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팩 재활용 바꾸는 ‘투표’

2022.01.07 03:00 입력 2022.01.07 03:01 수정

지난 크리스마스는 좀 특별했다. 나는 쓰레기를 줄이는 전국의 제로 웨이스트 가게 100여곳과 트리를 ‘오렸다’. 서울시청 광장에 3000개의 크리스마스트리 오너먼트를 장식하기 위해서였다. 버려진 종이팩을 재활용한 핸드메이드 트리였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종이는 재생 가능한 나무를 사용하고 재활용이 잘되므로 ‘친환경’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얼어 죽을 친환경’에 가깝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금속, 유리, 플라스틱, 스티로폼 중 재활용이 가장 안 되는 품목이 바로 종이팩이다. 종이팩 재활용률은 2013년 35%를 기점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2020년 역대 최저치인 15.8%를 찍었다. 다른 분리배출 품목인 금속 캔과 페트병의 재활용률은 80% 정도다. 독일에 이어 세계 2위의 분리배출을 자랑하는 우리가 유독 종이팩 재활용률만은 전 세계 평균보다 낮다. 2018년 유럽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49%, 미국 60%, 캐나다는 53%였다.

그 결과 더 많은 나무가 잘려나가고 탄소 배출량이 늘어났다. 화장지 원단 수입은 2016년에서 2020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했다. 화장지 원단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국내 종이팩을 내다 버리고 해외에서 목재 펄프 원단을 사들였다. 국내에서 버려지는 종이팩만 제대로 재활용해도 20년생 나무 130만그루를 살린다.

종이팩은 음료를 보호하기 위해 양면이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으로 코팅된 형태다. 종이 재활용 과정에서는 이 코팅 부분이 벗겨지지 않아 종이팩만 따로 모아야 재활용된다. 그래서 주민센터나 환경부에서는 종이팩을 종이와 따로 분리배출하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없다. 주민센터에서는 종이팩을 수거하지만 종이팩들을 가져가기도 번거롭고, 분리배출 시간인 평일과 일요일 저녁에는 주민센터가 문을 닫는다.

도대체 왜 종이팩 재활용만 이토록 번거로울까? 투명 페트병의 경우 다른 플라스틱과 따로 분리배출하는 요일이 정해져 있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종이든 유리든 금속 캔이든 어떤 분리배출 품목도 재활용해달라고 보따리장수처럼 끌고 다니지 않는다. 실제 제로 웨이스트 가게 모임이 전국 지자체 229곳에 문의한 결과 종이팩이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 지자체가 68%나 됐다. 내가 사는 서울 마포구도 재활용 선별장에서 종이팩을 따로 수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할 수 없지, 오늘도 나는 두유팩을 자전거에 싣고 제로 웨이스트 가게와 생협 매장에 나른다.

2022년에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열린다. 내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거다. 종이팩을 집 앞에 내놓으면 금속 캔처럼 재활용되는 것, 종이팩을 재활용하는 업체에만 재활용 선별장 운영을 맡길 것. 그게 그렇게 어려워서 20년 동안 종이팩을 태우고 묻어버렸을까? 나는 내 삶을 구성하는 작은 정치들을 바꾸기 위해 투표장에 간다. 정치를 통해 우리 삶의 ‘소확행’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민주주의가 아닐까. 쓰레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조사한 지자체별 종이팩 재활용 현황을 carton.campaign.me에서 볼 수 있다. 우리 동네가 상중하 등급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보고 변화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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