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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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옆 상갓집

2021.12.28 03:00 입력 2021.12.28 03:01 수정

라디오를 들으며 외울 지경이 된 광고가 있다.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신’이 있습니다. 코로나 최전선 의료진의 영웅신, 발코니로 떠나는 우리가족 여행신, (…) 이제 모두가 기다려 온 백신으로 해피엔딩 신을 보여줄 차례. 우리가 함께 만든 최고의 신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반드시 코로나19를 이겨낼 것입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연초에 들을 때는 신박한 라임에 감탄했다. 하지만 재난 상황이 달라지는데도 똑같은 말이 반복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된 후로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의료진의 절규도 집단시설의 아비규환도 자영업자의 절망과 분노도 끼어들 틈 없는 매끄러운 신은 백신만 주입하고 사라졌다.

백신은 재난을 통과하며 우리가 입을 수 있는 비닐 우의였다. 찢어질 수 있지만 홀딱 젖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비닐 우의를 챙겨 입는 동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비옷이 찢어지고 남들보다 많이 젖은 사람도 혼자 남겨져 쓰러지지 않게 대책을 세우는 일, 비옷을 입기 어려운 사람들도 함께 비를 피하며 일상을 이어갈 방법을 찾는 일. 해피엔딩으로 갈 준비가 가장 덜 된 것은 정부였다. 확진자가 많아지는 만큼 고령층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계적 일상회복은 의료대응체계를 통해 사망을 줄이자는 도전이었다. 민간병원을 포함해 병상을 확보하고, 파견 위주의 인력 지원에서 정규고용 위주의 인력 확충으로 1인당 중환자 수를 줄여야 했다. 그러나 의료대응체계는 준비가 덜 돼 있었다. 의료진은 환자를 돌보느라 몸이 부서지는데, 병상이 없어 다 돌볼 수 없는 현실에 마음도 무너졌다. 죽은 이들은 화장하고 나서야 가족들 곁에 잠들 수 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정부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이 부담을 뒤집어쓰게 됐다. 코로나19 자영업 대책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절반가량인 대면서비스업종은 높은 임대료 부담, 대기업의 동네골목 진출, 프랜차이즈화 등으로 이미 위기가 일상인 구조에 놓여 있었다. 코로나19로 플랫폼기업까지 또 다른 갑으로 등장했다. 자영업 비중과 고용 규모가 작지 않다 보니 작년부터 늘 긴박한 과제였다. 재난이 안긴 부담을 분배하면서 적정한 지원과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대책이 마련되어야 했다.

자영업자들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새로운 지속 가능성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으므로 기꺼이 동참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낭떠러지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선제적 지원은 부실했고 뒤늦은 손실보상은 부족했다. 갑들이 부담을 나눠 지게 하지도 않았다. 정부는 자영업자를 행정명령의 수신자로만 볼 뿐 방역의 동료로 대접하지 않았다. 경매가 부르듯 50조, 100조를 외치는 정치인들의 한가함은 볼썽사납다. 삶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을 돈으로 약 올리는 꼴이다.

우리는 재난 중에 있다. 함께였던 적 드문 사회에서 함께하기 위해 애썼다.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난 이후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다시금 백신접종률 높이기에만 열중하면 안 된다. 한국은 이미 높은 백신접종률을 기록하고 있다. 전지구적 백신불평등을 외면한 결과는 오미크론이 경고하고 있다. 18세 이상 인구집단 전체의 추가접종 유도보다 오히려 백신 지원을 검토할 때다. 학교 운영 방침이 오락가락할 때의 부담에 더해 재택치료가 원칙이 되면서 생길 부담까지 여성에게 떠넘겨지는 젠더불평등도 의제에 올려야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우리는 재난 이후의 시간을 함께 만들기를 원한다.

대통령은 “최고의 신”들만 보여주는 영화관에서 나오시라.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은 재난을 직면하시라. 상갓집 근처에서 자기들 싸움에 바빠 신경 긁는 일이라도 자중하시라. 하루 사망자가 100명을 넘기도 한다. 제발 우리가 상(喪) 중인 건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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