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문제를 일으킵시다

2022.04.26 03:00 입력 2022.04.26 03:04 수정

단식투쟁 중입니다. 차별금지법 있는 봄을 맞겠다고, 이제 16일째네요.

얼마 전 한 단체채팅방에 제 단식 소식이 올라왔어요. 오래전 인연으로 걸쳐만 있던 방이었습니다. 반가워하기도 놀라워하기도 하는 댓글이 이어지다가 대화가 끊겼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좋지 않은 법”이고, 채팅방에서 얘기하기에는 “너무 정치적 내용”이라는 댓글이 올라오면서입니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누구나 차별은 좋지 않은 거라 배우고, 차별하지 말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차별하지 말자는 법이 ‘좋지 않은 법’이 돼버렸을까요?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피해온 탓입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17년 ‘나중에’는 상징이자 현실이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2018년 지방선거가 있어서, 2020년 총선이 있어서. 나중에 하겠다는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말도 꺼내지 말라는 봉인이었죠. 2020년 총선에서 과반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2022년 대선 핑계를 댔습니다. ‘좋지 않은 법’을 만들라고 하는 우리가 문제가 되어왔죠.

혐오 선동에는 ‘반대 의견’이라는 명패를 만들어주고 찬반 양쪽이 서로 존중하며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이대녀’의 페미니즘이 너무 과격해서 갈등이 생기니 성평등 정책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너무 많은 권리를 요구하는 게 문제라 정규직화는 멈춘다고 했습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권리를 주장할수록 문제로 지목당했고, 문제이므로 혐오당해도 마땅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번은 단식농성장 바로 앞까지 들어와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가신 분이 있었어요. 자리를 옮겨달라 부탁했으나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그는 자신을 악의 무리에 홀로 대항하는 자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스스로에게 도취한 표정, 박경석과 토론하던 이준석의 표정이었습니다. 혐오는 혐오하는 자의 힘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혐오당해도 되는 사람들을 사회가 만들 때 자라납니다.

차별금지법이 많은 문제를 야기할 법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끝까지 싸우기 시작하면, 이 사회는 얼마나 소란스러워질까요. 차별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들이 쌓이고, 그만큼 정부가 차별을 예방하고 시정할 계획을 실행하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얼마나 많아질까요. 기업들도 불편해질 겁니다. 마음대로 사람 뽑고 자르고 임금을 덜 주던 관행에 제동이 걸릴 테니까요. 사실 우리도 조금씩 불편해질 겁니다. 차별을 없애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는 일이니까요. 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 문제없다는 듯 굴러갔던 이 세계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문제를 일으킵시다.

“사과하십시오!” 작년 겨울 이재명 후보 앞에 섰던 성소수자 청년의 외침은 그의 것만이 아닙니다. 차별받는 모두에게 국가는 사과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존엄을 깎아내려 무례함과 폭력에 방치한 상황에 대해. 누구도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으로부터 누군가를 배제해온 역사에 대해.

다가올 혐오공화국을 떠올리면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차별금지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시민의 힘으로 밀어올린 평등의 약속이 국회 서랍 속에 갇혀 있습니다. 혐오와 차별을 키워놓고, 그 일상을 사는 우리가 대항할 무기는 깔아뭉개는 셈이죠. 우리가 국회를 흔들어 꺼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은 “너무 정치적”이라,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 정치까지 바꾸며 가는 수밖에요.

역대 최악이라던 대선 이후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자신의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4월 국회의 많은 시간을 ‘검수완박’에 흘려보냈지만 아직 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을 내놓지 않으면? 평등으로 심판하는 수밖에요. 우리는 평등으로 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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