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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 유감

2020.01.06 20:33 입력 2020.01.07 09:41 수정

[기자칼럼]이상문학상 유감

“문학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싸움을 거는 일이고 작가는 세상에 어깃장을 놓고 싸움을 거는 존재다. 그 싸움은 단지 작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작가란 작품으로도 작품 바깥으로도 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또 싸워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기자칼럼]이상문학상 유감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이상문학상 수상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소설가 김금희를 지지하면서 말했다. 이 글을 보며 생각했다. 작가가 ‘싸우는 존재’라면 이미 한국 문학에 충분하다. 과거 독재와 국가폭력 같은 ‘대문자 권력’에 항거하는 싸움을 해왔다면, 우리 안의 차별과 배제, 권리의 억압 등 ‘소문자 권력’과의 싸움이 한국 문학 안에서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주도하는 것은 여성, 신인 작가들이다.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하고 법원에서 승소한 최영미 시인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알면서 침묵한 ‘대시인’의 성폭력에 대해 그는 ‘괴물’이란 시를 통해 용기 있게 폭로했다.

새해 첫날, 새롭게 탄생한 작가들 중 일부는 기존 관행에 ‘어깃장’을 놨다. <신춘문예 당선시집>에 작품 수록을 거부했다. 이유는 2016년 터져나왔던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과 연관이 있다. 지난해 경향신문 당선자 성다영 시인에 이어 올해 서울신문 시 당선자 이원석씨와 한국일보 시 당선자 차도하씨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가 문학세계사의 이사였다는 이유로 작품 게재를 거부했다. ‘문단 내 성폭력’은 기성 작가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 습작생들과 신인 작가들을 착취한 사건이었다. 가해자가 관련된 출판사에서 신인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도맡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를 이들은 묻는다.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 역시 ‘이름 없는’ 습작생과 신인 작가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제 그 사건을 보고 겪은 세대가 ‘작가’가 되어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걸고 있다.

신춘문예가 신인들을 발굴하는 잔치라면, 이상문학상은 기성 작가들 중 최고를 겨루는 자리다. 이상문학상은 44년 ‘전통과 권위’에 기대어 대표적 문학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문학 독자라면 빨간색 띠를 두른 수상작품집을 한 권 정도 소장하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사상사는 ‘전통과 권위’를 스스로 훼손했다. 상의 권위는 공정한 심사 과정과 수상작품의 가치, 작가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느냐에 따라 주어질 것이다. 상을 주는 대신 작품의 저작권을 출판사에 3년간 양도할 것과, 이를 작가가 작품집 표제작으로도 쓰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갑질’에 해당하는 부당한 조건이다. ‘명예’를 줄 테니, ‘권리’를 포기하라는 요구다. 문학사상사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대해 “본상의 공정성과 권위를 광범위한 독자에게 널리 알리고, 수록된 작품과 그 작가들에 대한 표창과 영예의 뜻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김금희는 말한다. “예술가들을 격려하기 위한 시상을 한다면 그들의 노고와 권리를 존중하세요.” 새해 벽두, 낡은 틀이 새로운 것을 담아내지 못하면서 내는 경쾌하고 희망적인 파열음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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