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를 묶으며

2021.07.19 03:00 입력 2021.07.19 03:02 수정

프로그래밍에서 대중적으로 쓰이는 기법 중 하나로 객체지향이라는 것이 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어서 요구사항을 추상화하여 작은 부품들을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이다. 작은 부품들은 객체라고 부르며, 객체들은 각각의 내부적인 복잡성을 은닉하고 사용자에게는 단순명료한 사용법을 제시하여 간결하고 편리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박진웅 IT 노동자

박진웅 IT 노동자

자동차를 예로 들자면 바퀴나 핸들, 엔진, 차의 프레임 등은 모두 객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엔진이 어떤 에너지와 원리로 작동하는지, 기어, 바퀴, 핸들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몰라도 된다. 그저 면허를 딸 정도의 활용법만 알면 운전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것과 같다.

서울은 마치 잘 설계된 프로그램 같다. 촘촘한 교통망, 높은 마천루의 빌딩들, 곳곳에 꼼꼼히 지어진 공원과 복지시설들은 서울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불편함을 느낄 새가 별로 없다. 필요한 시설들이 늘 근처에 있고, 조금만 이동해도 볼거리가 넘친다. 세상 모든 가게들이 즐비하지만, 늘 깨끗하게 정비된 거리가 우리를 반긴다. 낡은 건물, 부랑자와 노숙인, 화장터나 소각장처럼 꼭 필요한 혐오시설, 수많은 쓰레기와 오물 등은 잘 숨겨지며, 우린 점점 좋은 것만 보게 된다.

옛날에 난지도에 모이던 우리의 쓰레기가 지금은 인천의 수도권 쓰레기매립지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시에서는 2025년 이후에는 수도권의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서울은 이미 그린벨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택지 개발이 완료된 상태라 쓰레기매립장을 지을 곳이 없다. 반면에,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이건희 미술관은 서울에서 유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잘 가려진 서울의 모습이다.

도시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도시의 삶을 아름답게 추상화시킨다. 우리는 도시의 이면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늦은 밤부터 새벽 사이 우리의 쓰레기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깨끗한 물과 밤새 시원한 에어컨을 틀 수 있게 하는 전기는 어딘가에서 흘러온다. 서울을 서울답게 유지하기 위한 많은 것들이 서울 바깥에서 오고, 서울 바깥으로 나가고 있다.

서울의 삶이 건전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부품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다면 다른 문제는 적당히 돈으로 해결하며 살아갈 수 있다. 도시가 필요로 하는 게 있다면 돈을 더 내면 그만이고, 나의 전기가 어느 지역에서 오는지도, 나의 쓰레기가 누구의 집 뒤에 쌓이는지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얼마나 뛰어난 설계로 이뤄진 세상인가. 그러나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사람은 자신의 삶 이면을 종종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쓰는 것이 어디서 오며, 내가 버리는 것이 어디로 가는지. 그 책임을 돈으로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음을 느껴야 한다.

2025년 끝나는 인천 수도권 쓰레기매립지 근처의 주민들은 국가의 지원으로 2년에 한 번씩 추가적인 건강검진을 받는다.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의 유해 성분이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얼마나 나쁜지 장기적인 관찰에 따른 안전성을 완전히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건강검진 비용은 서울이 수도권 매립지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돈으로 해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삶의 많은 것을 보장해줄지라도 잃은 건강을 찾아주거나 일상의 불안을 쉽게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좋은 것은 서울이 수도이고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유치하고, 나쁜 것은 개발할 땅이 있고 사람이 적은 지방으로 가라는 것은 서울 시민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다. 서울의 편리함과 아름다움에는 책임이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책임이라도 가끔은 돈보다 스스로 감당하려는 사람이 나는 더 좋다. 잘 짜인 도시의 객체로 사는 것은 편리하지만, 때로는 책임 앞에 인간다운 사람들이 서울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름다움보다는 따스함이 좋아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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