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광장에 투표하시라

2022.03.01 03:00 입력 2022.03.01 03:03 수정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를 해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내 표를 민주당에 보낼 생각은 없었다. 선거권이 주어진 이후 그랬다. 차라리 2002년에 잠시 고민했다.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던 동생이 ‘노란 손수건’을 목에 두른 걸 보며, 노무현의 이름이 만드는 변화에 내 마음도 일렁였달까. 변화를 예감케 하기는커녕 반-윤석열이 전부인 이재명 후보를 찍고 싶을 이유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반-윤석열이라, 찍지 않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해야 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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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갈래 마음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최강서의 이름. 박근혜의 당선 소식에 더 버틸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그가 떠난 후 4년의 시간 동안 배경도 이유도 조금씩 다른 죽음들이 켜켜이 쌓였다. 그 모든 기억을 박근혜라는 이름의 서랍에 담았던 나는 윤석열의 당선을 상상할라치면 죽음의 서랍을 여는 것처럼 끔찍한 마음이 들었다.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 ‘싫다’는 말의 가벼움으로는 가위눌린 듯한 마음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다른 갈래의 마음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예상으로부터 찾아왔다.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 아무런 설명 없이 페이스북에 새긴 ‘여성가족부 폐지’가 신호탄이었다. ‘실언’으로 내부에서도 우려를 사던 발언들은 지지자를 조직하는 언어로 격상했다. 남성 청년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을 페미니즘으로 지목하고, 평화와 안보의 어려움은 혐중 정서로 넘어서보려 들었다. 문재인 정부가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는 말까지 하니 도널드 트럼프가 절로 떠올랐다. 누가 되든 별 차이 없다는 말은, 진단으로는 비합리적이고 처방으로는 무책임했다. 조바심이 났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 마침내 그에게 열린 37년인 하루. 함께하고 싶어 부산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평온을 얻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낡은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자신이 입고 가겠으니 미래로 거침없이 가라는 당부. 위로처럼 죽비처럼 찾아온 말에 삼켰던 눈물까지 모두 쏟아내고 나니 서서히 마음이 맑아졌다.

과거와 끝까지 싸워 미래를 여는 이는 누구인가. 민주화운동은 자신들이 다 한 양 말하던 정치인들이 아니었다. 김진숙은 그들과 함께 미래로 나아오지 않았다. 그들과 다른 미래를 열어왔다. 촛불의 계승자는 자신들뿐인 것처럼 말하던 이들은 개혁의 명분과 권력의 지분을 뒤섞어 개혁과제를 지정했고 평등과 존엄과 노동은 나중으로 미뤘다. 순서가 있다는 듯 말했지만 방향이 다른 것이었다. 차별이 ‘없다’와 ‘있다’를 놓고 다투는 일은 우리 몫의 싸움이 아니다.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게 될까 하는 두려움은 촛불 이후 스스로 멈췄던 이들에게 넘겨줘야겠다. 우리는 멈춘 적 없이 미래를 열어왔다. 김용균과 함께, 김지은과 함께, 김잔디와 함께, 변희수와 함께…. 아직 다 못 싸웠으니 한 번 더 봐달라는 이들에게 말해야겠다. 당신들이 가자는 미래는 우리가 이미 싸우기 시작한 과거라고.

우리가 열어온 미래가 우파 포퓰리즘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잠시 멈춰야 할 이유가 아니라 더욱 부수며 나아가야 할 이유다. 우파 포퓰리즘을 앞서 겪은 사회들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혐오를 지적하고 차별을 완화하는 시늉으로 맞설 수 없다. 불평등의 구조를 무너뜨려야 하므로, 불평등을 심화시킨 세력과 함께는 더욱 맞설 수 없다. 김주익의 죽음으로 노무현 정부를, 대우차 부평공장의 폭력 진압으로 김대중 정부를 기억하는 나도 잠시 속을 뻔했다.

김진숙은 당부만 남기지 않았다.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미래”로 갈 광장을 남겼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를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소신투표라는 말로 편해지지 않았던 마음들이 있다면 전하고 싶다. 당신의 광장에 투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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