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들의 죽음에 답하는 길

2021.06.25 03:00 입력 2021.06.25 10:14 수정

아무나 직업군인이 될 수 없다.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된 일자리인 데다 연금혜택까지 좋으니 직업군인이 되려면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단박에 시험에 붙기는 어렵고 몇 년씩 준비해야 하는데, 부사관이나 장교를 양성하는 학과가 설치된 대학만 60개가 넘는다. 이런 사정은 남군이나 여군이나 엇비슷하지만 할당받은 소수 인원만 뽑는 여군이 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직업군인이 되었다는 건,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국가가 인정할 만큼의 지적 능력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기본적인 자세도 갖췄다는 거다.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이런 사람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군대는 모든 출구가 다 막힌 어두운 동굴처럼 변했고 범죄 피해자들은 2차, 3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2013년엔 육군 대위가 죽음으로 내몰렸고 2017년엔 해군 대위, 이번엔 공군 중사가 그랬다. 상관이 저지른 성범죄의 피해자였지만, 고통은 한 번의 범죄 피해로 끝나지 않았다. 군대에 있는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대의 지휘관부터 군사경찰, 군검찰, 군사법원, 양성평등센터 등 내부의 모든 안전장치가 거꾸로 움직였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는 군대의 구조 때문이다.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위해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고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정확한 지휘체계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휘권은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솔선수범할 때 의미가 있지만, 현실에선 그저 지휘관이 되면 뭐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특권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외부 감시마저 작동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성범죄 피해자들의 절규도 막아버린다. 지휘관의 심기를 살피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니, 보고를 왜곡하거나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는 일도 반복한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상사의 무서운 협박을 사과 문자로 둔갑시키는 군사경찰의 횡포도 지휘권의 왜곡에서 비롯된 거다.

아무리 지휘관이라도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맘대로 할 수 없는 안전장치, 바로 ‘법의 지배’가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형사사건마저 지휘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지휘관만의 ‘안전장치’가 너무 많다. ‘군사법원법’이 대표적이다. 군사법원법은 군인이나 군무원, 또는 군대와 관련 지역에 산다거나 군대와 관련한 범죄를 저지른 민간인에 대한 형사사건을 다루는 기관과 절차 등을 망라한 법률이다. 군대에는 군사경찰(얼마 전까지 헌병이라 불렀던), 군검찰, 군사법원이 따로 있다. 이들 기관의 구성원들은 모두 군인이고, 예외 없이 지휘관의 부하들이다.

군사법원은 재판관 구성부터 이상하다. 재판관은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구성한다. 심판관은 영관급 장교 중에 ‘법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이나 ‘인격과 학식이 충분한 사람’을 관할관이라 부르는 지휘관이 임명한다. 소양, 인격, 학식 같은 추상적·주관적 요건을 충족했다고 여기면 영관급 장교라면 누구나 판사처럼 재판관이 되는 거다. 군판사도 지휘관의 부하지만, 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까지 재판관으로 집어넣어 군사재판을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지휘관만의 안전장치를 만든 거다. 2013년 육군 대위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유가족의 분노가 커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집행유예로 풀어주던 군사법원의 엉터리 판결도 이런 구조에서 나온 거다.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이란 희한한 권한도 있다. 지휘관이 선고된 형의 3분의 1을 마음대로 깎아줄 수 있는 권한이다. 지휘관이 ‘업무를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라고 규정하면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독립되어야 할 사법마저 이런 식으로 지휘관의 통제 아래 두고 있으니, 군사경찰이나 군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군사법원을 운영하는 까닭은 사법마저도 지휘관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시는 물론이지만, 전시와 같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조차 군사법원을 운영할 까닭은 없다. 군인이어도 범죄를 저질렀으면 민간경찰에서 조사받고, 민간검찰의 기소를 통해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지휘권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특권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짊어진 무거운 짐과도 같은 부담이다. 지휘권은 그래서 권리가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잘못하면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무서운 자리다. 그렇지만 지휘관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 모든 권력은 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공화국을 만든 까닭이다. 대한민국 군대도 민주공화국의 군대여야 한다. 국회가 ‘군사법원법’을 폐지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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