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설의 위대한 몰락

2022.04.29 03:00 입력 2022.05.03 17:29 수정

시설 정상화 아닌 몰락을 요구했다
그들은 집으로, 사람으로 가는 길
시민으로 가는 길을 소리쳤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첫 장은
이들의 투쟁에 의해 열렸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집에 있으면 짐밖에 안 되는 걸 내가 뻔히 아는데.” 지금 예순을 넘긴 규선씨는 스물일곱 살 때의 일을 선명히 기억한다. 뇌성마비장애인인 그는 어려서부터 방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방에서도 지낼 수 없는 때가 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시설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받아들였다. 더 이상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8년 석암 베데스다요양원(현 향유의집)에 입소했다. 슬프지만 평온한 이별, 그러나 극단적인 뒷이야기가 있다. 담담하게 그때를 회고하던 그는 눈물을 흘렸다. “이런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는데… 그때 어머니하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어요.”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이것은 규선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고향도 장애유형도 제각각이지만 시설에 들어온 계기는 똑같다. 가족들이 못 버티는 순간이 온 것이다. 당사자나 가족들은 이때 선택을 한다. 함께 죽거나, 죽은 셈 치고 시설을 찾거나.

시설이란 이런 곳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해도 시설에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은 저 ‘너머’로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저 너머로 간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좋은 시설이든 나쁜 시설이든 차이가 없다. 그곳 직원이 친절하든 그렇지 않든, 거주인 수 많든 적든, 밥을 오후 4시에 먹든 5시에 먹든 상관이 없다. 저 너머는 사회의 바깥이고 인간의 바깥이다. 시설은 사람을 먹고 싸고 자는 생명체로서 관리하는 곳이다. 거주인들은 여기에 죽을 때까지 있다가 죽는다. 시설에 오기 전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성격, 취향이 있었겠지만 모두의 방에서 자고 모두의 시간에 일어나 모두가 보는 곳에서 씻고 모두의 밥을 먹고 나면 똑같은 생명체가 되어 똑같은 형태의 죽음을 기다린다. 우리 사회는 수십년간 이런 시설들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을 관리해 왔다. 지금 이런 시설이 1500개가 있고, 여기 수용된 사람이 3만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 1500개나 되는 시설 중 하나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규선씨가 지내던 ‘향유의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시설은 운영 주체들의 의지로 거주인들을 탈시설시키고 스스로를 폐쇄시켰다. 최근 출간된 책 <집으로 가는 길>(오월의 봄)은 이 시설에서 지난 십여년간 일어난 ‘위대한 몰락’의 기록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사건의 발단은 학대와 비리였다. 시설 운영자들은 장애인들에게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고 장애수당 등을 뒤로 빼돌렸다. 보통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건 직원들의 고발과 투쟁을 통해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거주인들이 나섰고 직원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학대와 부정을 입증할 자료를 모아 운영자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감독관청인 서울시청과 양천구청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 투쟁으로 재단 이사장은 구속되었고 새로운 이사회와 운영진이 꾸려졌다.

직원들은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고 한다. 비리 시설장을 처벌했고 시설이 민주화되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장애인들이 멈추지 않았다. “바깥의 자유로운 삶을 똑똑히 목격한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규선씨는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자신의 투쟁 사진을 보고 놀라서 말리러 온 조카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 끄라고. “행복하고 살고 싶었거든요. 사람처럼 살고 싶었거든요.” 그에게 사람이 깨어났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 보였던 것이다. 인현씨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소리를 지르는 중증장애인 활동가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인현씨에게 “화를 내도 된다”고 했다. 그것이 그를 일깨웠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나도 정부에 내 요구를 들어달라고 항의할 수 있구나.” 인현씨도 길을 보았다. 시민으로 당당히 사는 길. 나중에 시설을 다시 둘러본 동림씨는 말했다. 여기 있을 때는 “되게 커보였던 시설이 참 작고 초라해보인”다고. 그의 존재감이 커진 것이다. “내가 나와서 자유를 만끽해서 그렇지 않았을까요.”

이들은 좋은 시설이든 나쁜 시설이든 시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설의 정상화가 아니라 몰락을 요구했다. 집으로 가는 길, 사람으로 가는 길, 시민으로 가는 길을 요구했다. 비장애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때 이들의 요구와 더불어 한국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위대한 첫 장이 열렸다.

참, ‘집으로 가는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집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들은 시설을 예비했던 옛날의 집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가족을 초대할 자신의 집이 있다. 지금 이들은 새벽에 밥을 차려 먹기도 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마트에서 장을 보며, 이따금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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