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소부장산업은 동반성장산업이다

최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7월4일 일본이 전략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하면서 관심이 높아진 소부장산업은 몇 달이 지나도록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규제 이후 우리 기업에 많은 피해가 예상됐지만 재고 활용·다변화 노력으로 아직까지는 생산에 차질이 없다는 소식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일방적인 일본의 수출규제가 쉽게 납득되지 않으나,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소부장산업의 발전 방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운찬 칼럼]소부장산업은 동반성장산업이다

소재와 부품은 제조업의 허리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소부장산업은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에 치중해 소재와 부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수입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왔다. 이 과정에서 소재와 부품의 무역적자가 심화되자 정부는 2001년 ‘소재·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였다.

3차에 걸친 기본계획 추진과 연구·개발(R&D)에 5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결과 소부장산업은 눈부시게 발전을 했다. 2018년 우리나라 소재·부품산업의 수출액은 3162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52.3%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 가운데 소재산업은 941억달러로 15.6%, 부품산업은 2220억달러로 36.7%를 차지하여 부품 분야에서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소부장산업의 경쟁력은 무역흑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0년 93억달러에 불과했던 무역흑자는 2010년 779억달러, 2018년에는 1390억달러에 이른다. 단기간에 우리나라가 소부장산업의 강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유독 일본과의 소재·부품 무역수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1965년부터 2018년까지 대일 무역적자 전체규모는 6000억달러가 넘는다. 2010년의 경우 361억달러에 달해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그중 소재·부품의 무역적자는 242억달러에 이른다. 다행히 작년에는 306억달러를 수출하고 546억달러를 수입하여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240억달러로 줄었지만 그중 소부장산업의 무역적자(151억달러) 비중은 60%를 넘었다.

그러면 왜 소부장산업의 대일본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일본은 소재와 부품에, 한국은 조립 생산에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국제분업의 당연한 결과로 인식되었다. 일본의 경우 소재산업은 전체 제조업 중에서 기업 수, 종업원 수, 매출액의 약 17%에 달한다. 다음으로 한국이 범용 소부장산업에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으나 첨단 소부장산업의 기술개발은 등한시해 왔다. 소재산업은 제조업의 융복합화가 진행될수록 각광을 받는 원천기술이 응집된 분야이기 때문에 일본은 여기에 집중하여 왔다. 일본이 소부장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기술개발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기보다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편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그런데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로 개별허가 대상이 된 3가지 품목은 모두 기능성 화학제품임에 주목하여야 한다. 일본 소재산업의 70% 정도는 화학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화학산업의 매출액은 2015년 기준 200조원에 달하고 영업이익은 17조원에 이른다. 일본의 소재산업은 화학산업을 중심으로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첨단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계속 혁신하고 있다. 종전 기초화학제품은 세계 최고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대량생산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기능성 화학제품에 집중하여 에너지 효율과 폐기물 삭감에 중점을 둔 다품종 소량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기능성 화학제품은 화학산업 매출의 34%, 영업이익의 45%를 차지하는 첨단기술 분야로 소부장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여기서 기능성 화학제품이 선도하는 소부장산업의 특성을 생각해 보자. 먼저 소재와 부품은 최종제품이 아니라 중간제품이다. 따라서 소부장산업은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가 아니라 기업 간의 거래(B2B)가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따라서 이 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하청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2B 산업은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단기적 거래보다는 장기적 거래를 중시한다. 따라서 소부장산업은 상생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동반성장산업이다.

일본이 소재·부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된 것은 산업화 초기부터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 상생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는 1938년 협력업체 모임인 협풍회를 통해 신차개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소재와 부품을 협력사와 공동 개발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이런 전략은 다른 완성차 업체로 확산되었고 1974년 일본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오늘날 일본이 첨단 소부장산업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은 기업 간의 협력과 공생철학, 협력중소기업에 대한 지속적 투자, 기술개발을 위한 모노쓰쿠리(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제조 문화)의 실천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소부장산업의 발전은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며, 이 분야의 경쟁력 제고는 중소기업의 성장동력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산업정책의 한 방안으로 소부장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정부와 여당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소재·부품·장비산업에 대한 자립화 지원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 2조1242억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장기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대기업이 단기 수익을 중시하는 경영에서 중소기업을 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기술혁신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상생협력 경영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첨단 소부장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 간 상생협력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해법일 것이다. 소부장산업은 동반성장산업이기 때문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