 읽어볼 것을 선택하곤 하죠(링크).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이용은 분명히 일부러는 보지 않았을 추가적인 뉴스 소스에 대한 우연한 노출과 관련(된다)” 이와 비슷하게 세스 플랙스먼 등은 소셜미디어와 검색 엔진의 이용이 “개인은 자신이 덜 선호하는 정치적 스펙트럼으로부터의 뉴스에 더 많이 노출되는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크 안드레예비치,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이하 동일)

그보다는 오히려 반대 의견에 과잉노출되는 경향도 있는데요.

왜냐면 일반적으로 상업플랫폼의 가장 큰 목적은 높은 참여도와 체류시간인데, 우리가 통상 미담이나 100% 공감하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사보다는 분노나 적대하는 게시물에 훨씬 더 크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긍정(즐거움, 기쁨)’ 감정보다 ‘부정(혐오, 분노)’ 감정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 때문에 많은 커뮤니티, 언론 등은 의도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의견의 게시글을 가져와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추구하기도 해왔습니다.

그리고 과거 한국은 해외와 달리 동일한 플랫폼(네이버, 다음)에서 뉴스를 소비하기 때문에 다른 의견 댓글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오히려 갈등 정도가 심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얼핏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단순히 같은 페이지에 존재하는 것(노출되는 것)만으로는 자연스럽게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설령 사안에 대해 꽤 긴 논쟁(?)이 이어질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플랫폼에서 나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들을 (단편적으로) 굉장히 많이 마주칩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의 기사 하단 아이콘이 '화나요' 표시이고, 각종 플랫폼에서 입장이 다른 의견을 퍼날라 이에 대해 공격하는 것이 항상 인기가 많은 현상이 설명 불가능하겠죠. 네이버 뉴스 댓글창에서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보고 '공감'을 느껴 의견이 바뀌는 경우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왼쪽) 과도하게 뉴스, 부정적 의견에 노출될 경우 사람들은 '실제로'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습니다. / 경향신문,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링크)

게다가, 심지어 과거 음모론을 가장 많이 퍼뜨린 주역이 아이러니하게도 음모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었던 웃픈(!)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용해서 비판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그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효과가 있으니까요.(‘대체 뭔 난리래요?’) 미디어 입장에서는 일단 주목을 끄는 것이 돈이 되기 때문에, 가장 기이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되레 힘을 얻게 되는 효과마저 있습니다. (링크)

예를 들어 와이어드(Wired, 미국언론사)는 미국의 학교 총기 사건(*언론에 보도된 대량 총기사건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짓이라는 음모)에 대한 음모론을 가장 필사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셜 네트워킹 플랫폼에 그 음모론을 노출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음모론 때문에 노여워하는 이들이 음모론 홍보를 도와주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음모론을 홍보하는 이들보다도 훨씬 더 그렇다.” 실제로 자동화된 콘텐츠 배포의 명백한 효과 중 하나는, 한때 주변화되거나 극단적이라고 여겼던 관점을 주류로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 세계의 많은 부분을 특징짓는 분노와 선정주의의 커뮤니케이션 경제는 다양한 관점을 유통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2. #어설픈 접촉 = 문제는, 다른 의견에 대한 ‘단순 접촉’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건데요.

우리가 다른 의견을 아무리 마주하더라도 각자가 서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악의로만 가득하다면, 아무런 의미있는 소통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오히려 상대방의 모든 말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죠.

최근 몇년동안 점점 더 분명해진 사실은, 토론을 단순히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입장에 대해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그에 대한 대항은 억압당하고 오해받거나 그저 거부당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광범위한 관점에 대한 노출이 그들의 개방성이나 호기심을 촉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꼭 인터넷 플랫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프라인에서도 단지 다른 배경, 계급, 인종의 사람들과 깊이 대화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만으로는 편견이 오히려 강화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링크). 예를 들면, 같은 동네에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도 전혀 섞이지 않고 단지 동네에서 스쳐지나갈 뿐인 경우가 대표적일텐데요. 그들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고려할만큼 진지하게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모습을 보든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는 도구로 쓴다는 거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통상 ‘필터버블’의 문제의 해결책을 ‘더 많은 다른 입장을 접하는 것’으로 외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해결책’은 실질적인 소통보다도 단지 더 많은 분노와 혐오를 조장해 결과적으로는 플랫폼의 수익만 높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자극적인 혐오 게시글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은, 소중한 우리의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에너지’를 빼앗아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문제에 주목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죠.

올리버 버크먼은 <가디언>(2019)에 기고한 글2)에서 민주적 역량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엄청난 양의 정보와 뉴스에 쏟아붓는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통상 우리는 정치적인 이슈에 관심있고 참여하려는 사람이라면 으레 시사 뉴스를 샅샅이 섭렵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런 통념은 진실과 정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알고리즘에 따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논쟁과 토론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우리의 관심과 분노와 열정과 분개는 중독의 수준에까지 이르고, 결국 시민의 삶을 위한 자원 배양에 필요한 삶의 여러 측면에 기울일 관심 자원은 고갈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빼기의 해결책이다 […]
(이처럼) 상업적인 미디어 플랫폼에서 일어나는 온라인상 주목을 끌기 위한 전투는 [...]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여 그들이 사회적 삶에 필요한 다른 의미 있는 자원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 ”서로가 서로를 정치적으로 동등하게 대하려면, 우리는 서로를 시민 이상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

(*따옴표 안 문구는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참조하여 다듬었습니다)

1) 실은 이 부분은 인터넷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소통에 임하는 자세가 핵심이죠. 엄밀히 말하자면 인터넷과 소통 불능 문제라는 건 인과관계라기보다는 상관관계일 것입니다만, 어떤 문제에서 한 요소가 유독 큰 상관관계를 나타낸다면 우리는 그 부분에 주목할 필요도 있습니다.

2) 필터버블 문제 및 뉴스 소비 습관과 관련해 참신한 인사이트를 주는 칼럼입니다. 레터 하단 <글 속 한문장>에 원문 링크를 소개하겠습니다.

【3.보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 <자기 땅의 이방인들>】

여기까지, 우리는 통상 ‘필터버블’에 대해 우리가 가져왔던 막연한 환상에 물음표를 던져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생각보다 ‘(단편적인) 반대 의견’에 지나치게 많을 정도로 노출이 되어왔고, 이는 진정한 소통에 별 도움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할 때 문제의 해결책이 ‘더 많은 반대의견’에 노출되기일리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상대방을 민폐덩어리, 계도하거나 쥐어박아야 할 샌드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일단’ 존중하고, 서로의 선의를 충분히 확인하면서 머무르고 대화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본인의 주관을 가진 채로도 다른 사람의 세계를 충분히 공감하고 세계를 넓힐 수 있습니다.

<자기 땅의 이방인들>은 진보주의자인 감정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직접 보수주의자(공화당 지지, 티파티*)가 많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가서 5년에 걸쳐 수십명의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나눈 결과를 담은 생생한 책인데요.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 = 2009년 길거리 시위에서 시작된 미국의 보수주의 정치운동으로, 정부의 개입 및 복지의 축소를 주장.

그는 원래 정치학자도 아니고, 딱히 보수적인 사람들과 본격적으로 대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그는 자신이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 문제들(노동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의 사람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단순히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대체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까?...하고요.

이에 그는 보수주의자 비중이 높고, 미국에서 복지 수준이 낮은 주(50개주 가운데 49위)이자 수십년에 걸친 가스 누출, 싱크홀, 폐수 유출 등으로 인해 최악의 환경 피해를 겪어온 루이지애나 지역으로 향하기로 결심했죠.

<감정노동> 등을 쓴 감정사회학자 캘리포니아 버클리캠퍼스 명예교수 앨리 러셀 혹실드 (왼쪽) 혹실드가 2011~15년에 걸쳐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에서 보수주의자들을 만나 쓴 책 <자기 땅의 이방인들> 영문판 책 표지 / 버클리, amazon

이것저것 준비를 했습니다만.

그가 지닌 단 한 가지 원칙은, 바로 ‘온전히 귀 기울이기3)’였습니다. 그들의 감정까지 천천히 듣고, 그들의 삶을 전체로 바라볼 수 있도록 충분히 그들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죠.

* 나는 생의 대부분을 진보 진영에서 살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에 우파쪽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 견해를 갖게 된 걸까? 우리는 몇가지 문제에서 공통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을까? [...] (감정의) 연계는 공감의 다리를 세우는 데 중요한 발판이었다.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우리는 ‘상대편’하고 공감하게 되면 냉철한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그릇된 생각을 했다. 사실은 그 다리의 반대편에 서 있어야 가장 중요한 분석을 시작할 수 있는데 말이다 [...] 우리시대의 양극화, 그리고 우리가 점점 서로 잘 알지 못한다는 현실 때문에 우리는 혐오와 경멸에 만족하기가 너무나도 쉽다.

* 나는 5년에 걸쳐 티파티 핵심 지지자 40명과 이 핵심 집단에 관한 시각을 넓혀준 다양한 직업(교사, 사회복지사, 변호사, 정부관리)을 가진 20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삼아 4960쪽의 기록을 축적했다. 이 핵심 집단에서 특정한 양상을 특히 잘 보여주는 소수 집단을 선별했다 […] 그들을 쫓아다니면서 그 사람들이 태어나고, 학교와 교회에 다니고, 쇼핑을 하고, 재미있게 노는 곳을 보여달라고 했고, 그런 모습 속에서 그 사람들이 받은 영향을 느껴보려 했다.

다들 티파티를 지지했지만 (당연히) 자기들끼리도 서로 다른 점이 많았다 […] 가난을 보는 시각도 서로 달랐다.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우리 동네 식품점 경비원한테 가게에서 어떤 물건을 도난당하냐고 물었죠.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쌀하고 콩, 이유식을 주로 훔쳐간다더군요. 의미심장하죠.” 다른 이들은 그런 이야기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앨리 러셀 혹실드, <자기 땅의 이방인들>(이하 동일)

일단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기 위한 엄청난 수고와 헌신, 번거로움에 새삼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누군가 - 나와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원래부터 굉장히 번거롭고 그렇게 해야만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통상 인터넷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누군가가 툭툭 내뱉는 말이나 행동들이 그 사람의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사실 어떤 사람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또 그가 미처 말하지 않은 것, 숨기고 있는 것까지 알아낼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저자는 처음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몹시 어리둥절해지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거대한 역설’을 찾아냈기 때문인데요.

이들은 석유 유출로 인해 아름다운 자연과 생활, 이웃, 가족들을 다 잃고서도 여전히 정부 축소를 주장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보험 영업을 하는 당찬 싱글맘은 자신이 유급휴직 복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공화당에 투표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통상 좌파들이 생각하듯, 무언가를 미워하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삶과 고향, 가족, 공동체를 사랑하고 전통을 지켜가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소중히 여겼던 것들은 수십년 간 모두 손 안에 든 모래알처럼 흘러내려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살아왔지만, 메탄가스 유출 및 싱크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아프고 고기를 먹을 수도 없게 되고 친근했던 이웃들은 떠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공화당 정치인들은 환경 영향 평가에 반대하고, 정부의 지원을 줄이려 했죠.

가스회사의 영향으로 인해 수몰되어가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지역에 사는 한 보수주의자 남성은 슬퍼하며 말합니다.

마이크가 뒤뜰 가장자리로 나를 안내하면서 마치 자기 삶이 진행되는 듯 현재형으로 말을 한다. “여기가 이웃들을 불러서 가재찜을 해먹는 자리입니다.” 수로 건너편이 보이는데 […] 부르면 들릴 거리에 그릴이 놓인 안뜰들이 있다 […] ”이제 재닛하고 제리는 없어요. 토미도 없고요. 니키하고 그 친구의 부인도 없죠. 짐씨도 이제 없답니다.” […] ”우리동네는 서로 아주 친해요 […] 홍수철이면 서로 도우면서 제방을 다시 쌓죠. 맥주 두잔짜리 제방 일이나 네잔짜리 일을 맡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왜 대체 당신에게 도움도 안되는 정당에 투표하느냐?’ 며 그들의 모순을 짚고, 성을 내거나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잠자코 이들의 삶으로 들어가 묵묵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고, 슬퍼하고, 아끼는 것들을 충분히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통해 - 그 모순으로 가득 찬 이야기 뒤에 숨어있는 이들의 마음을 가까스로 읽어냅니다.

나는 그림 안에 없는 것에 주목함으로써 보고 싶은 그림 속으로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마치 음화陰畫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이해하려 하는 듯했다. 나 자신이 사람들이 기억하고 초점을 맞추고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다들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말하지 않은 내용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상식적인 뭔가가 수수께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티파티 사람들은 대부분 따뜻하고 지적이고 너그러워보였다. 아인 랜드*의 소름 끼치는 소설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지 않다 […] 많은 이들이 환경 문제를 가슴 깊이 걱정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 각각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다른 뭔가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아인 랜드(1905~1982·링크) = <아틀라스> <파운틴헤드>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보수주의자 작가. 오늘날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다수의 보수파 정치인 등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기도 했음.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내면의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그 이야기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명예롭게 인내하고, 카우보이처럼 멋지게 개척하는 꿈을 꾸었죠. 하지만 그들은 병들고 가난한 채 끝없이 늘어선 줄에 선 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앞으로 새치기해오는 뻔뻔한 이들(소수자, 이주노동자...) 을 뻔히 바라보면서요. 그렇게 이들은 스스로를 ‘자기 땅의 이방인들’로 여겼던 거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이야기는 그들이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 저자가 이들과 밥을 먹고, 그저 시간을 보내고, 이들의 이야기를 사려깊게 들으면서 이르게 된 통찰이라는 점입니다.

이어 저는 생각했죠. 만약 저자가 사람들의 말을 끊고 언성을 높이거나, 온라인 SNS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들의 이야기만 바라봤으면 이런 생각에 이를 수 있었을까? 하고요.

이는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은 생각입니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을 낸 뒤 강연에서 여러번 강조해왔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감정의 벽을 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면 이런 책을 쓸 수는 없었을 거라고요.

2016년 루이지애나 환경부 과학자들이 수은 검사를 위해 물고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루이지애나는 석유 유출 및 가스누출, 폐수 등으로 인해 싱크홀(가스), 오염문제 등 수십년간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왼쪽) 'T.E.A - 이미 충분히 세금을 냈다(Taxed Enough Already)'라고 적힌 피켓을 든 티파티 운동 지지자의 모습. 이들은 작은 정부와 복지 감축 등을 주장해왔고, <자기 땅의 이방인들>에 등장하는 루이지애나의 티파티 지지자들 역시 환경오염 피해를 입었음에도 정부의 역할을 축소할 것을 주장합니다. / nola, AFP

혹실드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루이지애나 사람들을 만난 것은 2011~2015년의 일이었습니다만, 이 책의 후반부에서 2016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의 유세에 참여한 이들의 감격어린 목소리는 그의 통찰과 ‘딸깍’하며 이어집니다.

트럼프는 ‘감정에 호소하는 후보’다 […] 자기하고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은 지금, 그 사람들은 희망과 기쁨과 고양감을 느낀다. “내 앞에 이런 남자가 있다니!” 두 팔을 치켜들면서 놀라운 마음을 표현한 남자는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이제 그 사람들은 자기 땅의 이방인이 아니었다>

물론 저자가 이들의 의견이 옳다고 옹호한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그들의 줄에서 새치기를 한 게 아닙니다. 여전히 이들의 삶에는 모순이 존재하고, 이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듣는 것을 통해, 그들이 미처 말하지 않은 본심을 읽어낼 수가 있었고요.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진짜로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마지막에 각각 ‘보수주의자 친구’와 ‘진보주의자 친구’에게 보내는 짤막한 편지를 쓰며 책을 끝맺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은 일부 대목을 짧게 발췌해봅니다.

(To. 나의 진보주의자 친구에게)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은 없을 거야. 아마 아주 좋은 사람 몇몇은 너한테 튼튼한 공동체와 근성, 회복력에 관해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줄 거야 […] 너는 아마 유력한 우파 조직가들이 자기네들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풀뿌리 우파 지지자들의 본성에 도사린 악한 천사들, 그러니까 탐욕, 이기심, 인종적 불관용, 동성애 혐오, 불우한 사람들한테 가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는 욕구 등에 호소하는 식으로 그 사람들을 꾀어들인다고 생각하겠지 [...] 그런데 그런 호소는 내면의 이야기 속 자아의 또 다른 특질, 그러니까 경제적 공포의 시대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끈기, 그 사람들이 가진 충성과 희생과 인내의 능력을 가려버린다고. 우파의 선한 천사들 말이야. 그 사람들하고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아마 너도 결국 그 사람들의 관점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봐.”

(To. 나의 보수주의자 친구에게)

“진보주의자들을 알게 되면, 그 사람들에게도 당신네하고 비슷하게 각자 내면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 도적떼가 공공 광장에 쳐들어와서 광장을 무자비하게 부수고, 중심부에 있는 공공건물에서 벽돌하고 콘크리트 블록을 훔치는 겁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공공광장을 지키던 사람들은 광장을 부순 사람들이 바로 그 벽돌하고 콘크리트 조각을 가져가 맥맨션*을 짓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봅니다. 공공 영역을 사유화하는 모습을요 […]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당신네는 스스로 생각하는정도보다 좌파하고 공통점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좌파의 많은 사람들도 자기네 땅에 사는 이방인이라고 스스로 느끼니까요.>”

*맥맨션(McMansion) = 교외지역의 양산형 주택

저는 이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곰곰 생각했습니다.

내용은 둘째치고라도,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각자에게 말을 거는 글들을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접할 수 있었나 하고요.

약간은 미련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서로에 대한 선의를 바탕에 둔 방식이요.

그리고 어째서 우리 사회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그 모든 - 빠르게 반사적으로 쏘아붙여지는 악의와 혐오의 아픈 말들, 본심도 아닌 껍데기같은 말들4)을 모조리 쓸어담는 방식으로만 한사코 ‘필터버블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걸까요?

3) 책에서 저자는 이를 ‘공감의 벽을 넘기’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통상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 속한 집단에 따라 어떤 집단의 입장에 공감할지를 '결정'하는데, 이런 벽을 넘어 상대방의 느낌을 느껴보고 그 입장에 서보는 일을 뜻하죠.

4) 혹실드는 책에서 폭스 뉴스와 러시 림보(1951~2021·미국의 유명한 극우 라디오스타. 극단적인 말로 돈을 버는 정치 유튜버, 패널의 효시와도 같은 인물이자 트럼프 당선의 주역 중 하나, 2020년 트럼프는 그에게 대통령훈장을 수여.링크) 방송을 하루종일 달고 사는 한 여성과 대화를 하며, 문득 이들과 직접 대화를 하는 동안엔 폭스 뉴스가 매일같이 좌파를 두고 하는 극단적인 표현들("깡패, 테러리스트, 목졸라 죽이기"...)을 접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통상 온라인에서 '대화'를 할 때는 혹실드의 대화와는 반대로, 상대가 어떤 취미를 갖고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지는 싹 지워지는 대신 이런 극단적인 표현들만이 수면으로 떠오릅니다.

【4.맺음말】

레터를 쓰면서 <자기 땅의 이방인들>을 읽을 때,

저는 묘하게도 책의 서두에 루이지애나의 한 옛 마을을 설명하는 아주 짧고 무심한 한 문장에 꽂혀 한동안 눈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었습니다.

“마이크는 예전 조그만 밴더빌 마을에 관한 공상을 계속 이어간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사라진 마을이다. 마이크가 전하는 회상에 따르면 4분의3정도가 흑인이고 4분의1이 백인이었는데, 가까우면서도 불평등하게 어울려 살았다.”

-앨리 러셀 혹실드, <자기 땅의 이방인들>

앞서 본문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사실 단순히 가깝게 어울려지낸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소통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뻔히 보면서도 보지 않을 수 있고, 들으면서도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필터버블 문제를 단순히 정보(무엇)에 접촉하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그보다는 어떻게가 더 중요합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인터넷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습니다만, 인터넷 소통/읽기에 대한 저의 입장은 대체로 한결같습니다. 인터넷 vs 오프라인의 문제라기보다는 - 우리가 그것을 대할 때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라고요. 과연 우리는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우리와 입장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얼마나 ‘제대로’ 귀를 기울여봤을까요?

사실,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제 생각을 하나 덧붙여보자면 저는 버블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버블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고, 그것을 터트리는 것으로 모든 게 간단하게 해결 될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사람들은 어느정도 자신의 버블 안에 들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소설가 김훈은 과거 ‘칼럼이란 편견’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살아온 배경과 접해온 환경에 따라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주관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차단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한사코 다른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겠죠.

이번 기회에 연구자님들께서도 ‘무엇을’보다는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마크 안드레예비치, 이희은 옮김, 『미디어 알고리즘의 욕망』, 컬처룩, 2021.

-책의 부제는 '자동화된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가'입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각종 분야에서의 자동화(스마트홈, 범죄예방시스템 등)를 두루 다루는데 그중에 한 챕터로 필터버블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었고, 오늘 레터에서는 해당 챕터에 집중해보았습니다.

흔히 필터버블의 문제의 해결책은 '더 많은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되곤 하는데, 오랜만에 책장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으면서 - 저자가 그런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지점에서 느낌표가 떠올랐습니다.

앨리 러셀 혹실드, 유강은 옮김, 『자기 땅의 이방인들』, 이매진, 2017.

-<감정노동> <나를 빌려드립니다The outsourced self>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감정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직접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에서 보수주의자들(티파티) 수십명을 만나며 쓴 책입니다(원서 2016년 출간). 오늘 레터에서는 간단히 다루었습니다만, 책을 직접 읽어가다보면 저자가 처음에는 막연하게 '보수주의자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이들을 접하고 여전히 자신의 고집에서 한참 벗어나지 못하다가 - 중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의 감정 그 자체에 이입하며, 이들의 내면의 이야기에 수긍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긍이 곧 이들에의 동화 혹은 '버블을 터트리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각자의 주관을 지킨 채 다른 사람의 입장에 이입해볼 수 있습니다.

마크 버겐, 신솔잎 옮김, 『유튜브, 제국의 탄생』, 현대지성, 2024.

-이 책은 최근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전문 저널리스트가 직접 관계자들을 취재해 유튜브의 시작부터 오늘날까지의 방대한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오늘 레터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았는데,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진화 X) 과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유튜브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이후에는 이 책에서 다루어진 2007년부터 2020년대까지의 유튜브 제국의 역사와 또 다른 방식의 어떠한 변화 혹은 진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오늘 레터 내용과 관련해서는, 미디어 플랫폼의 가장 큰 목적은 첫째도 수익성. 둘째도 수익성이라는 것을 새삼 읽는 내내 체감해볼 수 있습니다(즉, 필터버블이 과연 수익성에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읽어볼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책에는 필터버블이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고의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밖에도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직접 본문에서 다루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오늘은 불가피하게 영문 아티클들을 다수 포함하였습니다. 번역을 해서도 읽을만한 인사이트가 있는 글들을 엄선해보았습니다. 영어 독해가 어려우신 분들은 구글 자동 번역 기능을 사용하시면 수월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필터버블의 진실 : 신화를 폭로하다

reutersinstitute(영문)

🖍글 속 한 문장

“[왜 필터버블에 집중하면 안되는가?] 필터 버블에 집중하면 메커니즘을 오해하게 될 수 있으며, 더 시급한 문제에서 주의를 돌릴 수도 있다 [...] 대부분의 경험적 증거는 검색 및 소셜 미디어에서 (오히려) 온라인 뉴스 사용이 더 다양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다양성이 태도와 사용 모두에서 모종의 양극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필터 버블 가설의 예측과 정반대이기에 흥미롭다.
[...]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필터 버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치와 사회 모두에서 분열의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뉴스 사용에 미치는 플랫폼과 그 영향을 계속 조사하되,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잠재적으로 더 중요한 요소를 무시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리처드 플레처 박사의 칼럼입니다. 글의 핵심 주장을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코챔버(반향실 효과)와 필터버블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며, 필터버블이 곧 에코챔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리포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SNS에서 100% 알고리즘에만 의존해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뉴스 소스를 얻는 과정에서 반대 의견에 많이 노출되는 경향을 보이며, 오히려 이처럼 반대 의견에 노출되는 게 양극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반향실효과 및 양극화 문제의 원인을 필터버블로만 돌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오늘 레터에서 다룬 챕터2 부분의 주장과도 이어집니다.

플레처 박사 외에도 2020년 이후 악셀 브룬스 등의 저자들은 저서(링크)를 통해 '필터버블에 대한 신화가 과장되었으며 이에 대해 단순히 더 많은 다른 의견을 접하게 하기'가 결코 양극화, 에코 챔버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집단을 무조건 옹호하는 게 충성인가?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3200자 (원문)

🖍글 속 한 문장

과학자들은 자신의 집단이 감정적으로 잘못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의견, 태도를 조절해 균형을 잡으려는 행동을 “감정적 보상”이라 부릅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아밋 골드버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 특정한 불의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개인은 더 큰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과 거리를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집단에 대해 공감 능력을 낮추는 일은 사실 흔히 발생합니다 [...]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과 거리를 둠으로써 한 사람은 두세 사람이 되고, 두세 사람은 다시 집단이 되고, 집단은 운동이 됩니다. 사회는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이 글은 오늘 레터에서 다룬 책 엘리 러셀 혹실드의 <자기 땅의 이방인들>과 <힐빌리의 노래> 유행을 예로 들며, 과연 공감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과거 인스피아 레터에서도 공감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다루어보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싫은 사람에게 공감하기))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타인의 이야기를 온전히 입체적으로 들으려는 열린 공감적 태도가 적어도 대강 표면적인 관찰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개인적으로(개인의 세계를 넓힌다는 차원에서),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기 땅의 이방인들>에서 중요한 점은 엘리 러셀 혹실드가 말하는 '공감'은 결코 그들의 입장에 '동화'되어 그들의 모순까지 모두 수긍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혹실드는 마지막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긴 하지만, 본인의 신념을 바꾸지는 않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이 글에서 등장한 집단에 대한 공감, 충성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흥미롭다고 생각해 함께 소개해보았습니다(내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꼭 항상 부조리에 대한 무한수긍으로 이어지진 않죠. 정말 집단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쓴소리를 할 것입니다). 오늘 레터와 연결해 읽어보면 한층 입체적인 생각을 해보실 수 있을 것같 습니다.

뉴스를 다 섭렵해야 훌륭한 시민인가?

영문(Guardian)

🖍글 속 한 문장

우리는 뉴스에 빠져든다. 아침에 다른 사람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계속 볼 수 있다. 버스나 줄을 서서 시간을 보내다가 트위터를 확인하다가 대선 정치나 인도주의적 비상사태의 드라마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추정에 따르면, 우리 중 70%가 밤에 ‘뉴스 전달 장치’를 잠자리에까지 들고 다닌다.
[...] 오늘날 우리가 뉴스에 대해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오늘날 뉴스가 너무 미쳤기 때문이라고 가정하기 쉽다. 그러나 과거에도 뉴스는 종종 미쳤었다. 단지 유비쿼터스가 아니었을 뿐이다. 가장 초기부터 수십 년 전까지만해도 뉴스의 정의는 수많은 곳들으로부터 온 소식이었으며, (그곳에) 잠시 들렀다가 곧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는 일종의 짧은 방문이었다. 수세기 동안 뉴스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접근 가능했다. 대중 매체 시대에도 뉴스는 교육받은 시민의 관심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차지하지 못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 많은 '균형적인' 정보를 섭렵-섭취해야 한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흥미로운 칼럼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충분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자책하며,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뉴스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죠. 심지어 여기에 필터버블 이슈까지 끼얹어지면, 더 사려깊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글(심지어 양쪽의!)을 읽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필자가 말했듯, 역사 이래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사람들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뉴스' 미디어(넓은 의미에서 커뮤니티, SNS 등 포함)에 투자한 적은 없었으며 그것으로 인한 효과는 이전에 발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새로 분석하고 제대로 직시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뉴스가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힐링을 위해 뉴스를 줄여야 한다'라는 말을 넘어, 복잡한 지형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리고 우리가 그냥 단순히 더 많은 기사를 달달 읽고 모든 걸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어떻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칼럼입니다.

관심경제에서 관심을 뺏기는 무서운 일

영문(Newyork times)

🖍글 속 한 문장

헤이즈는 <사이렌의 부름>에서 온라인 생활이 제공하는 사소한 오락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치를 어떻게 타락시켰는지에 대한 분석을 제시한다 [...] 우리는 자극에 폭격을 당하면 과도하게 자극을 받지만, 생각에 홀로 남겨지면 불안해진다.
우리의 휴대전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슬롯 머신"은 우리를 양쪽으로 끌어당기고,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사교성을 시뮬레이션하고, 싼값으로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출판사와 할리우드 프로듀서는 항상 청중의 관심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의 문제에 골몰했을테지만, 소셜 미디어 기업가는 그렇게 신비롭고(비싼)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수백만 개의 작은 방해를 던지고, 어떤 방해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는지 추적한 다음, 그것을 반복할 수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앞서 소개한 가디언 기사에 이어 읽어보면 좋을만한, 최근 발간된 논픽션 관련 서평 기사입니다. 베스트셀러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Shallows>(2011)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저자 니컬러스 카의 2025년 신간(<슈퍼블룸SuperBloom>)과 크리스 헤이즈의 신간(<사이렌의 부름Siren's Call>)을 엮어 쓰고 있습니다.

사실 관심경제 시대의 미디어가 우리들의 관심, 집중력을 처참하게 빼앗고 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의도적인 분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자체는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같은 문제를 지적했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지가 벌써 어언 15년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제가 예전에 관련 내용을 레터에서 썼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SNS라든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이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꽤 다채로운 방법으로 관심과 시간을 낭비해왔다는 겁니다. 정도의 차이 - 바로 그 지점이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제 경우는 이번 레터를 쓰는 과정에서 그간 단지 미디어/플랫폼의 문제로 양극화라든지 혐오 등을 다루어왔던 것에 대해 약간은 회의적인(유보적인) 시선을 갖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그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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