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다루는 방법

2020.07.22 03:00 입력 2020.07.22 03:01 수정

2012년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2000년대 중반 집값이 폭등할 때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중반 유년 시절을 보낸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친구를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아요. 주택에 실거주하면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우리 집도 시세차익을 위해 이사를 해야 했고 제가 이사 가지 않아도 제 친구들이 비슷한 이유로 떠나야 했죠.”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 조합 이사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 조합 이사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안을 토대로 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은 대출 한도, 부동산 세율, 임대차 계약 기간 등 주거와 부동산 관련 기사 하나에 댓글이 수백개씩 달린다. 집과 관련한 불안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주택으로 주택 점유형태를 바꾸면 불안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주거불안을 다루어 왔다. 최근 주택가격 과열지역에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한 것을 두고 사다리가 무너졌다며 크게 반발하는 모습도 근본적으로는 불안을 벗어나고자 하는 외침과 같다. 다른 논란도 비슷하다. 소유하는 집이 주는 안정감에 정부가 손대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그 주장이 예상대로 불안을 벗어나고 싶다는 본능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차라리 그 불안 앞에 솔직해지자. ‘집을 살(Buy) 수 있게 해달라’가 아니라 ‘내가 어떤 점유형태로 거주하더라도 덜 불안하게 살고 싶다’라고, ‘세입자의 권리 보호는 재산권의 침해다’가 아니라 ‘집을 사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도 안전하게 살고 싶다’라고 속 시원하게 말하자.

집을 사지 않고도 세입자가 주거계획을 세울 수 있고, 집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민이 모멸받는 일은 없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 더 존엄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지고 있을 그 주거의 불안을 다루는 가장 정직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월세, 전세, 자가 등 각각의 점유형태가 주거 안정의 차등을 부여했고 사회적으로 이를 용인해왔다. 그것은 최종 단계라 불리는 자가 주택 이외의 삶을 구조적으로 외면하는 일이었다. 사다리를 강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다리 아래의 삶을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지난 시간 빌려 쓰는 사람들의 삶은 사회의 안중에 없었다. 집을 사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그들을 외면해왔다.

사다리를 강조했지만, 사실 결과도 좋지 않았다. 소유한 주택에 사는 가구의 비율인 자가점유율은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35년간 단 1%도 오르지 않았다. 부동산 사다리 정책으로 사회 전체를 좋게 만든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허상에 가까웠다.

이달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속속 발의되고 있다. 이번에 임대차계약갱신권, 인상률상한제 조항이 개정된다면 이는 31년 만에 세입자의 처지가 있는 그대로 크게 나아지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빼앗고, 자산을 물려받지 못한 청년들의 삶을 빼앗고, 높아진 비싼 집값으로 후세대에 볼 낯도 없게 할 ‘자가 중심 주거정책’을 이제는 그만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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