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8월 금융실명제

2013.08.29 21:35

1993년 8월12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헌법 76조 1항에 의거해 대통령 긴급명령권을 발동했다. 김 대통령은 “모든 금융거래에 대한 실명제를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해방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경제조치로 꼽히는 금융실명제가 전격 도입되는 순간이었다. 김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지 않고는 이 땅에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고,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을 근원적으로 단절할 수 없으며 이 땅에 진정한 분배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그해 8월13일자 1면 톱기사와 2·3면에 걸쳐 ‘금융실명제 전격 단행’ 소식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금융실명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검은돈의 거래를 차단해 금융거래를 정상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역대 정부에서 금융실명제 도입을 위한 시도는 두 차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 1982년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을 계기로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비실명거래로 이익을 얻는 집단의 반발로 무기한 유보됐다. 1988년에는 금융실명제를 1991년부터 전면 실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가 시기상조론에 밀려 보류됐다.

[경향으로 보는 ‘그때’]1993년 8월 금융실명제

김영삼 정부 시절 금융실명제 도입을 위한 준비는 극비리에 추진됐다. 정부 부처와 국책 연구기관의 핵심 브레인으로 꾸려진 11명의 ‘비밀작업반’이 가동됐다. 당시 이경식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홍재형 재무부 장관, 김용진 세제실장, 김진표 세제총괄심의관 등은 금융실명제 추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옷을 벗겠다는 각오로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비밀작업반’은 경기 과천 주공아파트에서 두 달여 동안 감옥살이와도 같은 합숙을 하며 금융실명제의 골격을 짰다. 이들은 금융실명제 준비를 ‘남북통일작전’으로 부르는 등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한국 금융사에 한 획을 그은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흘렀다. 최근 정치권과 금융계에서는 금융실명제를 보완하기 위해 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가족 명의의 거래나 금융계좌를 만들 수 없는 금융채무불이행자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하지만 이재현 CJ 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차명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례에서 보듯 차명거래는 불법 금융거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20년 전에 그랬듯이 ‘제2의 금융실명제’를 도입한다는 의지를 갖고 차명거래 금지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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