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저호 사고의 현재적 의미

2014.01.12 20:42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1986년 1월28일,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이륙 후 73초 만에 폭파됐다. 당시 이 광경을 TV를 통해 지켜본 사람이라면 똬리 모양의 흰 연기를 내뿜는 챌린저호가 7명의 승무원과 함께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끔찍한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사고 후 이루어진 진상조사에서는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에서 로켓 부스터의 부품 중 하나인 오링이 파손된 것이 폭발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자연스럽게 사고의 책임은 오링의 문제점을 간과하고 발사를 강행한 미 항공우주국(NASA)과 제조사인 ‘머튼티오콜’에 돌려졌다. 특히 일부 엔지니어가 오링의 오작동 가능성을 사고 전 이미 지적했음이 알려지면서, 이후 챌린저호 사고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을 무시했기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발생한 기술적 재난의 전형적 사례로 알려지게 됐다.

[과학 오디세이]챌린저호 사고의 현재적 의미

그런데 실제 상황은 이보다 좀 더 복잡했다. 물론 NASA와 머튼티오콜의 공학자들은 발사 직전까지도 오링의 안전성에 대해 논쟁을 벌일 정도로 사고 발생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다. 동시에 우주왕복선을 한 번 발사하려다 연기하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 데다, 챌린저호는 이미 여러 차례 발사가 연기된 상태여서 관계자들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이번에는 발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시 NASA의 엔지니어들이 공학적 근거에서 사고가 거의 확실히 발생할 것이라 판단했다면 그대로 발사를 강행해 엄청난 비용과 인명의 손실을 감수했을 리 없다. 그들로서는 위험은 있지만 큰 문제는 없겠지라는 판단을 했던 것이고 이 생각이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니었다. 챌린저호와 유사한 수준의 위험을 안고 발사하고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경우나 역으로 사고가 날 위험을 고려해서 발사를 연기했지만 실은 그다지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경우도 여럿 있었다.

기술적 위험, 특히 챌린저호처럼 수많은 부품이 복잡한 방식으로 결합한 거대 기술시스템의 위험이란 원래 이런 불확실성을 갖기 마련이다. 반드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을 무시할 엔지니어도 드물다. 그보다는 위험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판단할 때 엔지니어는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정하고 그보다 수준이 낮은 위험은 무시하는 방식을 택하기 쉽다. 중요한 점은 이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이 순전히 공학적 전문성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기술적 위험을 피하려면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보장이 나올 때까지 발사를 연기하면 된다. 역으로 되도록 빨리 발사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엔지니어라면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상당히 높게 잡고 모험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챌린저호 발사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이 벌인 논쟁은 이처럼 어느 정도를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벌인 것이었다. 발사에 찬성했던 모턴티오콜 경영진과 NASA 책임자들은 발사를 반드시 성사시켜야만 하는 압박 속에 있었던 반면, 발사에 반대했던 엔지니어들은 보다 안전한 운행을 위해 ‘수용 가능한’ 위험을 더 낮게 잡았던 것이다. 결국 챌린저호는 발사 됐고 파국적 사고로 이어졌다. 이처럼 챌린저호 참사에는 공학, 정치, 경제적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셈이다.

정리하자면 챌린저호 사고는 분명한 위험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비도덕적 엔지니어와 경영진 때문이 아니라, 공학적 위험의 불확실성을 악용해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높게 잡아 각자의 이익을 추구했던 무책임한 기술자와 경영자로 인한 것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결정은 경제, 정치적 압박 상황에서 내려지기 쉽다.

필자의 영국 유학 시절 많은 사회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철도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영국 정부는 민간회사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철도를 운영할 것이라 늘 주장했지만, 필자는 영국 사람들로부터 철도 서비스가 나아졌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켄 로치 감독의 2001년작 <내비게이터>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평소 보수작업 규정에 따르면 8명이 들기로 되어 있는 철로를 민간기업의 ‘합리화’ 정책에 따라 6명이 들게 된다. 8명이 드는 철로를 6명이 못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철로가 약간 어긋나게 놓여,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증가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회사로서는 ‘공학적으로 가능한’ 한계를 끝까지 밀고 나가 최대한 ‘합리화’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영국 철도의 민영화 사례는 이러한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철도나 의료 민영화가 기적의 만병통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사례가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되새겨볼 일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