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는 게 바로 독재다

행정안전부가 경찰국을 통해 경찰청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는 ‘권고안’ 형식을 빌렸다. 차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면서도 위원회 이름은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였고, 여기서 권고를 했다. 일종의 알리바이성 위원회였다. 자문위는 불과 네 번의 회의 만에 행안부가 통째로 경찰청을 장악하겠다는 안을 만들었다. 미리 정해둔 결론을 자문, 회의, 권고 등의 형식에 담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행안부는 경찰국을 ‘지원조직’이라 표현했다. 얼핏 들으면 경찰청을 지원하는 조직인가 싶겠지만 사실은 딴판이다.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지원조직이 아니라 관련 부서가 맞겠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말을 꾸민다. 말이야 어떻든 핵심은 정권이 직접 경찰을 장악하겠다는 거다.

여태까지는 경찰청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많았다. 고위직 인사 등 일부 사안은 청와대와 조율하고, 인사, 예산 등 주요 정책은 국가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했겠지만, 대체로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독립적 경찰을 용납하지 않겠단다. 이런 태도는 ‘권고안’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의 정책이 이렇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행안부 장관을 통해 경찰 사무 전반을 직접 통제하겠단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대목에선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라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런 게 바로 ‘내로남불’이다. 공무원 조직의 힘의 원천이랄 수 있는 인사와 징계도 행안부 장관이 휘두르겠단다.

경찰청 안팎의 반발은 그래서 당연하다. 경찰청장은 물론, 국가경찰위원회와 일선 경찰관들까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관들은 직장협의회를 통해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다. 경찰서 앞에 현수막도 내걸고 길거리 기자회견을 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평소 경찰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인권단체들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과 관련한 모든 당사자가 한목소리로 행안부의 경찰 장악을 반대하고 있다.

평소의 크고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들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까닭은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처럼 경찰활동이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맛대로 요동칠 거란 걱정 때문이다. 사실 그랬다.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던 정통성 없는 정권은 국민안보,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에만 골몰했다. 정권이 틀어쥔 경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것이었다. 경찰은 남영동 대공분실 등 전국 곳곳에 숨겨둔 비밀 조사기관을 통해 고문으로 허위진술을 받았고, 없는 간첩까지 조작해냈다. 데모 막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경찰은 그저 데모할 것 같은 나이라며 거리를 다니는 젊은이들을 매일같이 수천명, 수만명씩 체포했다. 영장은 당연히 없었고 현행범이 아닌데도 그랬다. ‘격리차원에서’ 그랬다는 짧은 설명조차 없었다.

정권의 입맛만 맞춰주면 경찰 내부는 아무래도 좋았다. 길목마다 경찰관들이 버티고 서서 면허증과 함께 현찰을 요구했다. 운전자를 겁박해 푼돈이라도 뜯어내려고 혈안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경찰과 독재정권의 경찰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민중 위에 군림하고 탄압했다. 그저 정권의 요구만 쫓으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내무부 치안본부를 경찰청으로 독립시키던 1991년까지 그랬고, 실제로는 1998년 최초의 정권교체 이전까지 그랬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을 때리는 몽둥이였을 뿐이다.

1991년 경찰청 독립은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등 야 3당의 요구였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이 야 3당과 합의해 만들어낸 성과였다. 제6공화국 체제의 산물이었다. 경찰청 독립의 핵심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경찰이 정권의 요구대로 끌려다니지 않고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본래의 사명을 챙겨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제도화한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경찰을 1980년대의 어두운 과거로 돌려보내려는 거다.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던 검찰개혁 작업도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함께 담겨 있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제한했던 법률 개정 작업을 시행령으로 무위로 돌리려는 거다. 행안부의 시도는 헌법 위반이다. 민주주의 일반 원리를 파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률 사항을 하위 규정으로 뒤엎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그렇다. 반헌법적 시도를 하는 행안부 장관이 탄핵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법을 좀 안다는 검사 출신들이 잔뜩 포진한 윤석열 정권의 행태가 위태롭다. 친한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를 행안부 장관에 임명한 후과다. 이렇게 가는 게 바로 독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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