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네 갈래 길

2021.03.02 03:00 입력 2021.03.02 03:02 수정

올해 12월30일이면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지 꼭 10년이 된다. 북한당국은 작년 9주년에 맞춰 김정은 전기인 <위인과 강국시대>라는 책을 출간해 얼마 전 대외선전매체 홈페이지에 공개하였다. 여기서는 36쪽에 걸쳐 2018년 남북정상회담 얘기가 다뤄져 있지만, 정작 문재인 대통령에 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그렇다면 남북 정상 간의 ‘한반도 비핵화 약속’도 모두 잊은 것인가?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김정은은 2018년 3월 우리 측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핵 포기를 약속했다. ‘4·27판문점선언’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고 약속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는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함께 만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전기에는 선언의 명칭만 언급했을 뿐 내용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작년 10월 당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과 금년 1월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에서 북한은 향상된 핵능력을 과시했다. 이때의 김정은 연설에서 주목할 것은 북한의 핵전략 변화이다. 그 이전까지는 핵선제불사용 원칙을 견지해왔으나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는 핵선제불사용에다 불남용을 추가하더니, 제8차 당대회에서는 불남용만 언급하고 핵선제불사용을 뺐다. 북한의 전술핵무기 개발과 관계가 있는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과도한 핵능력 과시와 달리 번영부강의 경제비전을 내놓겠다고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제8차 당대회에서는 뾰족한 경제대책이 제시되지 못했다. 그런 바람에 북한체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대회가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2월8~11일 제2차 당 전원회의가 열려 5개년 경제계획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제1차 전원회의 때 임명한 당비서 겸 당 경제부장이 경질되는 등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핵을 다루고 경제를 운영하겠다는 것일까? 작년 김여정은 ‘7·10담화’에서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영변 핵단지만 내놓고 제재의 부분 해제를 요구한 것과도 연관이 있다. 북한이 지금 비핵화를 못한다고 하지만, 영변 핵단지만 내놓고 정세가 바뀔 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핵무기를 내놓지 않으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김정은이 제시한 국정목표는 개발도상국의 길을 통한 경제강국과 인민생활 향상의 실현이다. 김정은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열병식에서 “이제 핵강국이 됐으니, 더 이상 군비경쟁하지 않고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고 선언한 뒤 이듬해 경제·핵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안보 우려 없이 경제개발에 매진하기 위해서라도 핵을 갖고 싶어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대북 제재를 본격화했다. 북한이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으나 대북 경제제재는 한층 강화되어 북한체제의 목줄을 죄고 있다.

북한체제의 네 가지 미래 가운데 국제사회의 촘촘한 경제제재가 가해지는 한 ‘핵 가진 개도국가’의 길로 갈 수는 없다. 2018년 3월 헬싱키에서 열린 남·북·미 3자 1.5트랙 회의에 참석한 북측 인사는 대북 경제제재에 대해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죽고 살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혀 역설적으로 제재효과가 점차 나타나고 있음을 인정했다. 경제제재가 계속되는 한 북한에 닥칠 미래는 ‘핵 가진 실패국가’의 길로 가든가, 아니면 ‘핵 가진 불량국가’로 남는 길뿐이다.

김정은 체제의 바람직한 미래는 ‘핵 없는 개발도상국’의 길이다. 2018년 김정은은 우리 특사단에 체제안전 보장과 군사위협 해소를 조건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비핵화 협상에 나섰다. 그 뒤 3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2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열었고, 북·중 정상회담도 5차례나 했다.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남북 및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으나, 바이든 미 행정부의 출범 이후 새로운 관계 수립의 길은 열려있다.

현재 북한은 핵 가진 개발도상국의 길로 가기 위해 자력갱생·자급자족을 내걸며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하지만 핵 보유를 고집하는 한 북한은 근근이 버티는 불량국가로 남거나, 아니면 자력갱생을 이루지 못해 실패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럴 경우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정세는 격랑에 빠져들 위험성이 높다. 김정은 체제가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북한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 대신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을 김정은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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